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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제인 Sep 08. 2024

인정으로부터의 자유

9월 첫 주

240903


 인정받기 위해 부산했던 나는 어쩌면 이번 한번,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뭔가를 이루었다는 걸 너무도 인정받고 싶었는데 그게 무너져서 내 삶을 모두 부정당한 것 같았던 좌절. 그래서 내 가치를 알아주는 조직에의 쓸모. 타당한 가치. 능력을 평가받고 그에 맞는 노동을 제공할 수 있는 인재. 그 모든 단어들이 허무와 연결될 수 있음을. 



 감정의 대부분이 단조롭고 일상에 별 거 없던 때에 평안과 행복을 누릴 것 같지만 그렇지 못했다. 하루에도 여러 번 화가 났다가도 어이없게 빵 터지기 시작해 미친 여자처럼 웃는 현재가 어쩌면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훨씬 행복하다. 치열하게 일하고 일을 생각한다. 꿈에서도 일하고 깨고 나선 조금 짜증도 낸다. 누군가의 인정은 사실 덤이다. 스스로의 즐거움을 발견하고 성장해 가는 나를 느끼는 것이 참 좋다. 



그래도 과한 욕심은 내지 않는다.

예전엔 할 수 있겠다는 패기로 덤볐다면 지금은 모든 것에 YES를 하기가 어렵다. 그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하고 나뿐만 아니라 함께 감당해야 할 사람들을 생각해야 한다.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할 수 없다고 말할 용기도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 지혜롭고 신중해야 할 태도도 겸비해야 한다. 높은 자존심과 낮은 자존감을 드러내기보다는 적절히 굽어질 수 있을 만큼 말랑해져야 했다. 




240908


 장녀로서 차근히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겠다고 마음먹었던 학창 시절 이후로 줄곧 나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딸이 되었다. 애당초 나는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해 줄 딸이 아니었다. 당신들의 욕망을 채울 수 있을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가스라이팅의 시도, "넌 그거라도 잡고 있어야 결혼이라도 할 것 아니냐"와 같은 말들로 내 값이 쳐졌어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환경에서 벗어난다면 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곳에 가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아주 적은 희망 하나 때문에 나는 과감히 결정하고 용기를 냈었다. 부모님과의 관계가 무너져있는 것 같지만 물리적 거리가 있는 지금 나와 부모님은 퍽 잘 지내고 있다. 그들을 원망하고 이해하지 못해서 떨어져 있기보다는 사랑하고 납득할 수 있기 때문에 떨어져 지내는 것이다. 그래도 상처 주는 행위가 멈추기는 어려워 보이므로 그것들로부터 나를 보호해야 할 것은 나여야 하니까.



문득 서른여덟의 내가 참 잘 자라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통증이 옅어졌지만 아프지 않았던 건 아닌데.

그렇다고 나만 각별하지 않다는 생각도 함께 하는 것에,

썩 괜찮은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 기특하기까지.



그리고 그런 말을, 언젠가

나의 부모에게서 들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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