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어렵게 예약한 주말 자연휴양림을 취소할 수는 없었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아내와 아들을 잘 설득하여 차에 올랐다. 오늘의 목적지는 세종시 인근의 금강자연휴양림. 금강을 멋진 풍경을 즐길 수 있다는 얘기에 이곳을 예약했고 운이 좋게 당첨이 된 것이었다. 서울에서 천안과 공주를 지나서 금강 자연휴양림으로 향했다. 금강 자연휴양림은 세종시에서 서쪽으로 불과 4~5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기에 대전과 세종 등 인근 도시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인기있는 휴양림이다. 우리 가족도 이마트 세종점에서 푸짐하게 장을 본 후에 휴양림으로 향했다.
우선 방문자 숙소에 들려서 키를 수령했다.
내가 예약한 방은 강마루 3호실. 금강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장점으로 예약한 방이었다.
하지만 방문자센터 담당자는 내게 되물었다.
"강마루방은 취사가 안되는 것 아시죠?"
"네? 자연휴양림에도 취사가 안되는 방이 있나요?"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자세히 안내 문자를 살펴보니 취사가 안된다고 써 있었다. 나는 단순히 고기 굽는 것이 내부에서 안되는 것으로 착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강마루방은 그냥 캐빈처럼 숙박을 위한 조그마한 객실이었다. 전자레인지가 전부였고, 식기조차 없었다. 저녁에 숙소에서 맛있는 음식을 하기 위해 마트에서 장을 봐왔는데, 그것이 소용없을 수도 있는 상황. 머릿 속에 먹구름이 몰려왔다. 이런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어떻게 하죠? 방법이 없나요?"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담당자분께 애원(?)했다.
"아. 잠시만요. 확인해보니까 예약하고 결제안된 방이 있는데, 혹시 그 분이 취소할 수도 있으니 기다려보세요. 연락해보고 확실히 취소되면 그 방을 드릴께요"
절망 속에서 작은 희망의 불씨같은 답변이었다. 평소라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은 장마철이고 오늘 폭우가 내린다고 했다. 취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30분 정도를 더 기다려보기로 하고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잠시 대기를 했다.
금강 자연휴양림 입구
휴양림의 주차장과 야영장
아내에게 그 얘기를 전하니, 왜 사전에 그런 것을 확인하지 못했냐며 나를 나무랬다.
모든 것이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나의 죄. 정말 할 말이 없었다. 혹시나 강마루방이 어떤 지 궁금해서 주차장 앞의 방으로 살포시 들어가봤다. 주차장과 강가 사이에 위치한 3동의 건물이 바로 강마루 1,2,3 방이었다. 앞으로 들어와보니 저 멀리 금강이 한 눈에 보였다. 다만 내부는 내가 생각했던 숲 속의 집과는 거리가 조금 있어보였다. 방도 좁고 식사하기도 어려워보였다.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나의 실수였다. 사진 몇 장을 찍고 다시 차에 들어와서 대기하기를 몇 분. 관리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강마루 객실
강마루 객실에서 바라본 금강
운이 좋은 하루. 처음으로 방을 바꾸다.
정말 운이 좋았다. 숲 속의 집을 예약한 사람이 방을 취소했다는 전화였다. 나는 당장 관리사무소로 달려가서 키를 교환했다. 우리가 다시 묵을 방은 단풍나무방. 이번에는 제대로된 숲 속의 집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담당 직원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반복하며 단풍나무 방의 키를 받아왔다. 차를 돌려서 금강자연휴양림 안쪽에 위치한 단풍나무방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널게 펼쳐진 캠핑장이 있었고, 축구하기 좋은 잔디밭과 캐빈, 그리고 연립동으로 보이는 산림소통관이 있었다. 이렇게 가파른 길을 3분 정도 달리니 우리 가족이 묵을 단풍나무 숲 속의 집이 눈 앞에 나타났다. 이제 제대로 된 우리만의 숲 속의 집이었다. 우리 집 위쪽으로 소나무와 편백나무방이 차례로 들어서 있었다.
