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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리에서는 기타로 자전거를 타자

휴직하고 세계여행 22

by 하라

길리섬에서는 꼭 자전거를 타야 한다.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없는 이곳에서는 걸어서 섬을 여행하거나 마차를 탈 수도 있지만 섬 구석구석을 구경하기에 자전거가 제일 알맞다. 숙소에서 돈을 내고 빌릴 수도 있고, 거리에 지천으로 있는 투어 센터나 자전거 렌털 샵에서 빌릴 수도 있다. 우리도 자전거를 빌려 섬을 한 바퀴 돈다. 바구니에 스노클 장비를 챙겨 슬렁슬렁 페달을 밟고 섬을 가로지른다.

오전부터 길리의 볕은 뜨겁게 내리쬐지만 야자수 그늘을 밟으며 가면 시원하다. 동쪽 해변으로 가 바다에서 한참 놀다가 배가 고프면 맛집을 찾아간다. 맛있는 사테(꼬치)도 먹고 공터에서 아이들이 연을 날리는 것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오후가 무르익는다. 해가 기운이 빠지면 섬을 다시 한 바퀴 돈다. 마차를 피해 가며 페달을 밟으면 오른편에는 넌지시 파도가 친다.
길리처럼 작은 섬에서는 아침에 바다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보고 오후에는 다시 바다로 저무는 일몰을 볼 수 있다. 길리의 선셋은 참으로 대단하다. 해가 서서히 바다로 잠기면 온 세상은 그림자로 존재하는데 그 아름다운 주홍빛 바다를 배경으로 걸어가는 말과 사람들의 실루엣은 어떠한 말로도 표현하기 힘들다.


어둠이 내린 길리섬은 그 나름대로 흥겹다. 스크린에 빔을 쏘아 영화를 상영하는 곳도 있고, 버스킹 하는 거리의 악사들은 애절하게 노래를 부른다. 조금 걷다 보면 비치클럽에서는 쿵짝쿵짝 신나는 비트가 흘러나온다. 맛집을 찾아 피자를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어디선가 기타 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아는 얼굴이다. 낮에 다음 목적지인 렘봉안 가는 보트를 예약했는데 거기 투어업체 사장님과 그의 친구들이다. 그들의 낭만에 끼고 싶어 나도 가서 아는 체를 한다.
"혹시 나도 한 곡 쳐 봐도 될까?"
"그럼! 물론이지."
선뜻 기타를 건네받아 김광석의 '먼지가 되어'를 불렀다.
"작은 가슴 가슴 모두어 시를 써 봐도 모자란 당신 먼지가 되어 날아가야지 바람에 날려 당신 곁으로."
노랫말은 못 알아들었겠지만 애절한 리듬엔 공감해 주는 것 같았다. 어느새 노래의 박자를 읽고는 옆에서 카혼을 연주하기도 했다.
"한국의 유명한 가수야. 한국의 밥 딜런이라고도 불려."

모두가 일상을 떠나온 흥겨운 남반구의 밤.
자전거와 바다, 선셋과 기타 그리고 노래.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이 이 섬에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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