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겨울 계곡에서의 하룻밤_미천골 자연휴양림
백두대간 깊은 산골에 숨겨진 청청 휴양림
일상의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었다.
인적이 없는 깊은 계곡 한복판에 차를 세우는 순간, 웅장한 고요함이 나를 감싸안았다.
간혹 차갑지만 상쾌하게 느껴지는 겨울 바람이 나의 볼을 스쳐 지나갔고 높게 뜬 한 낮 태양의 따뜻한 햇살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한겨울 눈쌓인 미천골 계곡에서 느끼는 혼자만의 자유.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는 공간이었다.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홀로 떠났던 겨울 여행의 목적지는 강원도 백두대간 속 미천골 자연휴양림이었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양양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인제 IC에서 나와 하얀 겨울 풍경을 즐기다보니 굳게 뻗은 조침령터널이 나왔다. 터널이 끝나면서 갑작스럽게 구불구불한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왼쪽 오른쪽으로 몇 번 핸들을 돌리면서 조금씩 해발고도를 낮춰갔다. 내리막길이 끝나면서 구룡령 방향으로 계곡을 따라서 달라다보니 미천골 자연휴양림 입구를 만날 수 있었다. 휴양림 입구로 이어지는 잘 포장된 다리를 지나니 미천골 계곡이 길 오른편으로 흐르고 있었다. 미천골은 백두대간 약수산과 응복산 사이에서 시작해 남대천으로 흘러가는 깊은 산골 속의 계곡이다. 약 7km 정도 이어지는 미천골 계곡은 일반적인 계곡들과 다르게 웅장한 협곡의 자태를 지니고 있었다. 수량도 상당하여 거센 야생마같은 남성미 넘치는 계곡이었다. 다만, 흐르는 계곡물은 그냥 마셔도 될 만큼 맑게 빛나고 있었다.
입구에서 차를 타고 3분 정도를 달리니 매표소 입구가 나왔다. 바로 이곳이 본격적인 휴양림의 시작점이었다. 여기가 휴양링 1지구이고 길을 따라서 4~5 km 정도를 더 들어가면 2지구,3지구가 차례대로 나온다. 내가 다녀본 자연휴양림 중에서 가장 길게 이어져 있는 자휴림이었다. 1지구에는 무지개 색깔로 만들어진 휴양관이 위치해 있었고 6인실 숲속의 집 2채가 있었다. 입구 쪽에 위치하여 이동이 편하기에 가족 단위 탐방객들에게 적합해보이는 숙소처럼 보였다.
길을 따라서 조금 더 올라갔다. 미천골자연휴양림 매표소를 지나 1km쯤 오르니 양양 선림원지의 이정표가 보였다. 절터로 가는 돌계단을 오르니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과 승탑, 홍각선사탑비 등이 있었다. 바로 이곳에서 계곡 이름인 '미천(米川)골'이 유래되었다. 이곳의 사찰이 번성할 당시에 공양을 짓기 위해 쌀을 씻은 물이 계곡을 따라서 하류까지 하얗게 흘렀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 계곡의 이름 '미천'이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1200여년 전 이곳에 많은 승려들이 살았지만 아쉽게도 10세기 전후에 대홍수와 산사태로 갑자기 절이 사라졌다고 한다.
자연의 힘에 종교의 화려함도 오래가지 못했다.
차를 타고 조금 더 오르니 숲 속의 집 4채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제2 지구가 나왔다. 이곳 휴양림의 특징은 휴양림 숙소뿐만 아니라, 펜션과 카페 등도 함께 위치했다는 것. 숲 속의 집 옆에는 근사한 산중 카페와 잘 꾸며진 펜션들도 있었다. 여름 성수기 예약이 어려우면 펜션을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보였다.
오늘 숙소는 길가에 위치한 숲속의 집 산벚나무.
둥근 모양이 초원 유목민들의 게르와 유사했다.
혼자였지만 예약이 쉽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한 9인실 숙소. 역시 어마어마한 크기. 방이 2개이고 거실도 상당했다. 크기는 두 가족이 함께 쓰기에 딱 맞아보였다. 짐을 풀고 다시 계곡의 상류쪽을 둘러보기로 했다.
숲속의집 제2지구에서 3지구로 올라가는 길은 며칠 전까지 통제된 듯 했다. 많은 눈으로 인해서 곳곳에 빙판길이 있어서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오늘은 제설 작업이 이루어졌고, 도로는 이동이 가능했다. 하지만 여전히 음지에는 녹지않은 길이 있었기에 천천히 시속 10km 내외로 달리며 계곡 안쪽으로 달려갔다.
야영장 등 미천골자연휴양림 시설물을 지나 계곡을 5km쯤 거슬러 오르니 숲속의집 제3지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미천골 겨울 계곡 풍경미천골 자연휴양림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제3지구. 이곳이 미천골 자연휴양림의 절정이었다. 숲속의 집을 비롯하여 산림휴양관과 야영장이 자리잡고 있었고 체험장과 공동 취사장, 샤워장까지 모든 것이 잘 갖춰져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겨울 제3지구는 운영을 하지 않았다. 며칠간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있었고 기온마저 낮아서 눈이 얼음처럼 꽁꽁 얼어있었다. 아이젠 없이는 이동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한겨울 제설작업은 쉽지 않아보였고, 따뜻한 봄이 되어야 가능해보였다.
그런 이유때문인지 그곳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았고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 가능했다. 멈춰진 시간 속에 홀로 남은 기분이랄까. 먼 산을 바라보며 잠시 사색에 빠졌다.
답답한 마음을 되잡으며 행복을 충전했다.
3지구 주차장에서 불바라기 약수터까지 이어지는 등산로 안내표시가 보였다. 여기부터 편도거리가 6km로 왕복 3시간 정도가 걸리는 거리였다.
차도가 없으니 걸어야만 볼 수 있는 곳이다. 날씨가 좋다면 한 번 도전해보고 싶었지만 한겨울이라서 부담이 되었다. 아쉬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발길을 돌렸다.
미천골 자연휴양림에서 하룻밤. 겨울은 조금 아쉽지만 여름에는 시원한 계곡물소리 들으며 시원한 밤을 보낼 수 있는 최고의 휴양림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