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은 듯 햇살이 창틈을 비집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로마의 아침 풍경이 궁금하여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유럽식 호텔 건물과 중앙 정원. 이제야 우리 가족이 로마에 도착했는 것이 실감되었다. 우리 가족은 바로 로비층에 있는 조식당으로 향했다. 우리 가족이 묵은 이 호텔은 중앙 정원 근처에서 아침 식사를 먹을 수 있어서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었다. 사실 나도 인터넷의 그 사진 한 장에 반해서 바로 이 호텔을 예약했다.
마당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서 로마에서의 첫 아침 식사를 즐겼다. 따끈한 빵들과 다양한 치즈, 신선한 과일, 다양한 음료까지 아침 조식은 기대 이상이었다. 든든히 배를 채운 후에 우리 가족은 미리 예약한 바티칸 투어에 참여하기 위해 집합 장소로 향했다.
바티칸 투어는 로마에 오면 꼭 해야 되는 투어다. 이 투어는 루브르 박물관, 영국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불리는 바티칸 시티의 박물관이자 미술관을 한국인 가이드와 함께 다니는 단체 관광 상품이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같은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 화가들의 작품과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등 역대 로마 교황이 수집해 온 수많은 예술 작품을 볼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이기에 여행 전에 미리 예약을 했다.
다만 5~6시간 동안 더운 날씨 속에서 많은 인파와 함께 밀려다녀야 하기에 아이들과 함께 하기엔 결코 만만치 않은 투어라는 사실. 때문에 로마에 오기 전 9살 아들과 굳은(?) 약속을 했다. 중간에 포기하거나 짜증 내지 않겠다고 단단히 약속을 하고 투어 예약을 진행했다.
9시 10분 바티칸 인근 미팅 장소에 가기 위해서 호텔에서 8시 40분쯤 택시를 잡아타고 목적지로 향했다. 생수를 챙기고 너무 짧은 치마나 민소매 옷은 피하고, 선글라스와 썬그림을 확실히 바른 후에 그곳으로 향했다. 약속 장소에는 이미 15명 정도의 일행들이 도착해 있었다. 가이드는 카카오톡으로 온라인티켓을 전달해 주고 9시 15분바티칸 시국의 입구로 우리들을 안내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바티칸 시티 입구에는 긴 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9시 30분 패스트 트랙 입장이었기에 큰 기다림 없이 9시 40분쯤에 바로 입장을 할 수 있었다.
입구에서 간단히 기념사진 몇 장을 찍고 본격적인 투어가 시작되었다. 오른쪽으로 이어진 미술 작품들 투어의 시작. 우선 우리 일행은 피나코테카로 입장했다. 이곳은 교황청에서 1932년에 피나코테카 건물을 새롭게 건축하고 바티칸이 오랫동안 수집했던 회화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바티칸의 분관 같은 곳이다.
처음 눈에 들어오는 작품은 마치 열쇠 구멍처럼 생긴 그림인데 지오반니와 니콜로의 최후의 심판이라는 그림이었다. 12세기 후반 작품으로 피나코테카가 소장한 회화 작품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했다.
조토와 제자들이라는 특별한 그림들. 이 작품은 옛 성 베드로 대성당의 중앙 제단에 놓여 있었다고 했다. 가이드가 자세한 내용을 설명해 주었지만 이때부터 여기저기의 그림들을 살피느라고 그리 집중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13세기부터 이어진 다양한 회화들에 빠져 있자니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 어딘가로 이동한 듯한 느낌이었다.마르코 팔메차 노 의 수태고지와 성인들과 함께 있는 성모자까지 600여 년 전 느낌이 그래도 살아 있었다.
그리고 교황 식스토 4세가 그려져 있는 그림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텔레비전 세계사 프로그램에서 봤던 바로 그림. 교황청이 부패로 물들어가던 당시의 종교 권력자들을 그린 그림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가이드는 중앙에 서서 교황을 쳐다보고 있는 사람이 조카인 교황 율리오 2세이라고 했다. 이들이 열심히 사리사욕에 집중하면서 결국 루터에 의해서 종교개혁이 시작된 것으로 나는 이해하고 있었다.
조금 더 안쪽 방으로 들어가니 라파엘로의 스승이라고 불리는 페루지노의 작품들이 있었고 다음 방으로 들어가면 이 전시관에서 가장 중요한 방인 라파엘로의 3개의 작품이 있었다.
나폴레옹이 1799년 이탈리아를 침공했을 때, 라파엘로의 이 그림들을 약탈한 뒤 파리의 루브르 궁전으로 가지고 갔다가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하면서 프랑스 정부는 이 그림들을 이탈리아에 되돌려주었다. 반환과정에서 원래 있었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바티칸으로 오면서 이곳에서 전시하게 되었다.
중앙에 있는 것이 변용, 오른쪽에 있는 것이 성모의 대관, 왼쪽이 폴리뇨의 성모이라는 작품이다. 학창 시절 르네상스 시대 3대 화가로 불리는 라파엘로의 작품을 봤다는 것만으로 감동, 그 자체였다.
다음 방으로 나오니 이곳에 유일하게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인 '성 히에로니무스'가 전시되어 있었다. 다빈치가 피렌체에 있을 때 주문을 받아 그리기 시작하였으나, 1482년에 밀라노로 옮겨가면서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얼굴부문만 다빈치가 만들었다고 가이드는 이야기했는데 과거 박스 부문에 활용을 했다가 그 가치를 알아본 누군가에 의해서 이렇게 전시가 되었다고 했다.
수없이 많은 미술 작품들. 그리고 1시간이 훨씬 넘어가고 있었다.이쯤 되니 슬슬 몸과 마음이 지쳐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화려한 미술품에 반해서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설명을 청취했지만 1시간 반 정도가 정도가 지나면서 살포시 집중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설명을 해줘도 가물가물한 느낌. 때문에 회화 속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와 조각작품 속 얘기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냥 있는 그대로 마음에 담아둘 뿐.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인 그리스도의 매장이라는 작품과 에덴의 동산이라는 그림. 보는 것만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에덴의 동상은 가이드의 힐링용 작품이라고 강조해서 오래 기억이 남았다.
마지막 부분에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라는 조각품이었다. 사실 이곳에 전시된 것은 모조품이었다. 성 베드로 성당에 전시되어 있는데 현재 보수 중이라고 했다. 사실 이 작품에서 마리아의 표정이 너무나 담담해 비춰졌다. 아들의 주검을 앞에 두고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이 너무 역설적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2시간의 피나코테카 투어를 마치고 잠시 휴식. 건물의 정원이 보이는 카페테리아에서 약 20여분의 달콤을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시간을 거꾸로 과거에 다녀온 기분이었다. 30도를 넘는 더위 속에서도 너무나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이제 약 절반 정도 마무리된 바티칸 투어. 앞으로 남은 시간이 더 기대가 된다. 이제 진정으로 바티칸 명작들과 만날 시간이 다가오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