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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국 Nov 25. 2023

초딩의 말.말.말_23.11.25

초딩의 눈으로 본 세계

아이와 등하교길에 나누는 대화는 생각보다 사소하고 참 더할 나위 없이 기분 좋다. 등굣길보다 하굣길에 나누는 대화는 정말 긴장감이 없고 마음이 한결 평온해지는 걸 느낀다.


돌봄 교사로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가끔 모든 아이들이 집으로 향하고, 내 아이와 나만 교실에 남을 때가 있다. 친구든 동생이든 다 하교하고 나면, 그제야 숙제를 좀 해보겠다고 책을 펴는 아이다. 노는 게 좋아서 아이들 있을 땐 실컷 놀다가 다 가고 나니 숙제를 해야겠다 생각이 드나 보다.


숙제를 하다가 바닥에 들이 눕더니 하는 말.

<엄마 진짜 신기한 거 있다. 공부를 잘하는 애는  피구를 못하고, 공부를 못하는 애는 피구를 잘해.>

늘 피구에 꽂혀 있기 때문에, 피구가 기준이다. 저 말을 듣자마자, 나는 빵 터졌다. 세상의 이치를 애가 깨달아버린 것 같았다. 암~ 다 잘할 수는 없지. 어른들은 꼭 저런 말에 물어보지. <니네 반에 공부 잘하는 애는 누군데?> 나도 물어봤다. 뭔 여자애 이름을 말하더라.


아무튼 웃겼다.(맹구같은 말이 귀엽고 순수해보였다.)


하루종일 바깥활동하고 집에 오면, 빨리빨리 씻고 잘 준비했으면 좋으련만. 그것조차 어렵다. 그래서 착. 착. 착 준비를 해줬더니 <엄마, 엄마가 내 매니저 같아> 매니저?라는 말에... 이런 말도 아나 싶고, 얘는 은근히 다 느끼고 있구나 싶고, 가 너무 많은 걸 도와줬나 싶었다. 애 주위를 뱅뱅 도는 헬리콥터 엄마인가? 뭔가가 나인가? 매니저라는 말이 참.... 내 스스로...얘도 다 느끼는구나 싶었나 보다.


오늘은 키즈카페에서 다른 친구 엄마랑 얘기를 하다가 시간을 너무 넘겨버린 탓에 돈 10만 원을 키즈카페에 쓰고 나왔다. 영수증을 보고 갑자기 우울해졌다. 내가 미쳤나. 그냥 중간에 끊고 나와야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렇게 놀았나. 나도 모르게 아이들 앞에서 돈얘기를 했다.


나: 와.. 돈 엄청 썼다. 10만 원이면 놀이동산 갈만한 비용을 키즈카페에 썼네...

둘째: 엄마 불쌍하다 돈 없어서...

나: 그래도 재미있었지? 그럼 된 거야..

둘째: 40만 원이 만 원짜리 몇 개야??

첫째: 야 40만 원이 아니라 10만 원이야!!!

나: 아이고;; 얘들아 싸우지 마~ 40만 원은 만 원짜리 40개다.

둘째: 우와 진짜 많다.


아이들이 끝없이 걱정되는지 계속 재잘거린다. 나는 그제야 정신이 들어 안심시킨다.


나: 얘들아 잘 놀았으면 된 거야~ 엄마가 돈이 없으면 너네 이런 데서 못 놀아. 이번에 할머니가 엄마 생일이라고 용돈 주셔서 그 돈 받아서 여기 온 거야~

첫째: 엄마 그런 돈은 엄마를 위해 써야지~

나:(저런 말도 할 줄 알고 감격스럽다) 엄마를 위해 썼어. 독서모임에 가입하고, 책 읽으려고 돈 썼지. 너네 배우는 데 돈 쓰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가 넘어가자, 갑자기 첫째가 친구가 검도를 시작했다고, 나도 배우면 안 되겠냐고 그런다. 아오 이놈의 새끼. 친구 따라 강남 가냐 그러면서 내년에 생각해 보자 하는 순간 아우성이다. 그때 되면 친구는 더 이상 학원 안 다닌다고. 끝난다고.


아이는 날마다 그렇게 말로 나를 놀라게 한다. 말로 인한 성숙도를 측정하긴 어렵겠지만, 초딩은 그렇게 말로 표현하는 게 급속도로 늘고 있긴 했다. 자신의 생각도 말로 표현하고 있었다.


요즘 내가 이 초딩에게 하는 말.


<엄마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엄마의 말을 듣지 마. 누군가  너에게 무슨 말을 할 때,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생각해봐야 해. 생각하고 판단해서 들어야 할 말만 들어야 해. 엄마도 그 사람들도 틀릴 수 있거든.>


어른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빠져나갈 구실을 만드려고 아이에게 주입하는 말이 아니다. 40년 가까이 살아보니 부모의 말이 다 옳았던 건 아니었던 것 같아서 그렇다. 끝없는 모순과 딜레마 속에 살아갈 우리 아이들이 걱정돼서 생각날 때마다 저 얘기를 해준다. 아마 앞으로는 더 심각할 것 같아서.


반복되는 일상 속에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말하지 않아도 주입시키는 생활습관과 가치관, 개념, 세계관등이 참 걱정된다.


키즈카페에 나오면서, 10만 원을 써서 한숨 쉬며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너네도 더 실컷 놀게 일찍 나와서 친구집이나 갈걸 그랬다>라고 말해버렸다. 그러자, 아들왈 <나는 엄마가 분명히 친구집 가자고 하면 안 된다고. 그냥 여기서 놀아~라고 할 줄 알고 말 안 했어~ 그러고 싶었는데...>라고 한다.


미묘하게 어긋하는 마음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게 아닌지 걱정되었다. 가장 가까운 관계일수록 <확실하게 저 사람 안다>라는 생각 때문에 그냥 관계 속에서 새로운 시도조차 하지 않는 체념적인 관계가 되지 않길 바란다. 그럼에도 한 번쯤은 조심스럽게 얘기해 볼 수 있잖는가.


P.S: 초딩이 집에 가서 밥상머리에서 키즈카페에서 돈 10만 원 쓴 얘기를 구구절절 남편에게 했을 때, 나의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부부지간에 경제적 문제가 아주 민감한 사안인데, 얘가 떠벌떠벌 얘기한 것이다. 하. 말조심 입조심. 다시 한번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의 반응이 생각보다 유순했다. 보통 같으면 비아냥 아니면 큰 소리가 나올 법한데, 어쩐 일인지 남편이 <그래서 재미있었냐> 한다. 물 흐르듯 지나가니 마음 편하다.


초딩의 말.... 네가 많이 컸구나 새삼 느낀다.


번외_ 아빠와의 초딩의 대화


첫째: 아빠, 내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은 뭐게?

아빠: 한번만 더~ 이번만~이번판만~  나중에 할게~ 내일 할게~

(이와중에 남편이 기가막히게 잘 맞힌다.)

첫째: 땡!!!

아빠: 뭔데?

첫째: 야!!! 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이야~ 그러면 동생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은 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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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대화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초딩은 자라고 있다. 무럭무럭. 이제는 말장난을 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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