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하고 세계여행 21
길리는 트리왕안은귀여운 감자처럼 생겼다. 롬복 섬에서 30분 발리 섬에서는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걸린다. 발리와는 문화가 전혀 다르다. 그많던 사원도 차낭사리도 보이지 않는다. 물가는 두 배 정도 비싸고, 사람들도 괜히 불친절한 느낌이다. 하지만 환상적인 바다가 모든 걸 너그럽게 해준다.
길리 섬의 동쪽에는 항구가 있고, 음식점, 펍, 다이브센터, 투어 센터가 몰려있다. 사람이 많고 시끄럽다. 골목과 골목을 걸어 20분 쯤 가면 서쪽 해변이 나온다. 고급리조트와 비치클럽이 있다.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동쪽에서 일출을 보고 바다에서 종일 놀다가 숙소로 돌아와 일몰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조식을 먹고 장비를 챙겨 나섰다. 매연을 내뿜는 내연기관이 없으니 참 좋다. 발리에서 내내 오토바이에 시달렸는데 더 천국 같다. 하지만 길가에 말똥이 가득하다. 아래를 잘 보고 걸어야 한다. 동쪽 해안까지 걸어 ‘터틀 포인트’에 도착했다. 햇살이 반짝이는 바다는 아름다웠다. 우리는 한국에서부터 스노클링 장비를 챙겨왔는데 그동안 자리만 차지하던 애물단지가 드디어 빛을 발할때다. 사람들이 바다 곳곳에 들어가 스노클링을 하고 있다. 우리도 오리발과 구명조낄르 빌려 바다로 들어간다. 한국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현지인이 ‘거부기! 거부기!’ 외치며 안내해준다. 과연 엄청나게 큰 바다거북이 있다! 고요한 자태를 오래 관찰했다. 해초를 뜯어 주니 앙 하고 받아먹는다. 수심은 성인 무릎에서 가슴, 목 정도까지 온다. 바닥에는 하얗게 죽은 산호가 가득해 오리발이나 아쿠아슈즈가 없으면 아프다. 아마 우리 같은 관광객 때문일 것이다.
고개를 들면 길리 메노가 보이는데 그쪽으로 조금 더 나아가면 수심이 급격하게 깊어진다. 바다 색은 짙은 파랑으로 바뀐다. 오색찬란한 열대어가 떼지어 다닌다. 바닷 속 세상은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아등바등 사는 인간의 세상과는 전혀 다르다. 바닷 속 생태계는 우리와 다른 차원의 우주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물고기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했다. 인간은 지상에 발을 딛고 2차원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지만 중력으로부터 다소 자유로운 물고기는 위 아래로 자유로이 움직인다. 팔도 다리도 없지만 자유롭다. 작은 물고기는 늘 포식자의 위협에 시달릴테니 크고 멋진 돌고래 정도로 태어나면 좋겠다.
챙겨온 방수팩에 스마트폰을 야무지게 끼워넣고 동영상을 많이 찍었는데 알고보니 셀카모드였다. 물속에서 화면이 전혀 안보여 셀카모드인지도 몰랐다. 주구장창 내 얼굴만 찍혔다. 수퍼 덜렁이는 길리에서도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