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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ynn May 28. 2024

5월 23일, 그리고 사람 사는 세상

봉하마을 내려가는 날

충격이었다.

여행을 준비하며 차에 오르려는 순간,

뉴스 속보가 나왔다.

존경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설마 그분이 세상을 등지고 떠나실 줄은 몰랐다.


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

선생님께서 약자를 위한 인권 변호사라고

를 얘기했고 기대가 크다고 했다.

그때부터 시나브로 귀에 익기 시작 

노무현이라는 이름 석 자.

고등학교와 대학교. 군대 제대할 때까지는

정치라는 것 관심이 없었기에

특별히 그에게 관심 가질 일은 없었다.


군대 제대 이후

바보 같은 그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당연히 지는 선거였지만

지역감정을 깨기 위해 출마하고 떨어지고.

권력의 힘이 무서워서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을

그는 소리쳐 외쳤다.

약자를 위해 상식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나는 호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팬이 되었다.

열정적으로 그를 응원했고

그는 기적을 만들며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이젠 나라가 바뀔 듯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기득권의 공격은 계속 이어졌다.

보수언론과 권력기관 들은 고졸 출신의 듣보잡인

그를 끝없이 공격했다.

급기야 그는 국회에서 탄핵 의결을 당했다.


4학년 2학기 취업을 앞두고 있었지만

강의실을 박차고 는 광장으로 나갔다.

교수님들도 나를 응원해 주었다.


몇 주간 여의도와 광화문으로 향했다.

나는 탄핵반대촛불집회

자원봉사자가 되어서 행사를 이끌었다.

촛불을 밝히고 또 밝혔다.


결국 헌재의 판결로 그는 다시 대통령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반쪽짜리였다.


나는 회사에 입사를 하고

다시 정치와 멀어졌다.


시간이 흘러서 2009년 5월 23일.

그 뉴스를 보고 곧장 김해 진영읍으로 갔다.


그리고 펑펑 울면서 그의 영정 앞에

국화꽃을 바쳤다.

정말 많이 울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것이 내가 전할 수 있는 마지막 한 마디였다.


그리고 매년  또는 김해를 지날 때마다

시간을 내어 봉하마을을 찾았다.

내가 할 수 있 마지막 최선의 보답이었다.


2019년 5월

그가 돌아가신 지 10주

처음으로 나의 아이를 데리고

봉하를 찾았다.

너무나 반가웠고 행복했다.



올해로 15주

다시 한번 그곳을 찾고 싶다.

그립다

우리 존경하는 대통령

그의 웃음소리가 그립고

그의 자전거가 그립다.


그리고

그가 꿈꾸던 사람 사는 세상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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