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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붓에서 산책하고 김치 담그기

휴직하고 세계여행 16

by 하라

우붓에서 김치 담가본 사람?


세계여행 한 달이 넘어가니 김치가 몹시 그리웠다. 해외 한 달 살기 유튜브를 보면 현지 재료로 김치를 담가 먹는 영상이 꽤 있었는데 우리도 못할 것 없지. 해보자! 동남아는 고춧가루와 액젓을 판다. 이것만 있어도 반은 성공이다. 우선 배추, 무, 생강, 양파, 마늘, 액젓, 고춧가루 등을 사왔다. 오토바이와 차가 하루종일 시끄럽게 북적이는 이면도로를 15분쯤 걸어가면 작은 채소, 과일가게가 나온다. 우리는 곧 단골이 되었다. 배추와 무는 우리나라처럼 실한 걸 찾기 힘들었지만 수박 한 통에 2,000원, 망고스틴 1kg에 1,200원 정도 밖에 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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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를 썰어 소금에 절여놓고 양념을 만든다. 위에 언급한 속재료에 단맛을 위해 사과까지 넣고 믹서기에 갈았다. 찹쌀풀을 쑤면 좋은데 찹쌀을 구하기 힘드니 그냥 밥과 물을 함께 갈았다. 마트에 흔히 파는 피쉬소스가 액젓이다. 감칠맛을 더하고 발효를 도울 것이다. 피쉬소스와 고춧가루, 조미료를 적당히 넣고 갈아둔 속재료와 섞으면 김치 양념이 완성된다. 이제 절인 배추와 양념을 고루 섞은 후 하루 정도 실온에 둔다. 사실 이 모든 과정은 아내의 몫이다. 나는 열심히 보조하고 간을 보고 응원을 주었다.

한국에서 먹는 김치만 못하지만 한달간 요긴하게 먹었다. 그냥도 먹고 볶아도 먹었다. 여행의 큰 즐거움은 ‘먹는 것’이다. 맛있는 현지 음식을 먹고 식당에 가는 것도 좋지만 장기여행자에겐 이렇게 만들어 먹는 집밥이 더 기꺼운 것이다.



우붓에서는 산책을


우붓에서 한 달이나 머문다면 웬만한 액티비티는 다 해보고 가볼만한 곳은 다 가볼거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반대였다. 우리는 여유로움을 택했고, 북적이는 곳은 피했다. 그래서 집에 머문 시간이 많았다. 집에서 나오면 바로 교통지옥이 펼쳐졌다. 우붓의 모든 도로가 그렇듯 우리집 앞도 왕복 2차로로 하루 종일 차와 오토바이가 가득하다. 인도만 괜찮게 깔려 있으면 걸어서 30분, 1시간이라도 움직일 텐데 이곳은 인도의 개념이 없다. 인도네시아에 인도가 없다니! 도로 끝에 바짝 붙어 걸어가면 쌩쌩 오토바이와 차가 지나간다. 특히 차가 앞에 있으면 그 옆 가장자리로 추월하는 오토바이들이 많아 걷기에 힘들다. 신호나 횡단보도는 당연히 없다. 하긴 걷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오토바이가 두 다리다. 오후 6시가 넘으면 금방 어두워졌는데 길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 우리를 못 보고 치고 갈까봐 손전등을 휘적휘적 비추며 걸었다. 조금 멀리 나서려면 그랩을 이용하는 게 좋다. 차보다 오토바이가 훨씬 빠른데 아내와 나는 각자 그랩 바이크를 불러 이동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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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태양도 힘이 빠지는 오후가 되면 산책을 나섰다. 혼잡한 도로를 걷다 마을로 빠지면 금세 양옆으로 논밭이 펼쳐진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초록으로 그린 수묵화 같은데 산도 높은 건물도 없으니 광활하다.

“헬로!”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해준다. 발리, 특히 우붓에서는 만나는 사람마다 눈인사도 건네주고 친절하다. 부담스럽지 않게 여유로운 다정함을 건네준다. 여행지에서 꼭 알아야 하는 언어는 ‘안녕하세요’와 ‘감사합니다’인데 이 두 개만 알아도 얼추 여행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 말로 ‘감사합니다’는 ‘뜨리마까시’인데 ‘뜨리마’는 ‘받다’는 뜻이고, ‘까시’는 ‘주다’는 뜻이다.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것. 그것이 감사의 의미였다. 공손하게 ‘뜨리마까시’라고 말하면 ‘사마사마’하고 대답해준다. ‘나도 그래’라는 뜻이다. 공감과 교감의 언어다. 다정한 사람들과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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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을 지나는데 사람들이 빨래도 하고 목욕도 한다. 수질은 꽤나 더러워 보였다. 발리는 지형 특성 상 물이 황토색인데 그래서 더 오염 정도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쓰레기가 떠다녔고, 하수가 정화되어 흐르는지도 의문이었다. 남자든 여자든 나체로 목욕을 하기에 부러 시선을 피했다. 아마 집에 샤워 시설이 없으리라. 산책로 중간중간 쌓여있는 쓰레기 더미에 한숨을 쉬며 걸으니 고급 리조트가 나온다. 좁은 틈으로 마사지 받는 백인이 보인다. 하루 머무는데 아마 이곳 사람들 한 달 수입은 될 것이다. 조금은 마음이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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