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3박 4일을 보낸 후에 피렌체에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아침. 로마와는 다르게 피렌체의 아침은 고요하고 신비스러운 느낌이었다.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창문을 살포시 열어보니 유럽 느낌이 물씬 풍기는 중세 건물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2024년에 즐기는 과거로의 시간 여행. 바로 피렌체의 첫 느낌이었다.
이른 아침 피렌체의 고요함을 즐기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아들 손을 잡고 강가 나들이에 나섰다. 오전 6시 30분. 아직은 이른 시각이라서 그럴까? 피렌체 거리는 한적했다. 조깅을 하는 몇몇 사람들과 아침 가게 문을 여는 한두 가게를 제외하고는 거리에는 오직 나와 아들뿐이었다. 영화 속에서도 보았던 오래된 도심 거리를 지나서 도심을 가로지르는 아르노 강으로 향했다. 아르노 강가에 다다랐을 때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깊은 산속에서 흘러내린 계곡물이 피렌체 중앙을 지나면서 그림 같은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강가를 거닐다가 저 멀리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가 보였다. 중세에 만들어진 아르노강의 상징. 다리 위에는 건물들이 가득했다. 아침이라서 모든 문이 닫혀 있었지만 대부분이 보석상으로 쓰이고 있는 그런 특별한 다리였다. 강가를 거닐다가 잠시 다리 중앙에 걸터앉아서 저 멀리 펼쳐지는 사치스러운 아침을 아들과 함께 즐겼다.
아침 산책을 마치고 곧바로 호텔로 돌아왔다. 오늘은 피렌체 근처에 있는 더몰 아웃렛에 들리기로 한 날이기에 일찍 서둘러야 했다. 오전 7시 30분에 호텔 식당으로 향했다. 이번에 예약한 숙소는 피렌체 역사지구 안에 있는 호텔로, 규모는 작지만 현지 느낌이 그대로 느껴지는 사랑스러운 조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음식 하나하나가 정성이 가득하여 맛이 있었다. 힘이 저절로 생겨났다. 조식을 담당하시는 유쾌한 이태리 아주머니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우리에게 즐거운 하루 되라며 환한 미소로 답해주셨다.
피렌체 인근의 더몰 아웃렛으로 가기 위해서는 피렌체와 아웃렛을 왕복하는 셔틀버스나 개인 렌터카를 이용하면 된다. 왕복 15유로 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할까 하다가 그냥 편하게 렌터카를 빌리기로 했다. 하루 60유로 정도면 렌트가 이용이 가능했기에 셔틀버스 요금과 비슷하여 렌터카를 빌린 것이다.
렌터카를 빌리기 위해서 피렌체 중앙역에 있는 대여사무소로 갔다. 걸어서 12분 정도 걸린 듯했다. 서류를 작성하니 렌터카를 빌릴 수 있는 주차장 지도를 건네주었다. 구도심 지역이라서 이곳에는 주차장이 도심 안쪽에 한 곳에 모여 있는 것이었다. 다시 5분 정도를 걸어서 차량 픽업 장소로 향했다. 파란색 계통의 소형 씨트로엥 차량을 한 대 인도받아서 더몰 프리미엄 아웃렛으로 향했다. 30~40km 정도의 거리였지만 차를 타고 가면 약 50여분이 걸렸다.
오전 10시가 거의 다 되어서 더몰 아웃렛에 도착했다. 아직 10시 개장 전이라서 그런지 주차장은 넉넉했다. 차를 세우고 아웃렛 입구로 걸어가니 구찌와 프라다 매장의 크게 보였다. 이태리에서 가장 큰 구찌 프리미엄 아웃렛이라고 하는데 가방이나 액세서리 등을 살 계획이 없었기에 그냥 지나쳐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웃렛 안내 사무소와 식당 등을 지나니 프리미엄 유럽 브랜드들의 상점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우선 아내 옷을 구매하기 위해 버버리 상점으로 들어갔다. 높은 환율 때문에 크게 가격 차이가 나지는 않았지만 세금 환급과 쿠폰 등을 고려하면 한국보다 약 20% 정도 보통 저렴한 듯했다. 하지만 결국 득템을 잘해야 한다는 것. 여기저기 매장을 돌면서 우리 가족이 입을 몇 벌의 옷을 구매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오후 1시가 지나가버렸다. 이제 슬슬 배가 출출해졌다.
