기립성 저혈압으로 깨닫는 자각_23.11.04
나는 생각보다 약하다. 쉼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오늘을 끝으로 중요한 일정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쓰는 일은 몸을 쓰는 일보다 더 피곤한 것 같다. 살면서 사람들이 왜 그렇게 힘들까를 생각해 보면, 대부분은 <마음>을 쓰다 보니 어려워지는 거다.
그냥 단순히 머리만 쓰고, 그렇게 살면 편할 텐데.
온갖 감정과 마음이 쏠리면 너무 사람이 지친다. 안 그래도 바쁜 현대사회. 죽음의 10월이 지나갔다. 온갖 행사들로 가득한 10월. 날도 좋고 뭐든 하기 좋으니 학교, 유치원, 교회가 행사로 천지다. 그 와중에 미련한 나는 모든 행사와 일정을 찾아다니기 바빴다.
오늘은 학교의 입학설명회가 있던 날.
아이 입학설명회까지 갔다가 둘째의 입학 고민을 이제는 마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많이 고민하고 생각해 봤지만, 답이 안 나왔다. 내 안의 불안과 두려움은 늘 선택에 있어 망설여지게 만든다. 첫째가 대안학교에 갔다가 둘째까지 대안학교에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첫째가 둘째를 잘 챙기는 편도 아니고, 나는 그걸 아이에게 강요한 적도 없다. 그냥 <너네 둘은 다른 아이다.>라고 생각했을 뿐.
단지 상황상 나는 계속 일을 해야 하고, 어머님께 아이를 맡기는 시간이 너무 길어져도 어머님이 버거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안학교의 좋은 점을 최대한 발휘하여 아이가 생활해 주면 고맙겠지만, 나에게는 현실적인 생각이 먼저였다. 재정, 가정상황, 대안학교 아닌 일반학교를 갔을 때 내가 아이를 어떻게 양육할 것인가. 결국은 아이를 사교육을 보낼 것이고, 학원을 수소문하며 다니겠구나 싶었다.
부부의 오랜 대화 끝에 둘째도 대안학교를 보내기로 했다.
재정이 넉넉해서도, 우리가 어떤 특별한 교육적인 목표, 지향하는 바가 있어서도 아니다. 이 학교의 장점은 너무 많지만, 우리 부부는 극현실주의자라서 우리의 형편에 맞는 교육적 상황을 만들고자 보낼 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부부가 자신이 없어서 그런 교육기관에 아이를 맡기기로 한 결심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3년 차 대안학교 학부모임에도 나는 아직도 갈 길이 멀고, 자신이 없다. 둘째까지 대안학교를 보낸다고 해도 어쩐지.... 막연하고 자신 없고.. 그렇다. 학부모의 역량을 끌어올려야 학교와 발맞춰 갈 텐데도, 막상 커뮤니티를 경험해 보니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이 학교에서 학부모, 교사, 학생의 책임과 의무는 생각보다 무겁고 어려웠기 때문이다)
설명회는 끝이 나고, 주말에 아이는 친구랑 놀고 싶어 하니 친구를 만나러 연락을 했다. 그런데 사고가 났다. 내가 갑자기 말하다가 쓰러졌다. 그냥 쓰러지면 다행인데, 똥오줌까지 바지에 지렸다. 이게 뭔 일인지. 20대, 30대에 겪은 바 있긴 하다. 스트레스가 극심하거나 일이 많을 때 한 번씩 이런 일들이 있었다. 20대에는 지하철에서, 30대에는 카페에서, 지금 40을 앞두고는 첫째 친구집에서, 이게 뭐지...
고상하게 살고 싶은데, 현실은 날마다 부끄럽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첫째 아들 친구 엄마가 날 흔들며 깨우고 있었다. 그 엄마가 손을 떨길래... 아이고 미안하다며 연신 사과를 하고, 내 오줌을 닦기 시작했다. 나 때문에 놀랐을 친구 엄마를 생각하니, 참... 내가 뭐 하는 짓인가 싶고, 뭐 이런 민폐가 있나 싶었는데, 친구엄마는 남편이 당뇨 쇼크로 잘 쓰러져서 그런 건 괜찮으니 오히려 나를 위로하고 다독이며 몸을 잘 다스리라고 말해주었다.
이놈의 성격이 병을 만든다. 힘들면 운전을 안 해도 될 건데, 남편을 소환해도 내 차는 내가 끌고 가겠다고.. 또 뭐 하러 여기 또 오냐고 하며.. 기어이 운전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차에서 내리는데 매캐한 담배냄새가 나를 자극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토했다.
이게 뭔 일인가.
하. 최근에 너무 쉬지 않고 무언가를 했었나 싶었다. 건강 잃으면 주변 사람들이 고생인걸 나는 우리 친정아버지를 보면서 알았다. 아픈 게 죄는 아니지만, 그만큼 병간호가 만만치 않다. 쉽지 않은 하루를 어떻게 하면 잘 보낼 수 있을까? 내가 처한 현실에서? 마음을 놓는 잠깐의 휴식시간이 정기적으로 필요할 것 같음을 느꼈다.
너무 많은 커뮤니케이션으로 정신이 힘들었던 것 같다. 생각할 것도, 결정할 것도 많은데 그거 조금 놓친다고 인생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다. 정신이 아득해질 때까지 무언가를 해내는 삶이 아니라, 정신을 정기적으로 끊어서 지금 사는 삶이 더욱 온전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