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의 둘째날이 밝았다. 아직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서인지 이른 새벽에 잠에서 깨어났다.
아침 일찍 잠시 호텔에서 나와서 주위를 걸었다. 도시를 깨끗하게 정리하는 청소차와 여기저기 음식 재료를 배달하는 운송차들의 움직임이 바빴다. 역시 대도시다운 분주함이 느껴졌다. 다만 동경이나 뉴욕, 서울같은 현대미 넘치는 여느 큰 도시와는 다르게 넒지 않은 거리와 소박한 골목들, 작은 자동차들이 인상깊게 느껴졌다. 그리고 아침부터 느껴지는 뜨거운 햇살. 오늘도 최고 기온이 36도. 만만치 않는 더위가 예상되었다.
아이와 함께 걸어야하는데 심히 걱정이 되었다.
아침 산책을 마치고 다시 호텔로 들어와서 오늘 일정을 짰다. 사실 바티칸 일정만 미리 계획했을 뿐, 오늘은 그냥 로마 시내 여기저기를 다녀볼 생각이었다. 어디부터 갈까 고민하다가 찾은 곳은 판테온. 근사한 고대시대의 건물이 보고 싶었다.
그곳에서 스페인 계단까지 걸으면서 커피와 젤라또 맛집을 들리는 것이 1차 계획.
아침식사를 하고 택시를 타고판테온으로 향했다. 10분 정도를 가니 바로 판테온 건물이 보였다. 웅장함이 정말로 남달랐다. 그리스 신전을 모태로 만들어진 로마의 거대한 건축물을 실제 눈으로 확인하니 어마어마한 감동의 물결이 몰려왔다.
현장에서 5유로짜리 입장권 2장을 바로 구매했다. 초등학생은 무료라고 아이는 입장권 구매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블로그 글처럼 긴 대기는 전혀 없이 1초컷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판테온은 고대 신들에게 바치는 신전으로 지은 로마의 오래된 건축물로, 서기 125년경에 소실된 건물을 재건한 것이다. 모든 고대 로마 건축물 가운데 가장 보존이 잘 되어 있었다. 사실 중간 중간에 소실되고 부서지면서 상당한 리모델링이 있었기에 지금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사실.
엄청난 화강암 기둥은 건설 당시에 이집트에서 직접 가져와서 만들었고,로마 시대뿐만 아니라 여러 시대의 최고 건축가들의 도움으로 모든 이를 압도할만한 건축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덕분에 르네상스 당시부터 지금까지 로마 최고의 건축물이라고 칭찬이 이어지고 있는 상당히 핫한(?) 신전이었다. 현재는 가톨릭 성당으로 활용이 되고 있다고 했다.
입구에 들어서면서 가장 눈에 띠는 것은 원형 천장이었다. 중간 구멍이 있는데 빛이 그대로 들어올 수 있게 만들었고 비가 내릴 수 있기에 아래에는 배수구도 디테일하게 만들어놓았다.
신이 그곳으로 강림할 것처럼 큰 구멍 사이로 내려오는 태양빛은 신성함, 그 자체였다.
어제 바티칸에서 둘러본 로마의 가톨릭 건축물과는 다른 색다름과 신선함이 있었다.
다만, 고대 신을 모시던 이곳이 7세기 들어 가톨릭 성당으로 활용되면서 내 벽 여기저기에는 종교색이 짙은 조각과 그림들이 채워져 있었다. 고대신들과 가톨릭의 어색한 만남이라고 할까?
오랜 시간 이어져온 가톨릭 그림과 조각 작품들을 관람하면서 한 바퀴 돌다보니 어제 공부했던 화가 라파엘로의 무덤이 눈에 들어왔다. 입구에서 9시 방향에서 라파엘로의 유해가 매장되어 있는데, 그의 대리석 석관에 있는 비문이 남겨져 있었다.
방명록에 한글로 추모하는 글을 남기고 사진 몇 장을 찍은 후에 우리 가족은 밖으로 나왔다.
그 앞에 로마의 3대 커피집 중 히나가 있다고 하여 더위도 시킬 겸 아내와 함께 커피 한 잔을 했다. 처음 맛보는 이태리에서의 커피. 역시 한국과는 다르게 쓴 맛이 그대로 느껴졌다. 나는 우리의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더 맛있는 듯 했다.
