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코테나(회화관) 관람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날씨를 확인해 보니 섭씨 34도. 이런 기온이 거의 해 질 녘까지 이어진다고 했다. 투어 가이드는 지하에 교황이 타던 마차와 자동차를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고 했다. 잠시 더위를 피하기 위해 살포시 그 공간으로 향했다. 오래전부터 각 교황들이 타던 다양한 운송 수단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화려함은 어느 시대의 왕보다 대단했다. 그만큼 교황의 힘이 정치를 압도했던 듯했다. 사진 몇 장을 찍고 다시 잔디 광장으로 올라왔다.
짧은 휴식이 끝나고 다시 투어가 시작되었다. 우선 잠시 모여서 시스티나 소성당의 천장화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바티칸 투어의 백미인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에 대한 에피소드와 그림 설명이었다. 성당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과 가이드 설명을 할 수 없기에 미리 준비하는 것이었다. 20분 정도의 설명이 끝나고 곧장 바티칸 투어 2부가 시작되었다.
투어 2부는 솔방울 정원에서 시작하여 벨베데레의 팔각정원을 지나서 내부의 여러 방들을 관람한다. 기억나는 방의 이름은 원형의 방, 지도의 방, 성모 마리아의 방, 라파엘로의 방, 서명의 방, 보르고 화재의 방 등이었다.
사실 팔각 정원을 지나서부터는 그냥 사람들에 떠밀려서 가는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기에 잠시 자리에 서서 사진 한 장 찍기도 쉽지 않았다. 그냥 인파에 밀려서 눈으로 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솔방울 공원
내부 공간으로 이어지는 입구
8각 정원과 조각들
라오콘 군상
팔각 정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작품이 바로 라오콘 군상이었다.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트로이 신관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이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는 장면을 묘사한 고대 그리스 조각상이다. 1500년 경에 발굴이 되어 복원되어 전시된 것이라고 가이드는 말했다. 특히 라오콘의 굽어있는 한쪽 팔은 본래 처음 발굴 되었을 때는 떨어져 나간 상태였고, 후에 따로 팔이 발견되어 복원한 것이라고 했다. 잠시 사람들이 한적한 틈을 타서 멋지게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이제부터 여러 방이 이어지는 바티칸 내부로 들어갔다. 정말 인산인해. 전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 틈을 뚫고 겨우 입장하니 우리를 맞이해 주는 부서진 조각 하나. 유명한 트로소 상이었다.
트로소상
입구부터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끈 트로소상. 트로소는 이탈리아어의 몸통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말로, 머리, 팔, 다리가 없는 고대 조각이었다. 생각하는 사람 등 후대의 조각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것이 왜 주목을 끄는지 나는 잘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멍하니 보자 있나니 무언가의 강렬한 아름다움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특별함이 느껴지긴 했다. 사실 나는 트로소 조각보다는 천장의 그림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사진 몇 장을 찍고 다음 방으로 들어섰다. 눈앞에 근사한 원형의 방이 나타났다. 고대 로마의 화려함이 그대로 느끼지는 매력적인 방이었다. 로마의 모자이크 바닥 장식과 네로 황제가 썼다는 적색 대리석의 욕조가 있었다. 로마의 황제들의 화려함과 세련된 예술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방이었다.
원형의 방
이후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방이 이어졌다. 바닥에 모자이크가 있었는데 작은 알갱이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색감 화려하고 특별한 가치가 있어서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한 듯했다. 그리고 본홍색의 멋진 석관과 조각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스도 십자가의 방
복도 전시실 처음을 촛대의 회랑이 나타났다. 고대 무덤을 밝히기 위해 놓았던 촛대와 꽃병, 기둥 장식, 작은 조각상들이 있었다. 화려한 금빛 바탕의 천정화가 가장 마음에 들었고, 눈이 반짝이는 조각도 기억에 남았다.
촛대의 회랑에 이어서 융단의 방이 나왔고 고개를 들고 천장과 여기저기 작품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다시 화사하게 펼쳐지는 기억에 남을 멋진 방 하나가 다시 나타났다. 바로 지도의 방.
