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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 Kim Jan 12. 2018

1년 동안 소설만 쓴 결과 보고: 시간을 믿는다는 것

그 1년은누군가에게는 100년도 될 수도 있고, 인생일 될 수도 있다.

다른 건 모르겠고, 일단 이거 아니면 안 돼.


대학생 때 절대로 소설가가 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읽었던 소설들은 계속 내면으로만 파고들어가서, 읽으면 읽을수록 너무 우울해졌다. 왠지 당장이라도 삶이 끝날 것 같고, 그 순간이 내게 남은 마지막 날 같았다. 너무나 심하게 공감되고 이입돼서 무서웠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우울한 글을 쓰려면, 당사자는 얼마나 우울해야 하는 거야? 그냥 무서웠다. 


그런게 이제와서 사뭇 진지하게 "나는 이제 소설을 써보려고."하고 있다니. 내가 이런 말을 내뱉을 줄 나도 몰랐는데, 누군들 알았을까? 내가 그렇게 '일단 이건 안 돼'라고 말했던 소설의 세계에서 1년을 허우적거리고 있을 거라고 알았을까? 


그러니까 인생, 그런 거다. 나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누군가가 올려놓은 레코드판에서 신나게 춤을 춘다. 벗겨지지 않는 빨간 구두를 신은 것처럼, 내가 기피하고 벗어나려고 한들 계속 어떤 점을 향해 달려가면서. 멀어졌다고 느꼈지만 전-혀 벗어나지 못한 채로, 신명 나게 춤을 춘다.


거창하게 "아무래도 소설을 쓰는 게 내 운명이었다."이게 아니라, "어쩔 수 없었다."에 가깝다. 아니 그냥, 어쩔 수 없더라고 그때는. 그거 아니면, 다른 건 소용없게 된 날이 와버렸으니까. 어느 날부터 나는 한 이야기에 꽂혀버렸고, 이걸 쓰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음을 느꼈다. 3년 후, 5년 후에 내가 뭘 하든 좋으니, 지금 이 순간에는 소설을 쓰고 이야기를 완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나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의 결정에는 나이도, 경제상황, 작법이나 전공지식 같은 것은 전혀 개입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방을 하나 구했다. 나랑 책 40권만 가지고 가서, 틀어박힐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처음 어떤 판에 들어가는 '아무 것도 모르는' 습작생의 패기, 혹은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집요한 열망 하나로. 


30권의 책을 읽은 뒤, 소설 한 편을 썼다.


2017년 1월, 40권의 책을 싸들고 나만의 공간에 도착했다. 인터넷은 모두 끊은 공간이었다. 그곳에는 오로지 40권의 책과 나뿐이었다. 시간이란 온통, 책에만 몰입할 덩어리들이었다.


나는 침대에서, 책상에서, 방바닥에서 책을 읽었다. 침대 머리께에, 방바닥에, 책장에 - 손이 닿고 시선이 가는 모든 곳에 책이 있었다. 일상의 환경이 책 속에서 이루어졌다. 자기 전에는 머리맡에 책을 놓고, 눈을 뜨면 손을 뻗어서 못다 읽은 부분을 마저 읽었다. 꼭 한 권을 통째로 다 읽을 필요는 없었다. 마음 가는 만큼만 읽고, 또 다른 책을 펼쳤다. 하루에 네다섯 권, 그보다 더 많은 소설책의 책장들이 손끝에서 펄럭거렸다.


그렇게 2주간 책을 읽다 보니, 어느 날부터 글을 쓰고 싶어 졌다. 20권, 또는 30권 정도의 소설을 읽고 난 다음이었다. 머릿속에 돌아다니는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써보고 싶었다. 눈 뜬 순간부터 눈 감는 시간까지 글자를 보고, 글자를 썼다. 그렇게 조금씩 써 내려갔다.


일주일쯤 지나자 뭔가 아니다 싶은 기분이 들었다. 내 글을 읽는 첫 번째 독자는 자기 자신이다. 나를 만족시킬 수 없는 글은 타인에게도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시간이 아까웠지만, 계속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 미련 없이 전부 쓰레기통에 버렸다.


글이 써지지 않았기에, 잠시 노트북에서 손을 떼고 또다시 종일 소설책만 뒤적였다. 감각이 깨질 때까지, 타인의 일목요연한 문장들을 찾아 헤맸다. 그러다 조금 진정이 되자 새로 쓰기 시작했다. 하루에 1장씩, 2장씩. 그렇게 6장을 쓴 뒤, 마지막 부분을 남겨두고 제주도로 떠났다. 5일 뒤, 인천에 돌아와서 나머지 부분을 한 장씩 써 내려갔다. 인천에 들어오고 3주가 되던 날, 10장짜리 단편소설 하나가 완성됐다.


