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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선아 May 08. 2023

<딱궁이> 이타적인 이기주의자 (1)

입하(立夏)호, 첫째 주




단편 소설 - 이타적인 이기주의자 (1)

* 분할 연재됩니다. *



     헌팅 포차 직원처럼 바쁜 스피커에서 양산형 발라드가 반복 재생된다. 처음에는 직원들이 선곡하는 것 같은 노래들이 나왔는데. 사람이 많아지니까 몇 곡 전에 들었던 노래가 또 나오고 있다. 나를 포함한 다른 친구들은 먼저 도착했다. 연주는 아직 안 왔다. 택시를탔는데 길이 막혀서 20분 정도 늦을 것 같다는 연락이왔다. 퇴근 시간이 겹쳐서 그렇겠다. 나는 약속 시간에서30분을 빼고 준비한다. 다 같이 정해둔 시간에 늦는게 싫기 때문이다. 조금만 노력하면 큰 사건이 아닌 이상 늦을 수 없다. 연주는 아마 나오기 직전 옷을 한 번 더 갈아입었을 것이다.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다.

 

     연주 20분 정도 늦는대. 안주 먼저 주문해놓고 기다리자.

 

     다 같이 메뉴판을 보다가 내가 먼저 해물짬뽕을 시키자고 했다. 국물이 있어야 술이 들어간다는 연주가 여기서 제일 좋아하는 메뉴다. 나는 사실 먹태를 제일 좋아한다. 다들 마른안주를 싫어하는 걸 알아서 말을 못 꺼냈다. 해물짬뽕은 역시 만장일치를 받았다.

 

     술은 뭐 마실래.

     나는 토닉워터만 있으면 상관없어.

     후레쉬? 처음처럼?

     몰라. 다른 점을 모르겠어. 아무거나.

     그럼 후레쉬로 시킬게.

 

     직원은 후레쉬와 토닉워터를 먼저 갖다 줬다.

 

     저기. 잔이랑 앞접시 하나 더 주세요.

    이따가 일행 오시면 신분증 검사하고 갖다 드릴게요. 이거 끓으면 바로 드셔도 돼요.

 

     버너에 불을 붙인 직원은 서둘러 떠났다.

 

     야. 병뚜껑은 버리지 말고 잘 놔둬. 이따 게임하자.

 

     인원수 대로 술을 채워서 돌렸다. 좁은 소주잔이 넘칠 듯 말 듯 한 게 위험해 보인다.

 

     밑 잔 깔면 약사다.

 

     숟가락에 소주를 따르는 시늉을 하며 웃었다.

 

     빨리 마셔. 맨정신에는 노래 못 불러.

 

     우리는 해물짬뽕이 끓을 동안 한 병을 금세 비웠다.쑥갓의 숨이 죽고, 얼큰한 냄새가 났다. 개인 접시에 골고루 덜어 친구들에게 건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맞은편 카운터에서 신분증 검사를 하고 있는 연주가 보였다. 연주는 우리가 같이 좋아하던 브랜드의 옷을 입고 나왔다. 이번 시즌 상품이었다. 내가 예쁘다고 보여준 건데. 별로라고 하더니 결국 샀나 보다. 비싼데 무슨 돈으로 샀지. 수트 베스트가 상체에 알맞게 떨어져 연주의 가녀린 몸집이 돋보였다. 마스크를 살짝 내려 직원에게 얼굴을 보여주는 것까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집에 가고 싶다. 나는 흉통이 넓어서 저런 옷은 잠그지도 못한다. 안 입어봐도 맞지 않을 걸 아는 옷이 딱 저렇다.

 

      나 빼고 마시는 게 어디 있어.

 

     빛나는 사람은 어디든 제일 마지막에 등장한다. 먼저 도착해서 시간 때우느라 혼자 갔던 올리브영이 생각나서 배가 아파온다. 환하게 웃는 연주는 기분 좋은 향기를 풍기며 우리와 인사했다. 향수도 바꾼 것 같다.하얗고 곧게 뻗은 다리를 꼬고 내 옆에 앉았다. 입고 왔던 재킷을 건네는 내게 고맙다며 물을 따라 마셨다. 연주의 네일이 새침하게 빛났다. 연주는 나보다 피부도 하얗고 화장도 어울리게 잘 한다. 나보다 키가 작고뼈대도 가늘다. 부서질 것 같은 몸에서 싱그러운 젊음이 느껴진다. 연주와 친한 나는 다리가 굵고 팔뚝도 두껍다. 그래서 큰 옷을 선호한다. 내가 만들 수 있는 이미지는 예쁨과 멀지만 멋짐과 가까운 것도 아니다. 나는 예쁘지도 멋지지도 않다.

 

     가만 보면 술 진짜 잘 마시는 것 같아. 여기서 너만 멀쩡해.

