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아르바이트는 신문배달이었다.
대학 새내기 시절
같은 과 동기의 제안으로 시작한 신문배달.
매일 새벽 4시.
신문보급소에 도착하여 100부의 신문을 챙겼다.
신문을 자전거에 싣고 담당하는 지역으로 향했다.
첫 주에는 한 집 한 집 배달장소를 익혔고
다음 주부터는 홀로 신문 배달을 시작했다.
쉬워 보일 것 같았던 일이었지만 실수가 이어졌다.
배달사고의 연속이었다..
문 앞에 놓은 신문이 사라지기도 하고
신문이 비에 젖어서 읽지 못하기도 했다.
구독을 끊은 것을 모르고 계속 배달을 하다가
강한 항의를 받기도 했다.
간혹 전날 음주로 인해 지각을 하여
신문배달이 늦어질 때도 항의 전화가 이어졌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욕도 먹었지만
그래도 꿋꿋이 버텨가며 신문배달을 이어갔다.
이윽고 기다리고 기다린 대망의 급여일.
설레는 마음으로 수당 봉투를 열어보았다.
금액은 17만 원.
솔직히 실망스러운 금액이었다.
장마철 큰 비를 맞아가며
소중한 새벽잠을 줄여가며
힘들고 지친, 아픈 몸을 이겨내며
땀 흘린 노동의 대가치고는
너무나 적은 금액이었다.
첫 월급치고는 정말 기대 이하였다.
하지만 그게 배달 노동의 현실이었다.
돈 버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깨달은 하루였다.
결국 배달일은 석 달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수입도 적은 것은 물론이고
게으른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자리였다.
신문배달에 이어서 군입대 전까지
열심히 생활비벌이 알바에 집중했다.
막노동과 전단지 배포, 단순 데이터 입력,
카드체크기 영업사원, 편의점 판매원
의류매장 물품운반, 주방보조 등등
신문배달보다는 많은 돈을 벌었지만
역시나 큰돈은 아니었다.
돈을 번다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제대 이후 나는 새롭게 편한 알바를 찾았다.
학원강사와 중고등학생 과외.
동네 입소문을 타고 나름 평판이 좋아졌다.
1년 반동안 휴학까지 하며 그 일을 이어갔다.
통장에 잔고가 늘어났다.
어느 정도 생활비를 마련한 후에
다시 학교에 복학을 했다.
몇 년 후 대학교 졸업.
본격적인 월급쟁이 인생이 시작되었다.
먹고 살고 버티기 위한
'회사'라는 거대한 전쟁터에
들어서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