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생각법 72 - 고통마저 견디게 해주는 힘
"아빠, 뭐해요?"
매일 안부 전화를 합니다. 조카랑 저녁 먹고 집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이십 년 넘게 보통은 엄마가 저한테 매일 전화를 했거든요. 아빠랑 통화할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통화하게 되면 무뚝뚝. 물어볼 얘기만 하고 아빠가 먼저 뚝. 하지만, 이 년 전부터 엄마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됐죠. 그러다 보니 전화할 일이 없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아빠한테 제가 전화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혼자 남은 집에서 몇 달간 엄마 사진과 함께 살아오셨습니다. 가끔 내려가면 아... 그냥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책임질 일이 사라지고 나니 아빠는 멍하니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시간이 너무 많아졌고요. 하루가 너무 길다고 전화한 적이 있어서 놀란 적도 있었습니다. 작년 10월 큰 결심을 하고 서울로 이사를 결심하셨죠.
"오늘 낮에는 뭐 했어요?"
갑자기, 아빠 목소리가 한 톤 높아지고 빨라집니다?! 주민센터에서 서예 마치고 할머니들과 뒤풀이(?) 있었데요. 할머니 세 분과 같이 식사하시고, 커피도 한 잔 하면서 수다 떠는 시간이 신나고 재밌으시데요. 요즘은 주민센터와 노인 복지관에서 문인화, 한글 서예, 한자 서예, 스마트폰 교육을 듣고 계시거든요. 금요일 빼고 월, 화, 수, 목 수업이 있죠. 누가 보면 대학생인 줄요! 오늘은 한문 서예를 배우는 날이었거든요. 목요일이 제일 재밌으신가 봐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아빠는 스마트폰을 갖게 되셨는데요. 그때부터 시청, 노인 복지관을 다니면서 스마트폰 활용 교육을 배우셨죠. 처음 배운 건 키네마스터로 영상 편집 작업이었습니다. 저도 사용해 보지 않은 어플이었거든요. 스마트폰을 제대로 사용해 본 적도 없는데 고급 기술부터 배우다 보니, 메모장 들고 다니시면서 학생처럼 필기하며 공부에 열심이셨어요. 가끔 영상에서 강아지 그림도 지우고, 글씨도 나오고, 연예인 몸에 아빠 얼굴을 합성하기도 하는 등 영상과 사진 공유해 주실 때마다 빵빵 터지곤 했어요.
이제 1년 6개월 이상 스마트폰 교육을 듣고 나니, 나름 할아버지, 할머니들 사이에서는 아빠가 고수처럼 느껴지나 봅니다. 며칠 전에는 다른 할아버지 사진첩 갤러리에 사진이 저장되지 않고 구글 포토에만 사진이 저장되더라며 어떻게 해야 되는지 저한테 물어보시더라고요. 저도 그 부분은 잘 몰라서 답변을 못 드렸는데, 혼자 이렇게 저렇게 눌러보면서 고민을 하시더라고요. 오늘은 다른 할머니 폰의 스마트폰 배경화면이 사진이 되어 있어서 어플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며, 배경을 지우고 검정 바탕으로 바꿔 드렸답니다. 할머니는 보통 손자가 해줬는데, 아빠가 그걸 해드리니 신기하다며, 어플들이 눈에 잘 들어온다고 고맙다고 하셨다고.
아빠는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 주면서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과 소통을 하며 새로운 관계를 맺고 계셨어요. 그분들과 함께 웃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아무리 잘해 드려도, 함께 그 또래만의 소통을 할 수 있는 건 따로 있다고 하던데 이건 것 같아요. 아빠의 목소리에서 느껴졌던 그 활기와 활력이 저를 미소 짓게 해 주었습니다. 엄마를 잃은 고통마저 견디며 활력 넘치게 해 준 건 바로 아빠의 새로운 배움에 대한 도전과 배운 걸 나누는 일이었습니다.
어제는 스마트폰 교육에서 카카오톡 선물 보내기 실습이 있었나 봐요. 삼성페이를 활용해서 보내는 법은 처음 배웠데요. 갑자기 81세 아빠에게서 스타벅스 '프렌치 바닐라 라테와 멜론 오브 멜론 프라푸치노' 음료 2잔 선물이 왔습니다. "우와~감사합니다!" 감동 표현을 보냈습니다. 지난번에는 라테 쿠폰 한 장 보내주셨었는데, 이번에는 특별한 음료 두 잔 쿠폰을 보내주셨죠. 아빠에게 저도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쿠폰을 보내드렸습니다. 아빠가 선물을 다운로드하고는 이게 뭐냐고 물어보셨어요.
스타벅스 가서 쿠폰 보여 주면 음료를 줄 거라고 가르쳐 드렸어요. 키오스크에서 주문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물으셨죠. 아! 스타벅스는 다행히 사람이 있다고 말씀드렸어요. 요즘 저가 커피 매장은 대부분 키오스크에서 주문해야 하니까 불편함이 있으셨겠다는 생각이 문득 생각나더군요. 다음에는 아빠와 함께 키오스크 투어를 하며 알려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야 또 할아버지, 할머니들 앞에서 당당하게 키오스크 주문을 하실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또 다른 분들에게 알려줬다며 신나는 목소리를 듣고 싶어요.
내일도 아빠한테 전화 걸어서 낮에 뭐 했냐고 물어보려고요! 엄마 잃은 아빠를 견디게 해드려야 하니까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제가 딱 아빠를 닮았구나라는 생각이 요즘 자주 듭니다. 제가 아빠 나이가 되려면 아직 30년 이상 더 살아가야 할 텐데요. 다른 분들에게 아빠의 지식을 알려주면서 활력 넘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저도 즐겁게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타인에게 내가 아는 걸 나눠주는 삶이야말로 진짜 행복의 비결인 듯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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