 

     친구들이 볼 터치보다 빨개진 얼굴로 말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마시면 토할 것 같은데 아니라고는 말 안했다. 혼자 화장실 몇 번 더 다녀오면 되니까. 안 괜찮은데 그걸 내가 직접 말하는 건 더 안 괜찮다.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 투애니원 노래를 다시 따라 불렀다. 술 마실 때 아는 노래가 나오면 가만히 있기가 힘들다.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춤추고, 노래를 웃기게 따라 부르면 연주는 입을 가리고 한참 웃는다. 사실 웃겨서 웃는 건지 우스워서 웃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내 모습이 우스워서 그런 의심을 한다. 가만히 있을 때도 주목받는 애는 절대 모른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짓을 하면 관심이 온다. 근처 테이블에서도 힐끔거리고 쳐다본다. 남자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긴 하는데 정작 우리 테이블 근처로는 안 온다. 아마 나 때문인 것 같다. 친구들처럼 실루엣이 드러나는 옷을 입지도 않고, 얼굴도 예쁘지 않아서 그렇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는 말은 나한테 딱 어울린다. 괜히 멋쩍어 혼자 잔을 비웠다.

 

      왜 혼자 마셔 치사하게.

 

     다 풀린 눈으로 연주가 자기 잔을 들어 보인다.

 

     친구들이 시켜서 그러는데. 짠 좀 같이 해주세요.

 

     발그레 한 얼굴의 쉼표 머리 남자는 어물쩡하게 우리 테이블로 왔다. 정확히는 연주에게 왔다. 턱에 팔을괴고 있던 연주는 흘러내린 니트를 천천히 올렸다. 나와 다르게 쌍꺼풀이 없는 연주는 귀여웠지만 우아했다. 물컵을 확인하더니 테이블을 훑어본다. 숨을 참고 한번에 술을 삼킨 후 바로 물을 마시려는 의식을 준비하는 거다.

 

     얘 대신 저랑 마셔요.

 

     느릿한 연주의 행동이 딱 취한 사람 같았다. 반대편에 있던 물통을 연주에게 건네며 대신 말했다. 남자는 마치 언제부터 거기 있었냐는 듯 나를 쳐다봤다.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건배를 하고 돌아갔다. 더 이상 한 번에 넘기지 못하는 소주를 울컥 마시고 앉았다. 토할 것 같다. 물을 붓고 끓이고를 반복해 너덜너덜해진 해물짬뽕 국물을 한입 떠먹었다.

 

      고마워. 너 덕분에 살았다. 쟤 눈빛 완전 이상했어.

 

     연주는 은은하게 웃으며 말했다. 남자가 돌아간 테이블에서는 영웅을 반기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차가운 물이 내 사타구니를 적셨다. 지금 누가 누굴챙기는 거야. 눈이 번쩍 뜨였다. 줄곧 따듯했던 곳에 차가운 게 쏟아지니 이상한 게 들리는 것 같았다. 호구짓 그만하라고. 지금 너 알아주는 사람 아무도 없다고.

 

     물이라서 괜찮아 연주야.

 

     당황한 연주 대신 휴지를 뽑아 대충 문질렀다. 나름꾸민다고 아끼는 바지를 입었는데 그게 하필 회색이다.

 

     이제 슬슬 가자 얘들아.

 

    몸통을 흔들거리는 친구들은 모두 휴대폰으로 자신을 안전하게 데려다줄 누군가에게 연락하고 있었다.

 

     얼마 나왔는지는 내일 보낼게.

 

     카드를 꺼내서 먼저 일어났다. 계산을 하려고 기다리는데 자동문이 열리고 익숙한 사람이 들어왔다.

 

     야. 오랜만이다. 연주 많이 취했지.

 

    연주의 남자친구였다. 가게를 몇 번 둘러보던 성재는 연주를 발견하고 두 팔을 벌렸다. 둘은 고등학교 때부터 연애 중이다. 나는 연주랑 붙어 다니느라 성재와도 자연스레 친해질 수 있었다. 친구의 애인에게 호감을 가질 생각은 없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성재는 좋은 남자다. 외형적으로나, 내면적으로나 멋진 친구다. 사교성이 좋아 친구가 많은 연주는 약속이 잦다. 성재는 딱 그 반대이다. 없는 시간도 쪼개서 연주를 데리러 온다. 눈에서 꿀 떨어진다 같은 흔한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성재는 자신의 눈동자를 연주의 거울로 만든다.

 

     너네 합석했어?

     나 있을 때 합석 들어오는 거 봤냐.

     하긴.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성재는 흘깃 웃으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1층에서 우리는 각자 흩어졌다. 한 번에 택시 타고 가겠다는 친구들을 빼고 나와 연주,성재가 남았다.

 

     연주야. 못 걷겠으면 업어줄게.

 

    연주는 고개를 젓고 성재의 팔에 기댔다. 나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성재는 조심스럽게 연주의 팔짱을 뺐다. 질투 날 정도로 잘 어울리는 커플이다.

