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쓰는제인 Aug 18. 2024

샤라웃 투 스티브잡스

8월 셋째 주

240818



   아이패드를 샀다. 캘리그래피를 좀 더 본격적으로 하기 위하여서다. 함께 뭔가를 만들기로 했던 친구의 어떤 도전 앞에 나는 뭘 하지, 하다 보니 숙원 같았던 패드를 사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검색을 하다가 아이패드병은 아이패드를 사야만 낫는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중고로 구매하게 된 아이패드의 판매자와의 거래에서 그가 갤럭시 휴대폰 유저인 것을 보았다. 그에게 무슨 목적으로 구매하게 되었었는지 물으니 단순히 유튜브 시청과 pdf 파일을 보기 위해서라고 답했고, 불과 반년만에 당근 하는 현장에 마주하고 있으니 그의 답은 그걸로 충분했다. 



물론 나도 앱스토어에서 가장 먼저 설치한 어플 중엔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포함되었다. 침대에 누워, 보다 넓은 화면으로 보게 된 유튜브가 만족스러우면서도 이러면 안 되지, 하고 책상에 앉은 것처럼 원래의 목적을 상기하며 작업할 화면도 켰다. 고대했던 아이패드와 애플펜슬을 샀다고 후련해진 건 아니다. 적절한 시기에 적당한 가격의 거래를 할 수 있어서 만족한다는 정도. 



풍족한 자금이 있었다면 벌써 새 제품을 사고도 남았을 텐데 단지 목표가 뚜렷해졌기에 산 것이지만, 나는 이것이 여행을 나서는 용기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뭘 사는 건 좋은 거지, 어딜 가는 건 어떻든 좋겠지. 


그런데 발목 잡는 것이야 찾자면 너무나 많다. 사야 할 이유와 사지 말아야 할 이유 사이에서 저울질하며 가성비도 따져야 하고 선택지도 너무나 많은 세상인 것을. 손해보지 않는 적절한 선택을 했을 테지만 정신승리해야만 하는 실패의 경험들을 떠안기엔 난 참 여유가 없다. 사치를 부린다 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는데 사치의 경험마저 주저하는 나를 발견하고, 그렇다고 YOLO 하며 골로 간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고작 아이패드 사면서 무슨 용기와 결단까지 운운할까 싶다마는 나는 기어코 내가 저장해 둔 글들 가운데 스티브잡스의 글까지 읽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 중에는 ‘우리 인생의 삶을 유지할 만큼 적당한 재물을 쌓은 후엔 부와 무관한 것들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 있었다. 


인생은 무엇으로 남길까. 혹시 나는 부와 무관한 것들을 추구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 인생의 삶을 유지할 만큼의 재물을 쌓지 못한 것은 아닌지... 그는 죽음 앞에서 자신은 인생에서 성취한 부를 가져갈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이 갖고 갈 수 있는 것은 사랑에 빠졌던 기억들 뿐이라고. 아, 내가 사랑에 빠진 적이 언제였나. 혹시 내 인생에 사랑이 빠져있지는 않던가.




 근 몇 년간 갤럭시 세계만을 경험하면서 아이패드를 만져보다 보니 새삼 생경하다. 이렇게 멋진 것을 만들며 일 빼고는 즐거움이 없었다고 고백했던 스티브잡스는 대체 얼마큼의 고통을 겪은 것일까. 그는 이 아이패드를 만들지는 않았겠지만 애플의 생태계를 만들었다. 그를 마치 신처럼 여기는 앱등이들(한때, 나도)을 남겼으면서 그가 죽음 앞에서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남기다니. 나는 그걸 이 아침에 읽고 아이패드를 운운하는 글을 쓰고 있다니, 참 재미있는 일요일이다.



 아이패드를 만지면서 구매를 결정하도록 기폭제가 되어준 친구, 쓰던 아이패드를 판매한 사람, 사랑이라는 단어를 말하며 죽은 스티브잡스를 떠올려본다.


건강해야겠다. 그러나 건강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사랑해야겠다. 그러나 무엇이 사랑인지는 알면서 사랑하기 위한 사랑을. 일을 해야겠다. 최선을 다할 테지만 과정이 행복한 일을 하고 싶다. 대충 내 인생에서 뽕을 뽑고 가고 싶다는 뜻이다. 


이전 10화 대체로 행복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