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_기획의 허무함

기획자의 고민

by Wynn

내가 20년 동안 일했던 모든 팀들은

명칭에 전략이나 기획이 들어가는 부서들이다.

'ㅇㅇ전략팀, ㅇㅇ기획팀, '

뭔가 있어 보이는 명칭을 가진 이들 부서에서는

정보 분석과 전략 수립, 기획 보고를 통해

경영층 의사결정을 보좌한다.

간단히 말해서 경영층이 원하는 기획서나

두툼한 전략보고서를 쓰는 것이
기획이나 전략팀의 핵심 역할이다.


밖에서 보면 뭔가 중요한 일을 하는 듯하다.

사실 항상 새로운 것을 고민하고

이를 기획하며 조직과 전략에 반영해야 한다.

수시로 경영층의 지시사항을 대응해야 하기에

항상 이슈의 중심에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막상 그 실질적은 업무를 들여다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기획과 전략은 그 범위가 한정되어 있지 않다.

때문에 어떤 미션이 떨어지더라도 대응해야 한다.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니라도 시키면 무엇이든

해야 하는 것이 기획자들의 역할이다.


전문가 인터뷰를 하고 특별한 통찰력을 통해 보고서를 정리한 후 경영층에게 보고를 한다.

운이 좋으면 윗분들 승인을 받고 진행이 다.

하지만 보고서로 끝나는 경우도 90% 정도다.

설령 경영층 재가로 프로젝트가 추진된다고 해도

보고서 이후 업무는 현업팀이 주도를 한다.

또 다른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이런 과정의 무한반복!


처음에는 회사의 미래를 바꾼다는

책임감과 소명감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허무함만 쌓여간다.

이런 것이 기획/전략 담당자들의 운명이다.


이제 나를 되돌아본다.

그렇게 20년이 흘렀다.

나의 전문분야는 과연 무엇일까?

기술기획? 커뮤니케이션기획? 신사업기획?

사업전략? 리스크관리? KPI?

에너지전략? 소프트웨어전략? 하드웨어전략?

그냥 속 빈 강정 같다는 생각, 깊이가 없다.

넓고 얕게 다양한 분야의 보고서를 썼지만

가끔씩은 허무함만 가득하다.

다 바꿀 것만 같았지만

결국 아무 것도 바꾼 것이 없었다.

그냥 경영층의 목소리만 대변했을 뿐.

그게 기획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신사업 기획에 빠져있었다.

둘러보니 두툼한 종이 몇 십 장이 내 성과였다.

물끄러미 보고서를 바라봤다.

'이게 뭐라고... '

아이러니하게도 내 급여를 생각하면

보고서 한 장 가격 수 십만 원 이상의 가치.


어찌 되었건 이 보고서를 통한

가시적인 성과는 아직 없다.

그렇지만 또 다시 새로운 뭔가를 써야 하는 것이

내 숙명.


오늘도 허무함을 뒤로하고

또 달리고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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