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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닥의 생각 Feb 11. 2021

아버지, 저는 잘 지냅니다.

17년 만의 인사


아버지, 큰아들 승환입니다.


돌아가신 지 17년 만에 불러보는 호칭이 많이 어색합니다. 그날 집에서 쓰러진 아버지를 둘러업고 병원으로 달려갈 때 몹시도 가벼웠던 무게를 여전히 기억합니다. 그때가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조금은 더 다정하고 살가운 아들이 될 걸 하는 후회가 큽니다.


20여 년을 함께 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아버지와의 추억이 없습니다. 가난의 크기만큼이나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도 멀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장례식은 참으로 초라했습니다. 그나마 찾아온 아버지의 친구 두 분은 술 취한 상태로 들어와 만취한 상태로 나갔습니다. 장례식장의 직원조차 알아서 가장 저렴한 수의와 관을 골라줬고, 교회의 도움이 없었다면 장지조차 마련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당시 스무 살의 저는 아버지를 떠나보낸 슬픔보다 이 장례를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이 더 커 울지도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유품이라고는 싸구려 지갑 속에 들어 있던 만 원 3장뿐이었습니다. 3만 원의 유산은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수천만 원의 빚도 남겨 있었습니다. 억척같이 살았습니다. 수년 후 그 빚을 갚던 날 아버지의 3만 원이 든 지갑을 꺼내 놓고 골방에서 혼자 울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에게는 3명의 손주가 있습니다. 저에게는 5살 딸아이 나라, 아버지의 둘째 아들 승진이에게는 3살짜리 아들 주헌이와 5개월 된 시헌이가 있습니다. 세상 사랑스러운 이 아이들을 아버지가 보셨다면 뒤돌아 눈물 숨기셨을 모습이 선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저에겐 하나의 의문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에 남긴 게 무엇인지, 남긴 것이 없는 삶의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저 역시 아버지가 되고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나를, 그리고 동생을 남겼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나라, 주헌, 시헌 이 소중한 세 아이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삶의 가치는 무엇을 남겼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남겼느냐에 있다는 사실을 아버지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그러고 나니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많이 줄었습니다. 스물여덟의 나이로 나를 낳고, 돈 벌러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났던 당신 삶의 무게도 조금이나 가늠이 됐습니다.

아버지, 미움과 원망도 컸지만 이제 와서 남는 것은 고마움입니다. 아버지는 나와 동생을 남기고 또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남겼습니다. 그것만으로 아버지 당신의 삶은 세상 그 누구보다 가치 있는 삶이 됐습니다. 평생 못했을지도 모를 이야기를 이렇게 남깁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그리고 그립습니다.

큰아들 승환 올림


; 지난해 신문에 남긴 글을 설을 맞아 다시 꺼내 둔다.

http://naver.me/F1ROa5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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