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선아 Jul 31. 2023

<딱궁이> 사우나에서 회개하기

소서(小暑)호, 마지막 주 연재



에세이 - 사우나에서 회개하기




   두 손이 저절로 공손해지는 곳이 있다. 아침 중 제일 이른 아침에 사람들이 가장 많다. 혹은, 모두에게 특별한 날. 예컨대 명절이나 새해를 앞두고도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성별이 확실하게 구분되어야 하며, 주 고객층의 연령대가 높은 편에 속한다. 나는 여름보다 겨울에 가는 걸 좋아한다. 배고플 때 가면 배를 채울 수 있다. 배가 부를 때 가더라도 저절로 소화가 된다. 사우나에서 나는 아직 산전수전을 다 겪지 못한 뉴비의 몸이 되어 살금살금 옷을 벗는다.


   코로나 때문에 몇 년간 사우나에 가지 못했다. 마스크가 완전히 해제된 지금에서야 종종 가는 중이다. 내가 사우나에 인형을 가지고 가야 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여기는 변한 게 없다. 여전히 수건은 한 사람당 두 장만 주고, 드라이기는 동전을 넣어서 사용해야 한다. 아마 변한건 목욕비, 세신비, 계란값 등일 것이다. 캠핑 중에 먹는 라면, 밤에 먹는 라면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건 감히 사우나에서  먹는  라면이라고  말하겠다. 번외편으로 바나나우유나 미에로 화이바도 있다. 식혜와 맥반석 계란은 너무 기본적이라 설명하지 않겠다.


   사우나 메이트는 우리 외할머니다. 명애 씨는 내게 이 세계를 맛보게 해준 분이다. 내가 아무리 밖에서 언니가 되고 선배가 되어도 여기 들어오면 무조건 어린 애다. 옷차림을 보고 나이를 예상할 수 없는 이곳에서의 기준은 피부의 탄성과 가슴 정도가 된다. 명애 씨와 나는 냉커피를 사서 목욕하는 곳으로 간다. 여기서 냉커피는 아메리카노가 아니다. 블랙커피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커피다. 양손에 골고루 사우나를 제대로 즐길 거리들을 쥐었다. 우리는 스크래치 가득한 하얀색 바구니와 의자를 들고 자리를 잡는다.


   명애 씨와 나는 씻는 자리를 줄곧 세신 하는 곳과 가깝게 한다. 팔십 이번 오세요~ 같은 소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친절한 세신사 님들은 못 들었을 때 찾으러 와주시기도 한다. 목욕 바구니를 풀어두고 락카 키를 세신 하는 곳에 맡긴다. 어렸을 때는 힘이 없으니 세신 받는 게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괜히 민망하다. 사지 통통한 젊은이가 까마득한 선배님들에게 때를 밀린다는 것이 나를 쭈뼛거리게 만들었다. 조금이라도 덜 힘드시라는 의미에서 나는 확실하게 몸을 불려야 한다. 본격적으로 탕에 들어가기 전이다. 가볍게 샤워를 한다.


   펄펄 김이 오르는 탕에 들어가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뜨거운 걸 시원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을 살진 못했나 보다. 물속에 발목과 정강이까지만 들여보내고 잠시 기다린다. 뜨겁다는 감각이 몸에 잘 섞여들 때까지 참는다. 그래서 내가 제일 신기한 건, 아무렇게나 덥석 몸을 풍덩 담가버리는 사람이다. 사실 여기에서 탕에 쉽게 못 들어가는 사람은 나뿐인 것 같다. 세 번의 깔짝거림을 지나 완벽히 들어왔다. 오래 있지도 못할 거, 짧고 굵게 머무르려 목까지 들어와버린다. 뜨거운 증기 때문에 숨을 쉬기가 불편하다. 여기는 노래도 나오지 않는다. 큰 소음이래봤자 냉탕의 물줄기 소리, 그 여자를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식의 소리만 들린다. 명애 씨와 나도 소음을 낸다. 내부의 소음이다. 오래된 어제와 예민한 오늘과 거창한 내일을 생각한다.


   이제 분홍색 도마에 누운 생선이 될 차례다. 세신사 님은 누워있는 나의 정강이를 살짝 밀어보신다. 얼마나 밀릴 것인지 간을 본다. 생선의 비늘을 벗기기 직전처럼 말이다. 처음의 때 타월은 백이면 백 아프다. 그럴 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조금 아파요. 하면 타월이 초록색에서 노란색으로 변한다. 마치 여기 관람 등급이 한 단계 내려간 것 같은 기분이다. 옆에 나보다 먼저 생선이 되어 누워계신 여성분이 말했다. 역시 아가씨 살결이라 아픈가 봐. 호탕하게 웃으셨다. 나는 쑥스럽지만 멋쩍게 웃었다. 세신사 님의 수신호에 따라 몸을 꼬박꼬박 돌려드렸다. 벅벅 하는 효과음이 만화처럼 공기 중에 떠다니는 것 같다.


   때는 밀면 밀 수록 더 많이 생긴다고 한다. 나는 그게 꼭 ‘거짓말’ 같다.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을 덮기 위해서 또 다른 거짓말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때가 벗겨질 때마다 나의 거짓들도 탈락되는 게 아닐까. 그래서 항상 사우나에 다녀오면 다시 태어난 것처럼 개운했나 보다.

이전 16화 <딱궁이 합동 연재 6> 잊어야 하면 잊을 수 없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