그리고 약 20분 정도를 더 걸었다. 가는 길에 로마에 명물 젤라또 집에 들려서 라이스젤라토와 레몬 젤라또를 먹었다.역시 로마에서는 1일 1젤타또가 진리. 진정 인생 최고의 맛이었다.
우리는 몬테치토리오 궁전과 키지 궁전, 콜론나 광장을 걸었다. 멋진 카페 골목을 지나니 그리고 그리던 스페인 계단이 눈에 나타났다. 더운 여름 햇살 속에서 많은 인파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다. 약 70년 전에 개봉한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이탈리아 아이스크림 '젤라토'를 맛있게 먹던 그곳이었다. 나에게 로마하면 떠오는 곳이 바로 여기이기에 긴 계단과 분수를 보면서 진짜 로마에 왔다는 것이 실감되었다.
스페인 광장(16세기 스페인 대사관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에서 삼위일체 성당(Trinita dei Monti)까지 135개로 이뤄진 이 계단은 관광객들이 꼭 들리는 곳이자 로마 시민들의 만남의 장소로도 유명한 곳이었다. 근데 한 가지 놀라운 것이 그 계단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전혀 없다는 것. 아이가 너무 지쳐있어서 살짝 앉을까 하다가 분위기 보고 그냥 서 있었을 수 밖에 없었다. 알고 보니 그 자리에 앉으면 벌금을 낼 수 있다는 것. 5년 전부터 계단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앉거나 누울 수 없다고 한다. 분수를 배경으로 아들과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지친 아들의 손을 잡고 삼위일체 성당(Trinita dei Monti)까지 뚜벅뚜벅135개의 스페인 계단을 올랐다. 정상에 오르니 저멀리 바티칸까지의 풍경이 그대로 펼쳐졌다.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잠시 그늘에서 로마의 시내를 둘러봤다. 밤에 이곳에 올라서 야경을 즐기면 최고의 풍경을 즐길 수 있을 듯 했다. 잠시 후에 경건한 마음으로 삼위일체 성당에서 들어갔다. 때마침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기에 잠시 모자를 벗고 기도. 우리 가족 무사히 여행 마칠 수 있게 해달라고 진심으로 기도를 했다. 그리고 엄숙한 마음으로 그 안에서의 그림들을 감상하고 나왔다.
어느 덧, 점심시간이 되어서 근처에서 이태리 파스타로 간단히 식사를 하고 숙소로 향했다. 그날 오후 로마의 기온은 35도 이상으로 2시에서 5시까지 여행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보였다.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고 6시가 넘어서 다시 여행을 시작했다.
오후 여행 시작은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이다. 사실 이 근처에 맛있게 티라미슈 가게가 있다고 해서 찾은 것. 나보나 광장은 1세기 경 로마 황제가 만든 도미티아누스 경기장(Circo dell'imperatore Domiziano)이 있던 곳이었다. 현재는 흔적이 거의 다 사라졌지만, 일부 유적은 지하에 남아있었다. 광장 앞에는 멋진 성 아녜스 성당이 있었고, 언제든지 무료로 입장을 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광장에 있는 바로크 풍의 근사한 분수는 공사로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제일 유명한 것이 광장 가운데 자리잡은 4대 강 분수인데 사진처럼 공사중이라서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대신 공원에서 울려퍼지는 거리의 음악가들의 근사한 음악과 인근의 티라미슈 맛집에서 사온 음식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나보나 광장에서 테베레 강쪽으로 조금 더 걸으면 성천사성(산탄젤로성)이 있었다. 이 성은 원래 로마 황제의 묘로 쓰일 용도로 처음 세워졌다. 당시에는 하드리아누스 영묘로 불렸다고 한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자신의 영묘를 지으면서 무덤 앞을 흐르는 테베레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도 함께 건설했는데 이 다리가 산탄젤로 다리다. 다만 현재 공사중이라서 이곳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잠시핸드폰으로성에 대한 내용을 검색하니 무덤에서 교황의 대피처이자 요새, 성, 감옥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다가 1901년에 박물관으로 개조되었다고.
늦은 시간이었기에 박물관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다만 밖에서 근사한 사진 몇 장을 남기는 것으로 마무리할 수 밖에 없었다. 숙소에 들어와보니 오늘도 약 17000걸음을 걸었다는 놀라운 사실. 아이가 피곤했던지 그대로 침대에 누워서 잠이 들어버렸다. 이렇게 로마에서의 두 번째 날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