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쓰는제인 Jun 21. 2021

[Jun:6월]유월 앓이




주말 아침, 침대를 박차고 나와 이불을 정리하고 호기롭게 밀린 빨래부터 넣어둔다. 빨래 돌아가는 소리에 맞춰 가벼운 아침을 먹기 위해 밥을 짓고 오늘 해야 할 일들을 포스트잇에 적어 붙여둔다.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하다 보니 햇살에서도 여름 냄새가 묻어 나온다. 나는 풀내음이 섞인 유월의 바람이 좋다.


새들이 지저귄다. 빨래가 끝났다는 소리가 나자 꾸역꾸역 손으로 안고서 건조대에 널어두니 섬유유연제 냄새가 향긋하다. 올려둔 물이 다 끓었다는 표시로 김을 내뿜고, 인스턴트커피에 물을 붓고 나니 새삼 평화롭다. 

침실에는 향초를 켜 두고 나왔다. 서재에 들러 타닥타닥 뭐라도 써보겠다는 듯이 글을 적어본다. 그러다 소파에 누워 퍼즐게임 몇 판 즈음. 따뜻한 바람이 커튼을 춤추게 한다. 창밖의 숲은 늘 푸르르고 청량하다. 바람의 맛은 적당히 촉촉하고 싱그러운 맛이다. 아, 여름이구나. 벌써 한 해의 반이 지나고 있다. 조금 조바심이 난다.







그러고 보니 마스크를 잘 쓰는 요즘의 습관 덕분에 감기가 몇 년째 걸리지 않고 있다. 코로나19가 선물한 일상에는 부정적인 것만 있는 게 아닌가 보다. 그래도 감기는 무릇 앓아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약을 먹고 링거를 맞아봐야 어쩔 수 없는 시간의 총량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몸은 가벼워질지 몰라도 완벽히 감기가 떨어지기까지는 며칠의 시간이 걸리므로.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어떤 인연과 헤어진 후 그를 잊는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면 나는 꽤 걸리는 타입에 속했다. 반년이 되기도 하고, 그 사람과 헤어졌던 그 계절이 돌아오기까지 걸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해가 거듭할수록 퐁당 빠지지 않으려 애쓰다 이제는 인연이란 글자에 한 발만 걸치고 있는 모양새다.


유별나지도 지독하지도 않았는데, 돌아서 이별하고 난 후에는 지독히 그를 앓은 게 서러웠더랬다.

지나간 나의 당신들은 잘못이 없었다. 사랑이 거기까지였으니까. 하지만 뒤늦게 깨달았다. 내 잘못도 그다지 없다는 것을. 내 몫으로 남겨진 내 슬픔은 그저 뛰어난 내 상상력과 기대와 실망 같은 것들로 비롯된 것이었으므로 그 정도는 앓아도 될 양이라 자신했다.


그리고 또 괜찮아지는 어느 날엔 좋았던 것만 기억하고 저장해두는 게, 나쁜 기억들은 훌훌 털어내 지는 게 나의 방식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늘 갈망했다. 이기적이고 싶지 않아서 언제나 받을 수 있을 만큼만 사랑을 주고 내가 기대어도 좋을 만큼만 내 어깨를 내어주는 일. 사실은 무척 사랑받고 기대고 싶은 마음을 미뤄두는 일.






해가 길어져 저녁인데도 환한 오후다. 오랜만에 따뜻한 차를 마셨더니 체온이 조금 올랐다.

그런데 나는 아직 차가운 것 같다. 차를 더 마셔둬야겠다, 장마가 오기전에.




매거진의 이전글 [May:5월] 버티는 삶, 의식의 흐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