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생각법 303 - 새로운 정체성에 따라 살기
"아빠 어디 갈까?"
"다 좋아, 니 가고 싶은 데로 가."
한 달에 한 번 아빠랑 데이트를 하기로 했지만, 2024년 두세 번 정도밖에 기억이 안 납니다. 매월 이벤트가 생겨서 아빠랑 단 둘만의 데이트 시간을 많이 갖지 못했거든요.
퇴사를 한 이유가 시간의 자유를 갖기 위함인데, 책 쓰기 수업과 독서모임, SNS 등 온라인 활동에 정신을 팔다 보니, 정작 아빠와 남편과의 외출을 종종 미루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음에, 다음에 하고 있더라고요.
2025년에는 본질에 집중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중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도 늘려보려고 하거든요. 올해 3가지 우선순위는 1순위 가족, 2순위 책, 3순위 재정관리입니다. 1, 2, 3 순위 간에 우선순위를 매기기는 쉽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건 가족이죠. 그런데 2순위에 있는 책이 계속 치고 올라옵니다. 가족이 뒤로 밀립니다.
남편이 옆에서 저를 가장 많이 지켜보는 사람인데요. 요즘은 제가 여유가 없어 보인다네요? 뭐에 신경을 쓰는지, 잠시도 멍 때리는 시간이 없다고. 그럼 안된다고. 멍 때리는 시간을 가지랍니다. 그래야지요. 남편이 현자니까요. 제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늘 챙겨줍니다.
지난달, 아빠와의 여행을 선언했습니다. 날짜를 계속 미룰 수밖에 없었는데, 드디어 이번 주에 날짜를 빼두었습니다. 강릉, 속초, 전주 중에 어디로 갈까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제 마음대로 하랍니다. 아빠가 서울로 이사 오시면서 바닷가에 많이 못 갔는데요. 바다를 좋아하시는데 늘 미안한 마음이 들었죠. 그래서 강릉으로 정했어요. 숙소부터 정하고 주변 식당들을 찾아봅니다.
아빠는 서예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수업은 절대 빠지지 않는 분이신데요. 이유는 수업 끝나고 함께 수업 듣는 분들과 점심식사와 티타임을 갖기 때문이에요. 아빠와 여행 가는 일정은 아빠의 일정을 마친 후에 떠나기로 했습니다. 집에 도착한 아빠를 픽업해서 강릉으로 떠났습니다. 오늘 모임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여쭤봤더니, 할머니 한 분이 그러더랍니다. 손주들을 보고 있는데, 요즘은 자기 먼저 챙기고, 아이들은 나중에 챙긴다고 해요. 먹는 것도 자신이 먼저 먹고 아이들은 달라고 하면 그때 준다고. 또 다른 할머니는 아들이 의사인데 두 쌍둥이를 키우고 있답니다. 어깨를 다쳐 수술을 했는데도, 손주들 챙기느라 정신이 없으시다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시더니 왜 그렇게 사느냐고 하셨다네요.
아빠가 할머니들과 티타임을 하고는 사진을 찍어서 서예반 단체 톡방에 공유를 하셨데요. 할아버지들도 계시는 방입니다. 댓글을 남기지는 않지만 얼굴을 보면, 좋은데 잘 다니신다고, 부러워하는 것 같데요. 함께 식사하자고 말씀드리지 그랬냐고 했더니, 그럴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이유는 다른 할아버지들은 집에 아내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수업 끝나면 바로 집에 가신다고. 보통 할머니들은 집에 남편이 있어도 모임에 잘 참여하신데요. 아빠는 엄마가 2년 전에 돌아가셔서 싱글이 되셨다 보니 여기저기 가고 싶은 곳을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다니십니다.
남편 빼고, 아빠와 여행을 왔습니다. 남편의 아내가 아니라, 아빠의 딸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했지요. 강원도를 가기 위해서는 저희 집에서 출발하는 게 더 가깝지만, 아빠 집까지 서쪽으로 가서 아빠를 모시고 다시 저희 집 앞을 지나 강원도로 넘어왔습니다. 이틀 동안은 효녀 모드와 막내딸 모드로 정체성을 On 시켜봅니다.
인스타그램에서 강릉 맛집을 찾아뒀습니다. 하지만, 숙소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식당이더라고요. 차를 또 타는 건 힘들어하실 것 같았습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식당으로, 지나가다가 그냥 한 군데 정해서 들어갔습니다. 오랜만에 대게를 먹었는데요. 대게를 좋아하는 막내딸을 위해서 대게가 나오니 살을 발라 제 앞접시에 덜어 내주십니다. 차 타고 오면서 하신 할머니 얘기가 떠올라, 아빠도 이젠 나 챙기지 말고, 아빠 먼저 드시라고 했습니다. 늘 엄마와 딸 챙기느라 마지막에 남으면 드셨던 아빠였습니다. 지금까지 엄마 챙기느라 잘 못 드셨을 텐데, 아빠 드시라고 했더니 아빠도 고개를 끄덕이십니다. 아빠의 정체성은 이제, 아빠와 남편이 아니라 '이O원'으로 살아가셔야 하지 않을까요.
2011년, 강구항에서 아빠, 엄마와 함께 생애 처음 박달대게를 먹었습니다. 아빠가 가끔 게를 사 오셨는데요. 그때 강구항에서 박달대게 맛을 본 뒤로는, 아빠가 그전까지 사다 준 게맛은 진짜 게가 아니었다는 결론을 내릴 정도로 박달 대게의 맛에 폭 빠졌습니다. 2011년도에 한 마리에 12만 원 하는 대게를 2마리 시켜서 먹었던 기록이 제 폰에 있더군요.
이번에 강릉 식당에서 대게를 먹은 후 아빠는 역시 대게는 강구항에 가서 먹어야겠다고 합니다. 택배주문 해 도 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전화번호를 잊어버렸다네요. 어딘지도 모르겠다고 하셨어요. 제 폰에 전화번호를 남겨뒀던 기억이 났습니다. 2011년도 기록을 발견했지요. 아빠에게 동광어시장 전화번호를 카톡으로 공유했습니다. 그때 그 맛이 나려나요?
아빠의 딸로 이틀 동안 지낼 예정입니다. 강릉 커피는 오늘 마실 거예요!
모든 사람의 이야기는 세상을 바꿀 힘이 있습니다.
Write, Share, Enjoy, and Repeat!
파이어족 책 쓰기 코치 와이작가 이윤정
2876일+ 꾸준한 독서, 365독 글쓰기 노하우
책 한 권으로 삶을 바꾸는 실천 꿀팁
책쓰기 수업, 독서모임 더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