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쓰는제인 Jun 02. 2024

모닝페이지, 2년 만의 글

오늘 아침에는 글이 쓰고 싶어졌다. 


모닝콜이 울리지도 않은 일요일 아침에도 나는 출근 시간에 맞춰 잠에서 깼다. 오늘은 어제처럼 퍼져있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에서 들여다본 시계는 7시 32분을 가리키고 있다. 어느 숏폼에서 본 게 생각이 났다. 어떤 부자가 아침에 일어나서 30분간 하는 것들을 인터뷰한 내용이었는데 그러고 보면 나는 꼭 반대로 살았던 것만 같아서 얼추 비슷하게라도 해봐야지 했던 아주아주 작은 결심. 물을 한잔 마시고 명상과 기도, 그리고 휴대폰은 절대 확인하지 않는다고 했다. 물은 마셨는데 명상도 하지 못하고 어쩌다 휴대폰도 들여다봤지만 오늘만큼은 언젠가 며칠쯤 해봤던 모닝페이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일어나 노트북 앞에 앉았다. 



3페이지 정도를 써야 하는 모닝페이지는 생각보다 꽤 길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의식의 흐름대로 일필휘지 하다 보면 절반 이후에는 진짜가 나온다는 것이 핵심인데, 나는 그것들이 퍽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도 나를 들여다보고 내 진짜가 나올 거라는 것이 얼마나 흥미로운가. 그게 꼭 완벽한 문장이 나오는 게 아니더라도 말이다. 




 지난 2년간은 브런치에 글을 거의 쓰지 못했다. 2년 전 오늘은 사회적 기업에 입사하고 장애인들과 함께 일하는 카페매장이 오픈하는 날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매니저가 되었고 매일 업무일지를 쓰면서 글을 쓰고 싶은 거의 모든 욕구를 일에 녹여냈다. 쓰고 싶은 글이 없었다. 분주하게 돌아가는 하루에 기록해 내는 것들만으로도 벅찬 시간들이었다. 어느 날은 감사로 채웠고 어느 날은 절규했다. 




 2년 전에 서른여섯이던 나는 만 서른여섯이 되었다. 정부가 만 나이를 도입하면서 내 인생을 다시 시작하게 해 주었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여전히 미혼의 1인 가정으로서 살아내고 있고 때로는 철부지처럼 때로는 성숙한 어른처럼 군다. 열심히 살아낸 것에 비하여 낙담하는 일을 겪고 또 감사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벌떡 일어나겠다는 자신만만함은 없는데 낑낑거리며 일어날 마음은 있는 조금 찌질한 30대. 


2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자면 너무나 많은 변화들을 겪기도 했어도 나는 여전히 나겠지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보다 나를 사랑하게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알게 되었고, 작게 신앙이 생겼고, 더 이상 약을 먹지 않게 되었다. 사랑이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은 사람이 되었고 사랑스러운 쪼꼬미 조카에 사랑을 듬뿍 주는 고모가 되었다.




 저번 주에는 본가에 다녀왔다. 내 정신건강에 가장 해로움을 주는 부모님과도 전보다 훨씬 매끄럽게 잘 지내지만 그날 아침 대화에서는 엄마에게 내가 불행하다고 고백했다. 그건 엄마처럼 열심히 살다 보니 겪은 좌절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얼마 전 유력했던 내가 지원한 사내 채용에서 탈락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만 육십 육 세가 되도록 멈추지 못하는 열차처럼, 휴식하지도 자기 몸을 돌보지도 않으면서 일하기만 하는 엄마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어떤 성취와 그것이 주는 유익들이 내 삶의 태도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주더라도 대체로 불행한 이유란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일 것이고, 일이 아니라 삶에서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일을 하면서 행복하다고 답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냐마는 열심히 일한 것과 열심히 산 것은 분리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 수 있다. 어차피 행복은 순간이라서 행복을 느낄 때마다 행복하다고 말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무용한 것들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쓸모없는 것 같은 일들에게서 쓸모를 찾고 어디에서든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내 존재를 증명해 나가는 것이 마치 사명처럼 여겼는지도 모른다. 어떤 일을 하는 것이 내 정체성이 되고 가치 있는 일을 하는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 될 거라고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모든 것들이 틀렸다고 생각될 때, 내게 쥐어진 것들이 모두 쓸모없는 거라고 깨달았을 때 나는 불행하다고 느꼈다. 



 

매일의 오늘은 달랐다. 그건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조금 더 자고 싶은 일요일일 텐데 더 자지 않고 일어나 씻고 글을 쓰고 6월의 화창한 햇살을 맞으면서 오늘의 일과를 보내고 귀가할 것이다. 너저분해진 집을 치우고 빨래를 하고 퍽 만족스러운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오늘 저녁부터 출근하기 싫다고 읊조릴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 불행을 느낀 나는 요즘 잠시 멈춰서 다른 오늘들을 살아낸다. 휴식도 아닌 것 같고 홀연히 떠나 여행하고 있지도 않다. 특별히 기대하지도 않고 실망을 장전하고 있지도 않다. 그저 어제와는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르게 시간을 보내려 할 뿐이다. 


그래서 이따금 나를 살펴보기 위한 기록을 하고 싶다. 해야 할 것 같다, 그것도 아침에. 만 서른여섯의 나를 돌보는 일은 나 밖에 할 수 없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