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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ynn Jun 08. 2024

바나나 먹고 싶어요

바나나를 처음 본 그날

"쿵"


나는 쓰러졌다.

길 건너편에서 나를 바라보던 아버지와 친구분들이

놀란 표정으로 급하게 내게로 달려왔다.

당황한 택시 기사도 길가에 급히 차를 세우고

나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서 달려왔다.


내 인생 첫 번째 교통사고이자,

첫 운명의 갈림길이었다.


우리 마을은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 입구에 있었다.

공사 중인 캠퍼스 건물이 하나둘 완성되면서

마을 앞을 지나는 길이 조금씩 포장되
대학을 오가는 버스와 택시들이 많아졌다.


1981년 봄날.

5살의 어린 나는 길 건너편에 있는 아빠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길을 건넜다.  

그 순간 대학 쪽에서 달려오는 택시에 치인 것이었다.


아버지의 말을 듣자니
나는 그 순간 바로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그날이 나의 내 인생의 마지막일 수도 있었지만

여러모로 나는 운이 좋았다.

 

내가 차에 부딪친 장소가

포장도로에서 비포장 도로로 바뀌면서

차의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았고,

작은 체구였기에 충돌 후에 넘어지면서

차량 아래로 들어가서 외상이 덜했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는 대부분 차들은 비포장을 달리기 위해

차체가 높았고 차량 하부에 상당한 공간이 존재했다.


또한 운이 좋게도 차체 밑으로 들어갔지만

바퀴에 밟히지 않았기에 몸에 2차 충격은 없었다.

그냥 땅바닥에 얼굴과 피부가 긁혀서

피가 꽤 났던 것뿐이었다.


택시기사는 나와 아버지를 태우고

곧장 천안 시내의 응급 병원으로 향했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병원 입원실에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지쳐보고 있었고

환한 햇살이 창문 틈으로 들어왔던 기억이 또렷이 남아있다.

천만다행으로 난 큰 부상이 없었다. 

타박상과 함께 얼굴과 피부가 많이 긁히고

상처가 남았을 뿐 평생 남을 큰 부상은 없었다.


엄마는 내게 말했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뭐든 얘기하라"라고.

신기한 마음에 나는 침대 옆의 창가로 다가갔다.

2층 입원실 창 밖을 바라보니
몇 개의 노점상들이 줄지어

과일과 음식들을 팔고 있었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노란색 과일이었다.

처음 보는 과일인데 맛있게 보였다.

그것이 먹고 싶다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망설이는 표정이 역력했다.

어머니는 "그건 1개에 1천 원"이라며
"비싸다며 다른 것을 고르라"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과일은 바나나였다.

1980년 초반이었기에

바나나는 대부분 제주도산이었다.

아무나 먹을 수 없는 과일이었다.

그 당시 부모님 월급이 몇 만 원 정도였으니

이제는 그 맘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몸이 아픈데 왜 못 사주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그때 나는 바나나를 사달라고 투정을 부렸지만,

결국에는 바나나를 먹지 못하고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마흔이 훌쩍 넘은 나에게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그날의 기억들. 

비록 바나나는 먹지 못했지만

나는 크게 다치지 않고

지금까지 삶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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