촛대의 회랑
지도의 방에는 교황 그레그리오 13세의 명으로 그린 16세기 이탈리아의 지역별 지도 그림이 있었다. 지역별 대형 지도 앞에는 인물 조각상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도에는 눈이 가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서 길게 펼쳐지는 천장화가 내 시선을 사로 잡았다. 천장에는 체사레 네비아, 지롤라모 무치아 등이 그린 그림으로 이어졌다. 가이드는 여기가 사진 찍기 딱 좋은 장소라며 사진 촬영을 강조했다. 우리 가족도 멋진 셀카 사진을 남겼다.
지도의 방
다시 몇 개의 방을 지났다. 날씨가 너무나 더웠기에 잠시 주차장(우리가 잘 아는 미션인파서블 등 주요 영화 촬영장소)이 바라보이는 곳으로 가서 바람을 쐬고 사람들에 밀려서 앞으로 앞으로 걷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또 하나의 핫한 그림인 아테네 학당 앞에 서 있게 되었다. 라파엘로의 그림이 있는 라파엘로의 방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가득. 정말 정신이 없었다.
라파엘로의 아테네의 학당
다행히 아테네의 학당 바로 앞에서 우리 일행을 자리를 잡고 그림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중앙에 보이는 인물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 외에도 소크라테스와 피타고라스, 유클리드 등이 이 그림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라파엘로도 그림 오른쪽 아래에 반쯤 가려진 얼굴로 자신을 그림 속에 넣었다. 이런 그림을 보고 교황이 여기에서 중요한 서류 등에 서명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서명의 방을 지나서 현대미술 감상을 한 후에 우리 일행은 기대하고 기대했던 시스티나 소성당으로 향했다. 두근두근.
조금 아쉬운 것은 이곳에서는 사진 촬영은 물론 서로간의 큰 대화도 금지되어 있다는 것.
시스티나 소성당의 그림들
정숙한 마음으로 입장을 했다. 들어가는 순간 엄숙함이 나를 압도했다. 역사의 중심에 선 기분이었다. 성당은 작은 학교의 강당처럼 소박했지만 내가 느끼는 감동의 깊이는 드넓은 우주와 같은 느낌이었다. 멍하니 사방을 살폈다. 태어나서 처음 접하는 미켈란젤로의 그림들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로 알려진 그림들. 인간이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진정한 신의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 내가 지금 이 공간에 머무는 것이 좋았고 한없이 행복했다. 이것이 로마에 온 참 의미였다.
몇 분의 시간이 지났을까. 마음이 충만해지는 기분이었다. 시스티나 소성당에서의 마음 충전.
10분?15분? 그 정도의 시간이었다.
잠시 후 우리 일행은 아쉬운 마음으로 시스티나 소성당을 빠져나왔다.
우리 일행은 마지막으로 전 세계 가톨릭의 중심인 산 피에트로 대성당으로 향했다. 이 성당은 성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것으로,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33년 지금의 이름으로 성당을 지은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1626년 120년간의 대공사 끝에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지어진 세계 최대의 성당이다. 성당 입구로 들어가는 주목을 끈 것은 우리나라 김대건 신부의 동상. 25살의 젊은 나이에 순교한 김대건 신부를 기념하기 위해 최근 교황청에서 만들었다고 했다.
성당의 지하 통로를 지나서 안쪽으로 들어가니 웅장한 성당의 규모가 우리를 압도했다. 길이 187미터로 모든 것은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11개의 예배당과 45개의 제단이 있었다.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엄청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산 피에트로 대성당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바티칸 투어는 마무리되었다. 성당 밖으로 나오니 텔레비전에서 자주 보았던 산 피에트로 광장이 보였다. 대 성당이 두 팔을 벌려서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감싸 안는 모습으로 설계된 멋진 광장. 그 광장에서 마지막으로 사진 몇 장을 남기고 교황청을 지키는 스위스 근위대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이렇게 긴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바티칸에서의 첫날.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낀 하루였다. 더운 날씨에도 6시간 동안 불평 없이 따라와 준 아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면서 우리 가족은 숙소로 돌아왔다. 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