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생각법 201 - 감정의 의미 찾기와 행동하기
너무 과했다.
그 사건 이후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눌 땐 내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대학교 수학여행을 가던 날 지하철에서 난 내 마음속에 있던 말을 무심코 꺼냈다가 친구를 잃어버렸다. 지하철을 타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친구를 만났는데, 지금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쉬지 않고 내게 말을 했다. 들어주는 게 당시엔 힘 들었는지 그만 친구에게 입 아프지 않느냐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친구는 상처를 입었고, 나도 그제야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는 걸 배웠다. 그 뒤로 그 친구와 화해를 하긴 했지만 예전처럼 웃고 지내는 관계로 이어지지 못했다. 말실수 하나로 친구를 잃어버렸다.
내가 친구에게 하던 말을 요즘 남편과 친구들에게 비슷한 말을 듣고 있다. 직업병이 생긴 거다.
앞서 말한 대학 친구와 함께 다니던 또 다른 친구를 만났다. 작년에 만나고 올해 처음 만났다. 대학생활만 같이 보내고 친구는 직장을 다니다가 마흔 즈음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미국에 취업했지만 한국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조건으로 귀국을 했다는 소식에 작년에 처음 만나고 올해 두 번째 만남이었다. 작년과 달라진 점은 내가 책을 한 권 더출간했다는 것이고, 라이팅 코치로 작가 양성을 하는 책 쓰기 수업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친구를 만나 새로 만든 명함을 내밀었다. 오프라인에서 나를 아는 외부 사람 중 유일하게 내가 작가가 된 걸 아는 친구다. 친구도 언젠가 책을 한 번 써보고 싶다는 반응에 신이 나서 글쓰기, 책 쓰기의 장점을 설명했다. 일기 쓰라고, 그냥 모든 걸 기록하라고. 친구가 교회에 다니면서 힘들어하는 상황에 공감을 하면서 항상 끝에 그래서 글을 써야 한다고. 글 한 번 써보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내가 해보고 좋은 거라 생각하고 무심코 계속 나온 말이었다. 그런데 내가 한 번만 말한 게 아니라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이상 이야기를 했나 보다. 친구가 그제야 "그만 좀 해, 어휴 직업병!" 하는 말을 건넸다. 아차 싶었다.
어제 자이언트 작가 저자사인회에 참석했다가 김*진 작가에게 스레드 한 번 해보라고 이야기했다. 글쓰기가 어렵다는 말에 쉽게 시작할 수 있고, 조회수가 폭등할지도 모르니 놀라지 말라는 말까지 하면서. 사인받으려고 대기하는 동안 한참 스레드 이야기를 했고, 뒤풀이 모임에 가서 후반부에 다시 글쓰기 이야기가 나와서 스레드 지금 당장 설치하라고 부추겼다. 아이에게 오늘 아빠랑 집 주변에 다녀온 사진을 받았다며 자신은 모르는 장소라고 하셨다. 그 얘길 듣자마자 그런 거 바로 올리면 된다고 말이 툭 튀어나왔다. 계정을 만들고 그냥 있으면 알고리즘이 헷갈리니 적어도 작가님의 일상 또는 좋아하는 것, 브랜딩으로 만들어 가고 싶은 글 3개만 적어보라고 팁도 알려드렸다. 그러면 알고리즘이 나에게 맞도록 추천글이 뜬다고. 글을 쓸 게 정 없으면, 내 글을 안 써도 되니 댓글을 남기면 된다고. "뭐야, 여자 이 OO야"라는 소릴 들었다. 함께 글쓰기 수업을 듣고 있는 글쓰기 선생님이랑 똑 닮았단다. 아, 내가 또 오버했구나.
남편과 점심으로 얼큰 수제비를 먹으러 갔다. 갈비만두와 얼큰 수제비 2그릇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라스베이거스 여행과 앤덜롭캐년 여행 예약하려니 귀차니즘이 나타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 혼자 해외여행 다녀오라고 이야기한다. 갑자기 작년과 올해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해외여행을 다녀오신 강작가님 이야기를 꺼내서 한 참 동안 이야기를 했더니 남편이 자신은 전혀 모르고 관심 없는 이야기를 계속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아, 내가 또 과했구나. 밥 먹는 동안 말을 아끼며 남편이 가끔 던지는 질문에 고개만 끄덕이고 말을 줄였다. 말없이 점심을 먹으면서, 지난 번은 수제비를 다 먹었다가 뒤늦게 배가 불러와서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작정하고 수제비를 절반 남겼다. 남편은 또 과식을 했다. 다음엔 남편에게 갈비만두 1인분과 수제비 한 그릇만 주문하자고 했다.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와서 헬스장에 갈까 했는데, 날도 좋고, 남편도 그냥 집에 들어가면 안 될 것 같다는 말에 올림픽 공원 산책을 갔다. 올림픽 공원을 호숫가를 돌다가 내일은 어디로 갈까 고민을 하다가 화담숲에 한 번 가야 한다는 말을 꺼냈다. 파이어북 공저 1기 작가님 중에 가드너가 한 명 있다. 퇴고안내를 하면서 1대 1 코칭힐 때 '무궁화'에 대한 주제로 계속 강제 연결 시켜 글쓰기를 설명했다. 남편은 그 작가님 이름도 모른 채 그저 '무궁화' 작가님으로 통한다. 말이 또 많아졌다. 다른 데 가서 말 많이 못하니 남편에게 하는 거라 얼버무렸다. 남편은 알겠다며 들어준다고 말하라고 한다. 들어주겠다 하더니 어느 순간 다시 냉혹하게 싹둑 말을 자른다.
남편과 함께 근무하고, 같이 살게 된 지 17년 차. 내게 악의가 없다는 걸 이제 남편은 이해해 준다.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의 경우는 오해하기 딱 좋다. 상대방이 잘 들어준다고 계속 말하면, 상대가 피곤해 한다. 오늘은 술 마시고 같은 말 반복하는 주정뱅이처럼, 술도 마시지 않고 말하는 말장이가 되는 날이 종종 있다. 좋아서 추천하고, 편해서 막 퍼주고 싶은 그 순간 정신줄을 놓고 반복해서 이야길한다. 과하지 말자, 1초만 참자 다짐하지만 그게 한 번씩 무너진다. 관심주제, 이야기에 빠져들면 늘 오버다. 바를 정(正)을 적으면서 얘기해야하나 싶다. 딱 한 번 그게 어렵다. 그래서, 독서와 글쓰기에 취미가 생겼는지 모르겠다. 혼자 듣고, 혼자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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