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살지 않고,_23.11.7
예기치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인생의 좋은 것을 발견하고 싶다.
일련의 사건으로 나는 마음이 울적했다. 짜증이 났다. 변화하는 상황들, 나의 느린 대처, 점점 늙어가고 망가지는 것을 앎에도 무슨 수를 쓸 수 없다는 듯 체념하는 태도, 이 모든 것들이 나를 낙망하게 했다. <현실>이라는 말이 그렇게 무겁게 다가올 줄이야.
보이는 것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관계에도 자신이 없었다. 나아진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관계를 하면 할수록 어긋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부모 자식 간에도, 학부모 커뮤니티, 일적으로 만나는 사람들 등등.
그래서 꼭 무슨 일이 터지지 않도록 대비해야 했다. 오늘을 잘 살아야 하는 이유가 큰일이 터지지 않도록 성실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맞나?
오히려 이 성실함이 나의 불안을 입증했다. 성실하게 사는 이유가 불안이 근거라는 게 입증되었다.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이 나 같은 마음이 없을까? 그게 과연 믿음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되었다.
그러면서 눈에 보이는 <현실>에 불안하지 않고, 초조하지 않는 의연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중요한 건 그런 상황 속에 내가 흔들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사실은 내가 정말 많이 흔들리고 낙망함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인정하자, 마음이 편안했다. 손 쓸 수 없는 현실, 대비할 수 없는 미래, 막연함과 두려움과 불안함. 그게 내 심정이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를 되뇌는 이유는 기왕이면 체념하지 말고, 조금의 에너지가 있다면 다른 방향으로 선택하고 생각할 수 있다고 나에게 여지를 남겨주고 싶었다. 어제와 오늘이 같지만, 다른 선택은 얼마든지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어제와 다른 더 좋은 선택도 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생각도, 마음도, 실제적인 선택도, 행동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