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하고 세계여행 20
우붓에서의 한달살기가 끝났다. 평화로운 꿈에서 깬 것 같다. 풀었던 짐을 다시 싸며 깨달았다. 맞아, 우리 세계여행자였지?
이제 길리 트리왕안과 누사 렘봉안으로 간다. 윤식당 촬영지로 유명한 길리 섬은 트리왕안, 메노, 아이르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중 트리왕안이 가장 크다. 크다해도 섬한바퀴를 걸어서 두시간이면 돌 수 있다. 차나 오토바이가 한 대도 없는 지상낙원. 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건 그리 쉽지 않다. 여러 페리 업체 중 적당한 가격의 업체를 예약했다. 빠당바이나 사누르 항구에서 배를 탈 수 있는데 그랩을 타고 가까운 빠당바이 항으로 갔다.
항구로 들어서는 골목을 사람들이 검문하듯 지키고 있다. 우리 기사가 창문을 열고 얼마를 준다. 검문자는 뒷자석을 살피더니 통과시켜준다. 말로만 듣던 택시 마피아다. 빠당바이 항구는 택시 마피아로 악명 높다. 지역 기사들이 담합해 공유 차량 서비스인 그랩이나 고젝 픽업을 못하게 폭력적인 방법으로 훼방을 놓는다고 한다. 바깥 지역에서 얼마간 돈을 주면 들어갈 수 있지만 여기서 그랩을 타고 나가는건 어렵다. 순박한 발리 사람들의 미소와 친절함은 온데간데 없다. 몰려드는 관광객과 돈이 이렇게 만든 거겠지.
페리 업체에 도착해 표를 바꾸고 기다린다. 12시에 출발하는 배였는데 12시 반이 되어서야 배를 탈 수 있었다. 날은 무척 더웠는데 줄 서서 기다리던 백인 청년 한 명이 쓰러졌다. 더위를 먹었나보다. 주변에서 웃옷을 벗기고 물을 가져다 주며 분주하다.
우리가 탄 스피드보트는 남태평양을 경쾌하게 가로지른다. 40여 명 탄 보트는 쾌적했다. 다만 발이 안닿는다. 그냥도 아니고 20센티미터 이상 공중에 떠있는 듯. 발판이 있긴한데 그것도 겨우 닿는다. 유럽 성인 남자 기준인가. 공간은 넉넉해서 45리터 여행가방 하나를 앞에 두고 탔다. 멀미약을 먹은 덕에 푹자고 도착했다.
길리 섬은 빠당바이처럼 항구세를 받는다. 차도 오토바이도 없는 길리 섬으로 몰려드는 전 세계 관광객에게 부과하는 일종의 환경세다. 부디 길리의 환경을 위해 쓰이길. 차나 오토바이가 없는 대신 수십대의 마차가 정신없게 다닌다. 듣던대로 내리자마자 호객꾼들이 달려든다. 항구는 동쪽이고, 우리 숙소는 서쪽 끝. 캐리어 끌고는 걸어가기 힘들어 비싼 돈을 내고 마차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