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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리에서 누사 렘봉안으로

휴직하고 세계여행 23

by 하라 Mar 2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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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리 다음 여정은 누사 렘봉안이다. 누사 렘봉안은 발리 사누르 항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아주 작은 섬이고, 한국인들에게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섬이다. 보통 그 옆의 페니다 섬에 더 많이 가는데 우리는 친구의 추천으로 렘봉안으로 가기로 했다.

문제는 길리에서 렘봉안으로 가는 배편이 만만치 않다는 것. 얼마 없는 후기들은 하나같이 극악의 배 상황을 경고하고 있었다. 배멀미는 기본이고, 에어컨 없고, 창문 열면 파도가 들이치고, 항구가 없어 바다를 건너 내려야한다는. 결론적으로 이는 모두 사실이었다.

어떤 배를 선택해야할지, 적정 가격은 얼마인지 감을 잡기 어려웠다. 길리에서는 부르는 곳마다 가격이 달랐다. 결국 발품을 팔아 출발 이틀 전 배편을 예약했다. 여행의 절반은 다음 여행을 준비하는 일이다.

렘봉안으로 가는 날. 다시 차마도(마차)를 타고 항구로 간다. 말에게 미안하지만 캐리어가 너무 무거워 어쩔 수 없다. 가는 길에 배편을 산 투어 업체 사장 게펜크가 보인다. 친절하고 유쾌한 친구다. 어제는 이 친구의 무리가 기타를 치며 노는 걸 보고 나도 함께 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하이 브로! 씨유!"
달리는 마차에서 하이파이브.


항구에 내려 배를 기다린다. 어디든 심하게 나는 담배냄새. 인도네시아 담배는 진짜 독하다. 한국에서 센 편이라 하는 디스가 타르 6mm, 니코틴 0.6mm인데 여긴 타르 24mm 니코틴 2.4mm 막 이렇게 써있다. 진짜 강한 자만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 그만큼 담배냄새도 독하다.

땡볕에서 한참을 기다리다 줄지어 배를 타러 간다. 섬에서 나가는 출도세를 또 내야한다. 물가 비싼 길리는 마지막까지 지갑을 털어간다.
우리는 페니다 섬에서 내린 후 다시 작은 배로 옮겨타 렘봉안으로 가야한다. 대부분 페니다까지만 가는 사람들일거다. 덩치 큰 서양 관광객들 사이에 껴 배에 짐을 싣는다. 눈치껏 나는 짐을 싣고 아내는 먼저 배에 타 자리를 잡았다. 드디어 출발, 에어컨 없는 배지만 앞문이 열려있어 달릴때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온다. '역시 앞자리 선택하길 잘 했어!'라고 생각했지만...


출발 한시간 반쯤 지났나. 텅! 텅! 강하게 바닥을 치는 소리에 잠에서 깬다. 파도가 쏴아쏴아 창으로 들이닥친다. 페니다에서 길리가는 여정은 순탄하다는데 반대 노선은 파도도 반대로 치나. 결국 밀려드는 파에 창을 다 닫아야했고, 그때부터 찜통이 시작되었다. 역시 한국인 리뷰는 틀린게 없어.

배가 위 아래로 요동치는데 월미도 디스코팡팡 저리가라다. 해수면을 때리는 진동이 엉덩이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바람 들어온다고 앞자리에 앉아 좋아했는데 파도가 들어와 앞 문도 닫아버렸다. 게다가 배는 앞자리의 요동이 더 심한 법. 뱃머리가 위로 떴다가 가라앉으니 배멀미는 앞자리가 더 심하고 배 뒤쪽이 덜하다. 다행히 멀미약을 미리 먹어 견딜만했다.
한국인은 우리밖에 없고 죄다 백인이었는데 찜통더위와 극심한 승선감에 다들 흐물흐물 지쳐갈떄 우린 또 한국인의 잇템을 꺼낸다.

그것은 바로 부채와 손선풍기. 괴로워하던 주변 사람들이 힐끔 보는게 느껴졌다.
그렇게 마의 구간을 버티자 이윽고 섬이 하나 보인다. 배가 정박하자 사람들이 우르르 내린다. 렘봉안 옆의 페니다 섬이다. 우리도 일단 이곳에 내려 짐을 챙긴다. 렘봉안에 가는 사람들은 더 작은 보트로 갈아타야 한다. 우리까지 총 10명.


아주 길고 작은 배로 갈아 탔다. 우리는 마지막에 타 그늘도 없는 뜨거운 자리였는데 또 맨앞자리라 또 텅텅텅. 그래도 바람이 아주 시원했고, 배멀미도 없었다. 바람에 모자가 휙 날아가버렸는데 다행히 뒷자리로 날아가 다른 여행객이 웃으며 주워주었다.

30분쯤 달려 렘봉안과 체니다 섬 사이의 옐로우 브릿지에 내렸다. 워낙 작은 섬이라 부두와 항구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해변에 적당히 배를 대면 발목에서 무릎 정도 오는 바다로 내려 나가야 한다. 바다를 휘적휘적 걸으며 드디어 섬에 닿았다.
바가지 쓸까봐 숙소 사장님께 미리 연락을 했다. 호객하는 택시 기사들과 불편하게 같이 있다가 픽업 온 사장님 트럭을 타고 숙소로 간다.

정원이 있는 깔끔한 방갈로. 웰컴드링크를 마시며 강아지들의 재롱을 본다. 힘들게 온 곳은 그만큼 멋진 보상을 주는 법이다. 렘봉안도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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