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하고 세계여행 19
바이크를 빌려 조심조심 타고 낀따마니에 갔다. 낀따마니는 발리 북부에 있는 아름다운 고산 지역으로 자연 경관과 문화적 매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바투르 화산(Mount Batur)과 칼데라호인 바투르 호수(Lake Batur)가 유명하다. 이 화산은 해발 1,717미터의 활화산으로 가끔 분화를 일으킨다. 아궁산, 아방산과 더불어 장엄한 풍경을 이룬다.
낀따마니 입구에는 지역 주민들이 도로를 통제하고 통행료를 받는다. 어떻게든 관광객의 주머니를 털려는 발리의 상술이다. 아름답고 친절하고 천국 같은 발리지만 조금씩 실망하게 되는 부분이 이런 바가지 요금이다. 사원이든 관광지든 대부분 입장료가 있는데 징수 주체가 누구인지, 어떻게 쓰이는지, 적정가격이 얼마인지 알 수도 없어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물건을 살 때도 그렇다. 과일가게에서 귤 1킬로그램을 사 집에 와 손저울로 달아보면 800그램 밖에 안 된다. 손님 앞에서 저울에 다는 게 아니라 안 보이는 데서 무게를 재고 담아주기 때문에 당하고 마는 것이다. 한참을 발품 팔아 투어 업체와 흥정해 래프팅을 갔는데 같은 보트를 탄 한국인 부부는 카페를 통해 우리의 반값에 왔다. 알고 나니 억울했다.
할 수 없이 입장료를 내고 낀따마니 지역에 들어간다. 그래, 지역 발전에 쓰이겠지. 날씨가 좋아 하늘은 새파랗고 구름은 폭신했다. 화산과 호수가 훤히 보이는 카페에 자리를 잡고 마음껏 여유를 즐긴다. 제일 오른쪽 아궁산과 가운데 아방산이 보이고 거대한 바투르 호수를 거쳐 왼쪽으로 바투르 화산이 보인다. 고지대에 바람까지 서늘해 시원하다. 산과 호수가 보여주는 풍경이 엄청나다. 뷰가 멋지니 커피 맛도 더 좋다.
카페를 나와 주변 산책을 하니 멋진 사원이 하나 나온다. 잠시 들어가서 구경하려는데 허리에 두르는 길고 넓은 천인 ‘사룽’을 입어야 하고, 입장료를 내야 한단다. 아, 또 입장료군요. 많이 봤던 사원을 또 구경할 마음은 없어 그냥 골목길로 들어가는데 어떤 청년이 오더니 ‘여기는 입장료 없어. 그냥 구경하면 돼.’하고 또 사원 비슷한 곳을 열어준다. 산과 호수가 한눈에 보인다. 여기서 나고 자랐다는 청년 마데는 퍽 친절했다. 수다스럽지 않고 조곤조곤한데 이것저것 설명을 잘해준다. 풍경을 가리키며 어디로 가면 뭐가 나오는지, 아궁산과 바투루 화산이 언제 분화했는지를 말한다. 발리어도 알려주고, '감사합니다' 한국말도 한다. 환상적인 풍경과 맑은 공기, 따뜻한 햇살, 친절하고 따뜻한 마데. 모든 게 다 좋았다.
“난 여기서 그림을 그리고 있어.”
“정말? 너 화가야?”
“응 맞아.”
“우와 멋지다. 너 그림 볼 수 있어?”
“그럼! 따라와!”
예술의 성지 발리에서 우연히 아티스트를 만나다니. 시골마을 예술가를 만났다는 신기함과 반가움에 취했나보다. 작업실 같은데로 가는 줄 알았는데 사원 바로 앞에 그의 그림들이 있었다. 파일철에서 B5 정도 크기의 하나하나 그림을 꺼내는데 돌담이 어느새 전시장이 된다. 돌가루에 색을 입혀 작업한 그림이다. 바투르 산의 돌(현무암)을 갈아서 그림으로 만든다고, 하나 작업하는데 1,2시간 걸린다고 설명해주었다. 그의 열정이 대단해보였다.
