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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늘

동네서점 독서모임에 가입했다._23.11.24

세상에 멋지게 사는 사람 많다.

by 소국

<취향이 고상해서 죄송합니다.>라고 얘기해야 할 정도로 나는 영락없는 아줌마의 모습을 가지고, 고상한 취미를 즐긴다. 말도 얼마나 못 하는지. 고상과는 거리가 먼데도 어렸을 때부터 독립영화를 좋아하고, 소설책을 좋아하고, 음악이나 드라마를 좋아했다. 모르겠다. 왜 좋은지. 그냥 마음이 그런 데서 안정감을 얻었던 것 같다.


광주에 있는 쓰러져 가는 독립영화관 같은 게 있다. 광주극장인데... 참 걸리는 영화 꼬락서니들도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만한 영화들이 걸린다. 멀티플렉스가 막 생길 무렵, 나는 중딩의 모습이었나? 아무튼 학창 시절 내내 교복을 입고 영화스케줄을 짜가며 일주일에 한편씩 극장을 다녔다. 돈이 생기면 극장으로. 극장에 혼자 있는 느낌이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영화가 시작되면 좀 무섭거나 긴장되는 것도 잊어버린다.(진짜 아무도 없다)


2023년 10월과 11월의 모든 행사치레를 마치며, 올해가 이렇게 끝나는 건 너무 싫었다. 나의 시간과 자유를 막무가내로 침범해 대는 이 가족들과 내가 속해있는 모든 커뮤니티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브런치도 그런 영역 중에 하나겠지만, 공을 들여 시간 들여 글을 쓰지도 못해 짬나는 틈틈이 이렇게 기록정도 남겨두는데....


더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건 침범하는 그들에게 화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다. 10분의 시간이 틈나면 유튜브를 보느라 이미 2시간을 쏟고 있다. 시간을 보고 나면 미친 거 아니냐. 나 자신아. 하며 바닥을 친다.


코로나 끝나지 않았지만, 면대면 모임이 가능하다. 둘째 유치원 픽업을 하다가 북까페가 눈에 들어온다. 아. 저질러야겠다. 인터넷을 막 뒤지니 그 카페에서 진행 중인 독서모임이 있음을 발견했다. 해야지. 바로 이번주부터 가겠다고 얘기하고 실행했다. 앞으로 얼마간 참석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하겠습니다!!!


가서 보니, 북까페는 생각보다 더 우아했고, 고상했다. 그 작은 공간에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피아노, 사장님이 내려주시는 커피, 여러 가지 책들 얼마나 조화롭게 예쁜지... 더 놀라운 사실은 여기 모인 사람들이었다. 평일 오전 10시부터 12시에 신간도서 읽는 모임인데, 일주일에 한 번 모임에도 사람들의 태도가 굉장히 성실했다.


30대 주부의 아이가 네 명인 여성.(곧 제주로 이사 갈 예정), 60대의 여성, 20대와 10대의 자식을 둔 여성(온갖 다양한 독서모임에 가입 중이심), 60~70대 정도 보이는 남성. 30~40대로 보이는 워킹맘.(결석자 중에 20대 남성도 있단다) 40~50대로 보이는 주인장. 그리고 나.


뭐 아는 정보가 없지만,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그들의 놀라운 생각의 깊이에 너무 놀랐다.


첫 번째 독서 토론의 책이 무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번 신작이다. 700페이지가 넘는 책. 나는 이제야 초반을 읽는데 벌써 두 번을 읽고 오신 분께서 발제를 하시고(뭐 이분은 하루키의 모든 책을 섭렵하신 분이셨고) 책에 대한 내용을 가지고 멤버들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편안한 자리였다. 그런데 이 분들은 원체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 듣고만 있어도 깊이가 다르다. 듣고만 있어도 힐링이고, 재밌고, 신기했다.


돈을 내고 이런 걸 왜 하느냐. 한다면 너도 해봐라. 해주고 싶은데.... 나의 재미가 너에게는 재밌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 감히 그렇게는 말 못 하겠다. 동네 북까페 독서모임에 가입하면서 중딩시절이 떠오른 건 아마 오롯이 나를 위한 무언가를 시작해서였을까. 긴장감과 완벽히 해내야 한다는 강박으로 이 모임을 참석하고 싶지 않다. 나의 도피처처럼 아껴두고 사랑하며 책을 읽고, 모임을 나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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