책상에 내가 쓴 단편소설을 올려놓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기분은 - 애매하고 묘했다. 처음으로 내가 쓴 글에 대해 나는 어떤 정의도 할 수 없었다. 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마지막 문장까지 읽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누군가에게 '이게 무슨 기분이야?'하고 묻고 싶었다. 분명 내가 시간을 들이고, 타자를 치고, 공을 들여서 쓴 글인데 - 내 글이 아닌 느낌이었다. 낯선 사람의 작품을 읽는 기분이었다. 이런 감정이 처음이라 뭐라고 정의할 수 없었다. 다만, 마지막 마침표를 찍던 순간 내가 쓴 글이 나를 떠났음을 알았다.


소설의 평은 좋았다. 실력이 확 늘었어. 글 안에 철학이 있어. 흡수력이 대단히 뛰어나. 다른 것 신경 쓰지 말고 소설만 준비 해. 모두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사람에게 하는 말 같았다. 그리고 궁금했다. 지난 한 달 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했을 뿐인데, 무엇이 변화를 일으킨 걸까? 비로소 그 때야, 내 안에 있던 문학적(또는 배움의) 갈증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게 됐다. 원하는 대로 쓸 수 있게 되길 열망했고, 환경을 만들어 그 상황에 온전히 몰입했다. 


그 댓가는,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글 한 편과 처음 겪는 신경쇠약과 체력저하. 정신적 육체적으로 상태가 심각하게 안좋아져서, 나는 3주만에 방을 빼고 집으로 돌아왔다. 글 하나에 몰입하고 일상을 내팽게치면 어떻게 되는지 몸으로 배웠다. 균형잡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동시에 이제야 출발 선이 있는 레인 위로 올라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쓴다'는 행위 자체에 빠져있었다면, 이제는 '무엇을', '어떻게', '왜' 써야 하는지 고민할 시간이 왔다. 마음가짐이 바뀌었고, 스스로 성장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첫 습작 1년은?

뭐가 되든 좋으니 딱 1년만. 이런 마음으로 내게 주어진 유한한 에너지를 모두 끌어모아 2017년에 쏟아부었다. 그 1년은 내게 100년이 될 수도 있고, 인생 전부가 될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아침 1시부터 밤 11시까지, 꼬박 10시간 동안 습작에 매달렸다. 혓바늘이 돋고 코가 헐고, 손가락이 아프고 목이 따가워도 작업실에 갔다. 정말 손가락 까딱할 힘도 없었을 때도, 그게 싫지만은 않았다. 습관은 관성적이라서 다음 날이 오면 빨리 또 내 글을 완성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나만의 회고전을 준비했다. 내가 1년 동안 몇 개의 글을 썼고,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나름 1년 간의 통계를 매겨봤는데,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소설 부문

기      간 : 2017년 1월 7일~2017년 12월 16일 * 약 344일
파      일 : 총 329개. 평균 1일 1 글 작성!
용      량 : 총 25MB.
공      모 : 총 13건

-     봄     : 문예지 신인문학상 (문학과 지성사/창작과 비평/문학동네) 3곳
- 여    름 : 웹소설(장편), 스토리 공모대전(트리트먼트), 이야기 창작소, 중앙일보 신인상
- 가    을 : 브런치 북 프로젝트
- 겨    울 : 신춘문예 (동아일보-중편-/ 조선일보/세계일보) 3곳
- 심사 중 : 웹소설(장편), 판타지 소설(단편)

단편소설 하나 분량이 35KB라고 감안한다면, 이는


- 단편소설 670개 분량
- A4용지 총 5350장 (한글, 10포인트 기준)
- 장편 53권 분량
- 200매 원고지 48150장


으로 환산된다. 이럴 수가! 내가 한 해 동안 태백산맥, 토지, 삼국지 분량의 글을 썼다니! 물론 매일 저 분량들을 다 쓴 건 아니고 수정 작업하면서 기존에 써놓은 분량들도 다 축적된 거지만, 일단은 나 기분 좋으라고 이렇게 해놓는다.


 파일명들 모아서 프린트했었다. 사진은 파일명들 때문에 자체 모차이크


초짜면서 공모를 많이 한 이유는, 공모전의 또 다른 이름은 데드라인이기 때문이다. 날짜가 나와있다는 사실은 어떻게든 그때까지는 내 이야기를 완성하는 원동력이 됐다. 또한 공모전에 내고 나서야 내 글이 좀 더 객관적으로 보였다. 취업 원서를 쓸 때, 자기소개서를 내고 난 다음에 또는 면접장에서 나온 다음에냐 "아 이거 말했어야 했는데!" 또는 "이거는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라고 탄식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 결과 나는

- 1개의 중편소설과 6개의 단편소설을 완성했다.

