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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 Kim Jul 05. 2017

타인을 존중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

그 사람의 전문성을 이해해주고 프라이드를 지켜준다면



가만히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늙어가는 자리가 있어.


매 년 여름이 오고 장마철이 되면 클라이언트 미팅에 다니며 돈 되는 글을 쓴다. 봄이 끝날 때 까지는 쓰고 싶은 글만 썼다면, 이제는 비스니스를 할 차례였다. 인생은 기브 앤 테이크, 그래야 또 소설 쓸 돈이 생기니까.      


클라이언트 미팅은 절대적으로 참석하는 편이 좋다. 현장의 분위기와 참여한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는 작업을 끌어가는 데 절대적인 도움이 된다. 그러나 세상을 이끄는 2:8의 법칙처럼 모든 미팅이 효율적인 것은 아니고, 아무 말 대잔치도 더 많다.      


문제는 그런 말 안에서 또 클라이언트들이 원하는 핵심이 있다. 그냥 한 마디씩 툭 던지는 말이라도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설령 그것이 아무 영양가 없는 멘트라 해도 적절한 리액션을 취해야 한다. 게다가 정신을 놓으면 순식간에 온갖 종류의 수다의 장이 펼쳐지기 때문에 집에 빨리 가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모인 이유를 꼭 환기시켜야 한다. 까딱 잘못했다간 약 2시가 가량 ‘여긴 어디, 나는 누구’의 시간이 도래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한 번 미팅을 하고 나면 꽤 많은 에너지가 소모돼서 부쩍 늙어있기 일쑤다. 동안을 유지하려면, 일을 하면 안 되는 것은 확실한데. 통장이 텅장이 되어가는 요즘, 내가 무언가 마다할 선택권은 없다.  



말말말, 의도치 않은 무례함으로 누군가는 상처 받을 수도 있음을 


 언젠가 경기도에 거주하는 클라이언트의 연구실에서 미팅을 했다. 새로 개발하는 제품 전략 PT에 들어갈 영상 자료였는데, 마지막으로 다 같이 모여서 시나리오를 수정하기로 했다. 스크린에 시나리오를 띄워놓고 한 줄씩 문장을 다듬으며 작업을 진행했다. 사람들이 의견을 제시하면 내가 대안을 이야기하거나 최종 확정하는 프로세스였다. 그러던 중, 한 문장의 조사와 단어의 순서를 놓고 의견이 대립됐다. 그러다 누군가 매끄러운 문장을 이야기했고, 그 자리에서 박수가 나왔다. 누군가 그 사람에게 말했다. 이야너도 작가 해도 되겠는데?”     


그 순간 나도 노련한 사회인답게 ‘하하하’ 웃었지만 사실 속이 쓰렸다. 대놓고 전문성을 무시당한 느낌에 마음이 요동쳤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별 뜻 없는 장난이란 걸 알고 있지만 그랬다. 나를 비난하기 위한 말이 아님을 알아도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갔다. 게다가 그들은 내 작업물을 좋아했지만, 나는 그때 작업을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다. 일을 하면서 느낀 보람보다 ‘너도 작가 해도 되겠는데?’라는 한 문장이 준 상처가 더 컸다.    

  

누군가의 전문성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는 것은 삼가야 한다. 구성작가 일은 내가 전문성을 갖고, 돈을 버는 고유의 비즈니스 영역이다. 돈과 작업물이 오가는 예민한 영역이다. 그때 나는 내가 정성스럽게 가꿔나가는 텃밭이 트럭으로 짓밟히는 기분을 느꼈다.      




타인을 존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자신의 프라이드를 중요시하는 만큼, 타인의 프라이드도 동일하게 지켜주면 된다. 누군가 오랜 시간 집중하는 영역을 이해해주는 것만으로도 꽤 멋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만약 모르겠다면 그냥 말하지 않는 게 제일 좋다. 굳이 아무 말이든 꺼내서 공백을 채우기보다 가만히 있는 게 배려다. 의도치 않은 무례함에 누군가는 상처받음을 알아야 한다. 많은 부분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지만, 딱 한 부분에만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 나뿐만 아닐 것이다. 자신의 일에 인생을 건 사람에게 장난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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