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 일지 궁금했다. 그냥 나이가 들면 꽃이 좋아지는 것이겠거니 성의 없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김진호의 이 노래를 들었다.
꽃이었던 시절, 벌을 만났던 시절, 그리고 그 꽃잎이 떨어지는 이 세월에 대한 한 움큼의 아쉬움이 사무치게 남아있던 것이다. 다시 피어날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은 꽃이 된 자녀들과 피어나는 손주들에 대한 사랑으로 기꺼이 거름이 된다. 한 송이 꽃이 만개하다 떨어져 짓이겨지고 거름이 되는 엄마의 그 세월을 탓할 수는 없지만 자식들의 무심함에는 핑계가 없다.
서른아홉, 지금 내 나이 때의 엄마는 국민학교 6학년, 그리고 4학년인 두 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돼지같이 먹어 되는 아들들 때문에 엄마는 햇살도 들어오지 않는 반지하 방에서 하루 종일 가발을 떴다. 아들들은 아침에 일어나도 가발을 뜨는 엄마를, 학교에 다녀와도, 밤에 잠들기 전까지 한 올 한 올 쉴 새 없이 가발만 뜨는 엄마를 봤다.
집에서 밥 먹을 때마다 그리고 학교에 싸가는 도시락에도 늘 머리카락이 나왔다. 아들들은 짜증과 투정을 부렸지만 서른아홉의 엄마는 투정을 토해내는 그 입에 먹일 것이 없는 걱정이 더 컸다. 유일한 위안이라면 안테나를 최대한 빼야만 수신이 되던 낡은 라디오였지만 그나마도 아들들이 유행가 테이프를 듣기 시작하면서 빼앗겼다. 아들들은 그렇게 엄마의 꽃잎을 따먹고 컸다.
시간이 지나 동생은 군대로, 아버지는 하늘로 떠났다. 무심한 큰아들은 배낭을 메고 긴 여행을 떠났고 엄마는 홀로 남아 작은 식당을 꾸려갔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당한 교통사고로 한참을 병원 신세 졌지만 수년이 지날 때까지 아들들은 몰랐다.
결혼한 아들들이 집을 떠날 때가 되자 엄마는 방 세 개짜리 집에 혼자 살기 싫다며 작은 전셋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러고는 노인 요양보호사가 되어 야간일을 한다. 피곤한데 왜 야간 일을 나가냐며 핀잔하는 자식들에게 밤에는 노인들이 일찍 자 더 편하다고만 했다. 그런 줄만 알았다.
아무도 없는 저녁에 혼자 잠드는 것이, TV를 친구 삼아 혼자 먹는 밥이 어땠을지 자식 들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 긴 밤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노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엄마도 노인이 되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자식들은 생각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