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정 라이팅코치의 글쓰기 수업
언제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지극히 평범한 글감이 아니라 아주 특별하고 대단한 글감입니다.
- 393 {파이어 북 라이팅}
독자들을 동기부여하고, 설득하고, 공감하게 만드는 글감을 찾아 초보 작가들은 고군분투합니다. 일상에서 특별한 날, 이벤트가 있었던 기억을 되살려 글을 씁니다. 오늘 있었던 일, 어제 있었던 일 중에서 특별한 것만 찾다 보면, 특별하지 않은 날, 이벤트가 없었던 날은 항상 오늘은 뭘 쓰면 좋을까 고민에 빠집니다. 결국 하루가 가기 전에 한 줄도 쓰지 못하고 쓰지 않았다는 죄책감만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나는 글을 못 쓰는 사람이라고 무의식중에 자신을 계속 세뇌합니다.
글감이 없어서 고민한 적 있으신가요? 오늘 뭘 쓰지 싶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없으세요?
그럼 "이 글을 읽기 전에는 무엇을 하셨죠?" 무언가 내 안에 스쳐간 생각이 있었지요? 그걸 글로 쓰는 일입니다. 에이, 이건 써도 누가 읽겠어라고 생각하거나, 이걸 쓰면 누가 뭐라 하지 않을까라고 지워버렸던 글감들 그걸 당신의 눈에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만지고 있는 것, 냄새나 향기가 나는 것, 먹은 것을 그대로 적는 것으로도 충분한 글이 되거든요.
블로그 처음 만들어놓고 글을 쓰려고 했을 땐 뭘 쓰지 고민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하는 걸 적기 시작했어요. 아침에 읽은 10분 독서를 하니 문득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게 있었어요. 그걸 블로그에 적었습니다. 책이랑 전혀 상관없는 생각이었지만, 책은 출간과 동시에 독자의 것으로 소유권이 넘어가게 되니 독자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책이 아니라 독자의 책이죠. 그렇게 한 줄 읽고 제 이야기를 쓰다 보니 한 줄 쓰기 힘들던 제 생각이 두 줄이 되고 열 줄이 되고 A4 1.5~2매 분량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글쓰기 수업을 할 때면 인터뷰를 종종 합니다. "메시지 하나 불러 주세요." 초보 작가는 당황합니다. 아무 생각이 없거든요. 무슨 메시지? 합니다. 그러면 "오늘 뭐 하셨어요?"에서 이야기가 출발합니다. 처음 수업에 참여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안 했어요'라는 분이 많습니다. 수업을 몇 번 이상 참여한 분들은 수업 있는 날은 미리 인터뷰를 준비하고 옵니다. 하루를 보내면서 있다가 저녁에 이런 이야기를 해야겠다 생각을 하고 수업에 참여하는 거죠. 하루에 있었던 일을 주욱 나열하면서 메모하고 낙서를 하게 되죠. 글로 적어놓고 보니 쓸 거리가 적어도 세 개 이상 나옵니다. "왜 글 안 쓰세요?"라고 되물을 때가 있죠. 쓸 거리가 많은데.
가끔은 "주변에 보이는 게 뭐예요?"라고 물을 때도 있습니다. 지금 제 주변에는 책, 타이머, 스탬프, 키보드, 마우스, 모니터, 남편, 스마트폰, 핸드크림, 볼펜, 컵 받침대, 필통, 카드, 연필깎이, 견과류까지 놓여있습니다. 딱 하나를 정해서 설명해 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오늘 제 눈에 띈 건 몇 주 전에 가져다 둔 견과류 한 봉지가 보이네요. 쿠팡에서 샀습니다. 초록색 오리지널로 곰곰 브랜드입니다. 한 번 먹을 용량으로 소분되어 담겨있어요. 믹스 너츠 오리지널이라고 쓰여있고, 땅콩, 구운 아몬드, 구운 캐슈너트, 구운 피칸, 마카다미아, 구운 피스타치오가 들어 있습니다. 견과류 이미지가 표시되어 있고 색상도 다양하게 섞여 있어서 먹음직스러워 보입니다. 달달한 탄수화물 대신, 뇌에 좋다는 견과류를 책상에 가져다 두고 출출하거나 글 쓰다가 심심하면 봉지를 뜯어 에너지를 보충합니다. 원산지는 미국,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호주 등입니다. 다양한 나라에서 와서 한 봉지에 담겨 있습니다. 유통 전문 판매업소는 송파구 올림픽로네요. 집 근처입니다. 유통기한은 25년 4월 28일까지인데, 언제 먹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몬드는 갈색이고, 캐슈너트은 미색, 호두는 진한 갈색이고, 피스타치오는 연둣빛 색입니다. 저는 아몬드와 피스타치오를 좋아합니다.
온라인 글로벌 시대뿐 아니라 견과류 한 봉지에도 글로벌 세계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 집어먹으면 세계가 내 몸속으로 들어옵니다 어디 가지 않아도 이렇게 다양한 견과류들이 가공되어 내 눈앞에 와있다는 것으로도 기적입니다. 한 봉지 견과류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의 땀과 열정, 노력을 느끼며 하나씩 꺼내 먹는다면, 생각지도 못한 감사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삶에도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다양한 것 중에서 좋아하는 건 따로 있습니다. 책상 정리가 필요합니다 (ㅎㅎ) 등 다양한 메시지를 뽑아낼 수 있습니다.
이 글 또한 메시지 한 줄에서 시작했습니다. 아직 외출조차 하지 않았지만, 지금 제 옆에는 온 세상이 와있습니다. 언제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평범해 보이지만, 세상에서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하고 대단한 글감으로 바뀌어 갑니다.
글감이 고민이라면 이렇게 한 번 해보세요.
첫째, 어떤 사건이든 육하원칙에 따라봅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누구랑 시간을 보냈는지 적다 보니 분량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예요.
둘째, 혼잣말해 보세요. 오늘 뭐 먹었어? 오늘 누구 만났어? 오늘 감정은 어땠어? 혹시 고민 있어? 자신에게 질문해 봐도 좋겠지요? 친구가 물어봤다고 생각하면서요.
셋째, 눈앞에 보이는 걸 그걸 쓰세요. 책을 읽고 있다면, 책 속 문장을, 직장인이라면, 사무실에서 보이는 모습, 주부라면 거실과 주방, 욕실, 방에 앉아서 보이는 광경, 사업주라면 지금 보이는 제품들, SNS를 하고 있다면 지금 보고 있는 글과 사진들. 당신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면 충분합니다.
유명한 책들을 읽어도, 그 안에는 그들의 경험이, 그들이 본 것이, 그들이 들은 내용이 있습니다. 당신에게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바로 아주 특별하고 대단한 글감이니, 지금 당장 써서 공유해 보시기 바랍니다. 독자들은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Write, Share, Enjoy! Rep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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