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하고 세계여행 17
발리 사원에 가보셨나요?
발리인 대부분은 힌두교를 믿어 크고 작은 사원이 정말 많다. 인도에서 기원한 힌두교는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와 같은 주요 신들을 비롯해 수많은 신을 숭배한다. 각 신마다 다양한 신화와 이야기들이 있다. 발리힌두는 인도의 다신교와 비슷하지만, 현지 신앙과 융합되어 독특한 신앙 체계를 형성했다. 발리에서는 산악신, 바다의 신 등 자연 요소를 숭배하는 경향이 강하다. 말레이시아에서 본 요란한 힌두 사원과 다르게 이곳은 짙은 먹색 돌로만 건축되었다. 단색이라 소박하면서도 섬세하고 화려하다. 길을 걷다 보면 10분에 한 번씩 사원이 나올 정도로 사원이 많다. 발리힌두에는 십만이 넘는 신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만큼 동상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관광객이 많이 들르는 유명한 사원도 있지만 우리는 집에서 가까운 사무안 티가 사원(Pura Samuan tiga)을 방문했다. 사무안 티가는 종교 통합의 상징이다. 과거에는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를 각각 주신主神으로 삼는 종파의 대립이 심했다고 한다. 이를 해결하고자 종교지도자 음푸 쿠투란(Mpu Kuturan)은 세 그룹 지도자와 회의를 열었고, 그 결과 이 사원을 합동으로 건설했다는 훈훈한 이야기. 사무안(samuan)은 만남이란 뜻이고, 티가(tiga)는 셋이라 하니 사원 이름 자체가 '세 종교의 만남'인 것이다. 보름에 방문한 사무안 티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정성스레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전통 의상을 정갈히 입고 차낭사리를 올린다. 차낭사리는 야자수 잎을 손바닥 크기로 엮은 뒤 꽃과 과자 등을 올린 제물인데 발리인들은 아침저녁으로 이를 만들어 올린다. 사원은 물론 상점의 가판대, 집 앞 거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발리의 상징인 차낭사리는 그들의 성품처럼 담박하다. 저녁 무렵 사원은 향내음이 가득했다. 근처 숲에서는 무엇을 태우는지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보름달까지 떠 신비로웠다.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오랜 시간 기도를 드리는데 그 모습이 꽤 경건해서 우리도 발소리를 죽이고 사원을 둘러봤다. 우리도 손을 이마 위에 모으고 안전하고 건강한 세계 여행을 빌었다.
절대적인 무언가에 대한 믿음은 착하고 열심히 삶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천국이든 내세든 죽음 이후에 대한 세계관은 인간에게 사후의 공포를 무디게 해주는지도 모른다. 여행을 하며 종교는 곧 그 사람의 세계 전부라는 생각을 가끔 하는데, 세계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의 종교를 지니고 있다. 소중하게.
발리의 전통 장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언덕 위에 있는 또 다른 사원으로 사람들이 몰려가기에 따라 들어가 보았다. 전통 의상을 입은 수백 명이 모여 앉아 의식을 올리고 있다. 들어가도 되나 쭈뼛거리며 안으로 들어가 본다. 경건하면서도 묘하게 슬픈 느낌이 있다. 한쪽에서는 무언가 태우는 꽤 큰 불길이 보인다. 옆 자리 눈 마주친 분께 조심스레 물었다.
“이건 무슨 의식인가요?”
“죽음 이후에 육신을 불태우는 의식이에요.”
“장례식 같은 건가요?”
“맞아요. 돌아가시면 일단 매장해 두고 돈을 모았다가 좋은 날을 잡아 이렇게 화장火葬을 해요. 그 재는 바다에 가서 뿌립니다. 인간은 물에서 왔기 때문에 다시 물로 돌려보내는 거죠. 그럼 죽은 자는 다시 태어날 수 있어요.”
“철학적이네요. 오늘은 누구의 장례식인가요?”
“우리 할머니예요.”
아, 이분 할머니의 장례식이구나. 그러고 보니 사원 한 구석에 가매장해둔 많은 묘소가 눈에 들어왔다. 매장 후 돈이 모이면 이렇게 정식 장례의식을 치르는가 보다.
“오늘은 좋은 날인가요?”
“네 오늘은 좋은 날(Good day)이에요!”
길일吉日이라는 건지, 슬프지 않은 날이라는 건지 헷갈렸지만 둘 다일 것 같았다. 그의 표정은 슬퍼 보이면서도 개운했다. 비로소 할머니의 윤회를 완성했다는 뿌듯함마저 엿보였다. 발리인들은 윤회를 믿고, 죽음이 곧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환생인 아이들을 귀하게 여긴다. 끝은 곧 시작이라는 믿음. 너는 내가 되고,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가르침. 낯선 여행자에게 귀한 것을 알려준 그에게 합장을 하고 나긋하게 말했다.
“뜨리마까시”(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