 

     라이터 좀. 너는 마을버스 기다리려고?

 

     불을 붙이던 성재가 말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연주의 가방을 든 성재는 맞은편 소나타로 향했다. 쟤가 언제 면허를 땄지. 연주는 장난스럽게 성재에게 매달렸다. 성재는 금방 피우던 담배를 꺼버리고 서둘러 연주를 챙겼다.

 

     그럼 우리 먼저 갈게. 그래도 네 덕분에 매번 마음이 편하다. 고마워.

 

     대충 손을 휘적였다. 서로 의지할 수 있고, 챙겨줄 수도 있는 바람직한 사이였다. 나는 담배를 아직 다 피우지 않았다. 마을버스 막차도 이미 갔다. 친구들도 갔다. 이제 나도 돌아가야 할 곳으로 간다.

 

 

     술은 왜 대신 마셔줬지. 성재한테 들키기라도 하면 연주랑 또 싸워서 내가 피곤해지니까. 먼저 잘 쳐내준 거지. 괜히 챙겨준답시고 모르는 사람 무안하게 한 건 아닐까. 짠 한번 하고 가는 게 뭐가 나쁘다고. 곱씹어 볼수록 오지랖이었던 게 확실해진다. 연주는 기억도 못 하겠지만. 나 덕분에 마음이 편하다고. 어떤 부분에서 마음이 편한 걸까.

 

     내릴게요.

 

     다른 사람이 내 뒤를 비집고 나오는 탓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종점까지 가기 전 아파트 단지를 하나 지난다. 보통 빼곡했던 버스도 그 정류장을 지나면 한산해진다. 빈자리가 생겨 앉았다. 성재랑 비슷한 옷차림을 하고 나란히 담배를 피우던 장면이 생각난다. 마치 연주를 뺏긴 비련의 남자 조연의 모습을 한 나. 친구들보다 키도 더 큰 내 모습. 때 탄 검은색 컨버스와 다리 두 짝도 들어갈 것 같은 바지 통. 부끄러워진다. 이런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는 사람은 없다. 혼자 알아서 잘 가야 한다. 근데 잘 간다. 그게 너무 싫다. 보호받고 싶고, 누가 나를 좀 챙겨줬으면 좋겠다.

 

     안녕히 계세요.

 

     버스가 코너를 돌 때 속도를 줄이지 않아서 몸이 크게 기울었다. 내릴 때가 됐다. 맨정신에는 지독한 축사분뇨 냄새가 이상하게 고소하고 개운하다. 걸으면서 담배를 피워도 뭐라 할 사람이 없는 마을이다. 젊은 나랑 어울리지 않는 이곳은 낮과 밤의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낮에는 뭐든 이루어줄 수 있을 것처럼 광활한 논이 잘 보인다. 그런데 어두워지면 논이 마치 낭떠러지 밑 같다.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보이지 않아서 무섭다. 가로등은 여덟 개 중 네 개만 켜져 있는데 작년까지만 해도 가로등 자체가 없었다. 생긴 건 좋지만 가끔가로등 불빛이 싫어지기도 한다. 노래를 듣다 북받쳐 운다거나, 도저히 집에 갈 때까지 오줌을 참을 수 없을것 같다거나. 담뱃불을 딱밤 때리듯 끄고 농수로에 던지려다 말았다. 이제 마을의 농수로도 신경 쓸 줄 아는완벽한 주민이 되었다. 작게 빛나던 십자가의 빨간 불빛이 발밑으로 퍼졌다. 우리 집은 교회 옆이다. 누가 따라올까 무서운 동네는 아니다. 하지만 매번 마을의 밤은 나를 벗긴다. 버리지 않았던 꽁초를 마당 재떨이에 버렸다. 도어록 비밀번호를 천천히 누른다. 이제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되는 곳에 도착했다. 어떤 방해도 받지 못하는 나의 집. 그래서 잡념을 없애주지 못하는 곳이다.

 

     이별 직전의 남자친구를 붙잡듯 변기를 끌어안으며 해물짬뽕과 그 외의 것들을 게워냈다. 입 주위를 손으로 훔치려는데 검지와 중지 사이에 벤 담배 냄새가 변기를 한 번 더 끌어안게 했다. 분명 눈을 감고 있었는데도 주위가 어지럽게 돈다. 숨죽여 화장실 문을 닫고 나왔다. 침대에 누워 하늘과 똑같아진 방 천장을 바라봤다. 오늘도 참 얻은 것 없이 알차게 놀았다. 나는 사람이 싫은데 왜 사람 없이 못 살까. 재미있었던 것 같은데 왜 코가 찡할까. 문득, 어서 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이 되면 내가 언제 잠들었는지 기억나지 않겠지. 사람이 인지할 수 없는 순간은 잠들기 직전이다. 누워서 왜 잠이 안 올까 했던 것 같은데 눈을 떠보면 주변이 환하다. 지금처럼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어느새 잠이 들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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