아웃렛 중앙에 있는 식당가로 자리를 옮겼다. 식당은 한 줄로 서서 원하는 음식을 하나씩 선택한 후에 계산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우리는 피자와 파스타, 닭요리, 음료 등을 구매하여 점심을 즐겼다. 역시 이탈리아에서는 피자가 제일 맛있고, 가성비가 좋은 듯했다.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서는데 갑자기 천둥과 번개가 치면서 소나기가 내렸다. 최근 사이 너무 더웠던 날씨 때문인지 오랜만에 내리는 비가 너무나 반가웠다. 비를 피하면서 바로 피렌체로 돌아갈까 하다가 이태리에 온 김에 몽클레어 브랜드를 살펴보기로 했다. 더몰 아웃렛 건너편에 몽클레어가 운영하는 아웃렛이 있어서 그곳으로 향했다. 다양한 몽클레어 제품들. 당연히 한국 백화점 가격보다는 30% 정도 저렴했지만 여전히 근접할 수 없는 높은 가격. 그냥 눈으로만 잘 구경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오후 3시 즈음에 다시 피렌체로 향했다. 근처의 다른 여행지를 들릴까 했지만,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았다.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가 거의 폭우 수준이었기에 안전한 여행을 위해서 바로 피렌체 숙소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근사한 이탈리아의 전원 풍경을 즐기며 피렌체로 향했다. 1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할 거리. 문제는 피렌체로 들어와서였다. 도심 전체가 오래된 도시이다 보니까 도로 대부분이 1~2차로로 너무나 좁았다. 때문에 대부분이 일방통행길. 초행자가 운전하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다. 직선거리가 2km 정도였지만 실제로 가야 하는 거리는 5~6km 이상. 정말 몇 번을 돌고 돌고 돌았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출발한 지 1시간 30분 만에 처음 차를 빌렸던 주차장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피렌체에 간다면 렌터카 이용은 자제하길 바란다. 그것이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차를 반납한 후에 피렌체 시내 나들이에 나섰다. 회전목마가 인상 깊은 피렌체 중앙에 있는 시뇨리아 광장을 거쳐서 베키오궁까지 우리 가족 모두가 손을 꼭 잡고 걸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관광객들이 가득한 피렌체 거리는 행복으로 가득했다. 모든 이들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고, 뭔지 모를 설렘으로 모두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렇다. 피렌체는 행복을 주는 도시임이 틀림없었다. 산책하는길에 유럽 느낌 가득한상점에 둘러서 신기한 제품 구경도 하고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진심으로 행복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골목 하나하나를 돌 때마다 나를 설레게 하는 모습들. 감동으로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들린 베키오궁 근처행운의 멧돼지 조각상. 여기에서 동전을 떨어뜨려서 바닥으로 들어가면 행운이 온다는 소문. 아들과 내가 도전했다. 내가 먼저 조각상 입 속에 손과 동전을 넣고 살짝 떨어뜨렸다. 땡그랑~ 하면서 떨어진 동전이 그대로 아래로 들어가 버렸다. 성공이었다. 잠시 후 아들의 도전. 동전을 떨어뜨렸다. 하지만 땡하고 튕기면서 밖으로 떨어졌다. 아들은 아쉬워했다. 나는 다시 한번 도전해 보라고 했다. 다시 도전. 결국 아들도 행운의 동전 던지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쯤 되니 다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은 바로 피렌체에서 유명한 티본스테이크 먹기. 숙소 근처에 괜찮은 맛집이 있어서 그곳을 찾았다. 스테이크 2인분과 파스타를 주문했다. 잠시 후에 맛있게 익은 스테이크가 나왔고 와인 한 잔과 함께 살포시 한 입을 베어 먹었다. 진짜 입에서 사르르 녹는 느낌. 한 마디로 끝내줬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저녁을 먹다보니 금새 하늘이 어두워졌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아쉽게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