강마루 객실 뒤편의 오토 캠핑장
금강자연휴양림 안내도
잔디광장과 캐빈, 산림소통관
안도하는 마음으로 단풍나무방 옆에 차를 주차하고 짐을 풀었다. 근처에 사는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가족을 맞이해주었다. 단풍나무 숲 속의 집은 거실과 방으로 구성이 되어 있었고, 앞에는 오봇하게 가족들끼리 식사를 할 수 있는 테이블도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습한 여름이라서 벌레들이 많았기에 우리는 숙소 안에서 저녁을 먹기로 하고 마트에서 구매한 음식과 짐들을 정리했다. 방은 무척이나 깔끔했다. 에어컨까지 거실과 방에 준비되어 있어서 시원하고 습하지 않게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다만 조금 아쉬운 것은 금강을 볼 수는 없다는 것. 크게 펼쳐진 창문 앞은 여느 숲 속의 집처럼 푸른 숲과 하늘이 가득했다.
그날 밤에는 일기예보처럼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풀벌레 소리와 매미 소리가 빗소리가 함께 어우러졌다. 한 여름밤에 자연이 만들어내는 멋진 교향곡이 밤새 이어졌다. 도시에서 들을 수 없는 그런 자연의 소리에 취해서 금강자연휴양림에서 하룻밤을 지낼 수 있었다. 불을 끄고 의자 앉아서 멍하니 맥주 한 잔 들이키며 이런 저런 생각하는 주말. 내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단풍나무방 전경
단풍나무방 숙소 내부
번개 소리, 그리고 정전
다음 날 아침까지 비는 이어졌다. 특히 7~8시쯤에는 거센 비가 쉬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 이불 위에서 아침 빗소리를 즐기고 있던 그 때. "꽝"하고 큰 벼락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우리 가족은 깜짝 놀라서 모두 잠에서 깨어났다. 숲 속의 집 근처 산 위에 떨어지는 번개처럼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번개 이후에 모든 전자기기의 전원이 나가버린 것이었다. 거실로 나가서 전등 스위치를 눌렀지만 불이 켜지지 않았다. 냉장고도 에어컨도 전자렌지도 작동하지 않았다. 아직 이른 시간이고 구름이 가득했기에 방 안은 어둡기 그지 없었다. 우리는 비상용 손전등과 핸드폰 손전등을 꺼냈다. 그 불을 이용하여 아침 준비를 했다. 뒤편 숲 속의 집도 불이 들어오지 않는 것으로 봐서 모두가 정전이 된 상황이었다. 빨리 아침밥을 먹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 가스렌지는 작동했기에 라면을 끊이고 햇반도 라면과 함께 넣어 끊였다. 우리 가족은 핸드폰 조명으로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짐정리도 했다. 대략적으로 준비가 마무리되서 나갈려니 찰나에 갑작스럽게 거실의 전등에 불이 들어왔다. 10시 정도가 되었을 때 수리가 마무리된 듯 했다. 환한 불빛이 너무나 반가웠다. 윗 동에서는 그제서야 아침 식사를 먹기 시작한 듯 했다. 또 번개가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우리 가족은 빨리 짐을 챙겨서 차에 싣고 휴양림 입구로 내려왔다.
장마비가 내리는 금강자연휴양림
휴양림의 입구에 내려왔을 때, 잠시 비가 그치는 듯 했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마치고 키를 관리 사무소에 반납했다. 그리고 그 앞으로 펼쳐지는 금강을 지켜보니 밤사이에 물이 잔뜩 불어있었다. 그 순간 띠링하고 울리는 핸드폰 긴급 문자를 보니 세종시 인근에 홍수주의보가 내려졌다는 소식. 더 비가 오기 전에 빨리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휴양림에서 방을 바꾸고 큰 비에 정전까지 경험한 우리 가족. 금강 자연휴양림은 오래 오래 특별한 추억으로 남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