“혹시 이거 살 수 있어?”
“그럼. 뭐가 맘에 드는데?”
“응. 이거.”
“이건 이십오만루피아야.”
아, 생각보다 비싼데? 아내와 한참을 고민했다. 그림이란 예술가의 장인정신과 노력의 산물 아닌가. 막 깎아도 되는건가. 자존심 문제 아닌가. 은둔 고수 같은 그의 예술혼에 흠집을 내는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우리 가난한 장기여행자야 십만 밖에 없어.”
“음 그건 좀 어려워. 대신 두 장 사면 사십만에 해줄게.” (이때 눈치 챘어야 했다.)
“오, 정말 미안해. 난 너의 그림을 정말 사랑해. 예술가로서 너의 작업, 노력, 시간들을 존중해. 그렇지만 돈이 정말 없어 미안해. 하나에 십오만은 안돼?” (이건 내가 미안할 일이 아니었다.)
한참을 망설이다 그냥 가려는데 극적(인 듯하게)으로 십오만에 해준다고 해서 하나 샀다. 만 이천 원 정도에 낀따마니 예술가의 작품을 구매한 것이다. 기분 좋게 다른 뷰포인트에 들렀다. 그런데 상인들이 몰려들더니 과일이며 기념품 등을 권한다. 한적하고 여유롭게 풍경을 감상하는건 어렵겠다.
돌아서려는데 파일철을 든 아저씨가 한 명 보인다. 응? 저거! 마데랑 똑같네? 혹시나 해서 다가가니 완전히 똑같은 그림들을 주르르 보여주면서 사라고 한다.
“이거…. 얼, 얼마에요?”
“어떤 거? 이거? 십만!”
아…. 깎고 깎아 십오만 주고 샀는데…. 이십오만 루피아를 부른 마데는 뭐지…. 그냥 돌아서니 가격이 계속 내려간다.
“두 개에 십만! 오만! 알았어, 하나에 이만!!”
바투르의 풍경처럼 친절한 아티스트와 아름다운 추억 하나 쌓았다 생각했는데 실망이 생긴다. 집요하게 쫓아온 이 장사꾼 아저씨 때문에 그림이 더 가치 없어 보인다.
의도적으로 나한테 다가온 건가, 그렇지 뭐. 그것도 모르고 내가 먼저 그림 좀 보자, 살 수 있냐 묻고, 조금만 깎아 달라하며 미안하다고 사정한 것이다. 이만 루피아에 파는걸 십오만 루피아에 샀으니 호갱도 이런 호갱이 없다. 게다가 마데는 처음에 한 장 이십오만이라고 했다. 그림도 다 똑같은데 정말 마데가 그린 게 맞긴 한 건지 의심이 꼬리를 문다.
몰랐다면 좋았을 걸 알게 되어 기분이 상하는 일들이 있다. 모든 경험은 상대적인 것인데 특히 경제적인 것. 비용을 지불하는 문제는 절대적으로 상대적인 영역인 것 같다. 한국에서 베트남에 가니 물가가 싸게 느껴졌고, 다시 말레이시아로 가니 너무 비싸 엄두가 안났다. 그러다 발리 스미냑에 가서 싸다고 좋아했는데 우붓에 와서 스미냑이 얼마나 비싼 동네인지 알았다. 베트남에서 두리안 한 팩에 만 원씩 주고 사 먹었는데 우붓에서 삼천오백 원 정도 주고 좋아라했다가 다른 가게에서는 한 통째로 그 정도 가격에 살 수 있다는 걸 알고 역시 바가지를 썼구나 화가 났다.
마데 형. 우리 좋았잖아. 형 그런 사람 아니라고, 우연히 만난 다정한 예술가라고 믿고 싶은데…어떻게 이만짜리가 이십오만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