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생각법 172 - 관점을 형성하는 포괄적 비유
"아빠, 인생은 뭐야?"
"인생? 뭐긴... 인생은 그냥 왔다 가는 거야."
엄마가 돌아가신 후 이가네가 뭉쳤습니다. 오로지 이가네 식구들. 아빠, 그리고 딸 셋 여행이 시작되었죠. 2년 전 강화도 낙조, 5개월 전 제주도 바다 여행을 다녀왔지요.
이번에는 안동에 왔습니다. 아빠는 작년에 서울로 이사를 했거든요. 엄마가 하늘나라로 가신 지 2년이 되었고 올해 탈상입니다. 탈상은 돌아가신 날부터 3년 차가 시작되는 날이라고 해요. 엄마를 만나러 아빠, 언니들과 안동에 내려왔습니다. 시골집이 사라져서 이번에는 한옥독채를 빌려봤습니다. 오랜만에 한옥집을 빌려 숙소를 마련했더니, 아빠가 옛날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나 봐요.
한옥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한옥카페가 있습니다.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한옥 카페에 갔습니다. 한옥카페에는 자리가 만석이고 한 테이블만 자리가 있었습니다. 티와 홍차를 팝니다. 차 종류만 스무 가지가 넘습니다. 아빠에게 무슨 차 드실 거냐고 여쭤보니 잘 안 보인다고 이름을 불러보라고 합니다. 진저레몬, 얼그레이, 우롱티,... , 과일차, 하나씩 불러보니 옆에서 여사장님이 다가옵니다. 그러면 모른다고, 향을 맡아보고 고르는 매장이라고 하네요. 티 뚜껑을 열어 향을 맡아보라고 하시는데 애플 우롱티 같습니다. 사과향이 은은하게 올라옵니다. 아빠는 향이 좋네 하면서 그 차를 선택하셨고, 언니와 저는 따뜻한 밀크티를 선택했습니다. 밀크티는 주로 아이스용으로 판매하는 곳인데, 따뜻한 밀크티를 주문했더니 바로 즉석에서 끓여 주시겠다고 하네요. 8분 정도 걸린다는 말에 알겠다고 하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습니다. 아빠는 한옥카페라 정감이 가시는지, 옛날에 살던 한옥 구조와 비슷한 것 같다며 한번 쓱 들러보십니다. 제가 보기엔 구조가 달라 보이는데, 아빠 눈에는 비슷하다고 여긴 안방, 저긴 건넌방, 부엌, 화장실, 큰 방 하시면서 한참 상상의 나래를 펼치시네요. 가만히 듣고 있었습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시더니 입구 쪽으로 걸어 나가서 바깥구조도 한 번 살펴보시고 자리로 다시 돌아와 앉으십니다. 아빠가 활력 넘치는 듯 보여서 흐뭇함을 느껴집니다. 이런 곳 있는 곳 아셨냐고 물어보니, 몰랐다고 합니다.
뜨거운 밀크 티 두 잔과 우롱차가 나왔습니다. 일단 인증숏부터 남겨봅니다. 요리조리 방향 바꿔 사진에 담아보고 연한 황토 빛의 밀크티를 마셔봅니다. 예상 밖으로 온도가 높아서 혀를 댄 것 같아요. 바로 끓여서 나온 건지 매우 뜨거웠습니다.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나오는 밀크 티백이 아니라 직접 우려낸 차로 밀크티를 만들어 주셔서 향도 맛도 만족스러웠습니다. 아빠도 차를 마셔봅니다. 향은 좋지만, 맛은 향에 비해 다르다고 하시네요. 저도 한 번 마셔봤는데, 제 입맛에는 개운하고 맛도 좋았습니다. W생각이 문득 났습니다. 차를 좀 사서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갑자기 톡이 옵니다. 내일 아침에 올 줄 알았던 작은 언니가 40분 뒤에 안동역에 도착하니 데리러 오라는 메시지였습니다. 버스 타고 오라고 했다가, 데리러 갔습니다.
오늘 저녁은 막창집에 다녀왔습니다. 항상 안동집에 오면 아빠가 포장해 오셔서 집에서 먹곤 했었거든요. 숙소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라 숙소 앞에 주차를 하고 걸어갔습니다. 막창 집에도 입구 쪽 한 테이블만 자리가 비어 있었습니다. 돼지막창 4인분이 숯불에 구워져 나옵니다. 오랜만에 맛을 보니 고소하고 맛있습니다. 잠시 후엔 입구밖으로 대기인원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저희 집 식구들은 먹는 데 집중하고 바로 나오는 편입니다. 제일 나중에 들어갔지만, 제일 먼저 나오는 식구들입니다. ㅎㅎ
한옥독채다 보니 차를 마실 수 있는 다기가 있습니다. 물을 끓이고 우전차를 다기에 담아 한 잔씩 하면서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아침에 읽은 책 글귀에 '인생을 어디에 비유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아빠와 언니에게 인생이란 뭐냐고 물어봤는데, 다들 깊은 생각을 해본 적 없다고 합니다. 어려운 질문이죠. 아빠가 다시 한 마디 합니다. 열세 살 이후부터 계속 나는 '환자들'만 보고 살았던 것 같다 하십니다. 한의원에서 일하다가 결혼하고부터는 엄마가 아프기 시작해서 돌아가실 때까지 함께 하셨기 때문이에요. 갑자기 코끝이 찡합니다.
아빠에게 지금까지 살면서 언제 가장 행복한 것 같냐고 여쭤봤습니다. 아빠는 요즘이라고 하네요. 그동안은 엄마와 우리 챙기느라 하고 싶은 걸 꾹꾹 참고 계셨는데, 요즘은 하고 싶은 걸 마음 대로 하고, 여기저기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면서요.
저도 인생에 대해 한 마디로 정리해 본 적이 아직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문득 든 생각은 "인생은 가족이다"라고 정의하기로 했습니다. 어렸을 땐, 아픈 엄마가 미울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플 때, 아픈 엄마가 정신도 없는 데 저를 보살펴 주셨어요. 철이 들고 나서부턴, 아픈 엄마도 아빠와 우리에겐 존재만으로도 소중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인생은, 존재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당연한 건 하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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