- 15편의 에세이를 게시했다.

- 그 외 장편 분량의 웹소설, 트리트먼트 등 다수의 아이템을 구체화시켰다.


어떤 글은 이틀 만에 썼고, 어떤 글은 1년 내내 발전시켰다. 아주 오래 전부터 무의식의 세계에서 살고있던 소재들일수록 빨리 쓸 수 있었다. 물론 퇴고의 이야기는 다른 영역이지만. 웹소설은 단문 쓰기 연습도 됐고, 처음으로 매일 연재를 해보면서 장편 쓰기 힘을 기를 수 있었다. 중편도 처음 써봤는데, 단편과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다. 단편 4개를 한꺼번에 퇴고하는 느낌이라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했다. 그래도 완성했다. 토하면서, 울면서, '이러다 죽겠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나 천재 아냐?'라고 생각하면서, 그래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면서.


여러 편의 소설을 완성한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하루에 하나 정도의 글을 썼다는 사실에 스스로 뿌듯했다. 글 쓰는 일을 습관화하고 몸이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좋다.



2. 카피라이팅 부문

- 홍보영상 시나리오 총 11건 (이디야, 삼성, BMW, KT 등)
- 콘셉트 북 1권

운 좋게도 재정상태가 극악해지기 전에, 타이밍 좋게 일들이 들어왔다. 소설이 내가 하고 싶은 거였다면, 카피라이팅 업무는 나의 생활을 유지시켜줄 일이었다. 업무 특성상 한 시즌에 일이 "다급하게" 몰려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가장 늦게 합류해서 가장 빨리 일을 끝내야 하는 사람), 그래도 나를 믿고 계속 찾아준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카피라이터 커리어에 도움이 되고, 무엇보다 소설을 쓰기 위한 재정적 받침이 되었다. 꽤 재밌는 작업들도 있었고, 새로 알게 되는 분야도 있었다.   



나의 1년을 결정한 마음가짐의 차이


지난 1년은, 즐겁지만은 않았지만 분명 의미 있었다. 하루하루가 내가 몰랐던 사실들을 배워갔다. 너무 힘들었던 때는 내게 말했다. "누가 하라고 시켰어? 내가 한 거잖아. 포기하고 싶으면 다른 거 하면 돼." 그럴 때마다, 포기할 수가 없어서 꾸역꾸역 버텼다.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고, 벼랑 끝에 섰음을 깨달았다. 어쨌든 1년 동안은 어떻게든 하겠다고 결정했고, 내 선택에 책임을 지고싶었다.  "이거 괜찮은데?" 보다는 "이거 아니면 죽겠는데?"싶은 것을 선택했다. 완전히 사로잡혀서 다른 일은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다. 그게 목표, 꿈, 일 - 일수도 있고 사람, 사랑일 때도 있었다. 뭐가 되든 하나를 선택하면, 끝장을 봐야 다음 칸으로 발을 내딛는 거다.


그 과정에서 나는 몇 가지 사실들을 받아들였다. 의외로 나는 아주 예전부터 소설가가 될 수 있는 환경에서, 여러 가지 자원들을 흡수하면서 살아왔다고. 다만 소설가가 된다는 것 자체, 그 삶 자체에 두려움을 느끼고 애써 외면했다. 내가 처음부터 기피하려고 했던 요소들은 사실 나와 너무 잘 맞기 때문에, 그렇게 살면 어떤 고통들이 따라오는지 (불면증, 우울증, 고립 등) 직관적으로 느꼈기에 애초부터 바리케이드를 쳤던 게 아닌가 싶었다. 


내가 노력한 시간을 믿어 봐.


지난 1년간, 탈락은 일상이 됐다. 앞으로 더 많은 탈락을 하겠지. 결과에는 의의를 두지 않고싶지만, 조급함과 불안함까지 떼어놓기는 힘들다. 하루하루 불안하고, 매일매일이 조급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믿고 싶다. 내가 노력한 시간들은 5년 후, 10년 후 서서히 나타나리라고. 내가 해야 하는 건, 그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내가 온전히 몰입한 그 시간과 과정, 시행착오까지 믿어야 한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붙들고 있는 이 시간들이 -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다 줄 거라고 믿고싶다. 그리고 그 순간은 언제나 생각보다 가까이 있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어야 한다, 매일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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