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더위로 인해 며칠 전까지 반팔을 입었건만, 가을비가 지나가자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답답한 도심을 떠나서 코스모스가 가득한 교외를 달리고 싶었다. 울긋불긋 가을 옷으로 갈아입는 숲 속에서 하룻밤 보내고 싶다는 생각. 진정으로 나를 설레게 하는 최고의 계절, 바로 가을이다.
오늘은 서울에서 가까운 남양주시 수동면에 있는 축령산 자연휴양림으로 떠나는 날. 간단히 점심을 챙겨 먹고 가족들과 함께 짐을 챙겨서 축령산으로 향했다. 주말이라서 가는 길이 조금 막히기는 했지만 가는 길의 풍경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길게 뻗은 고속도로를 지나고, 구불구불 시골길을 달렸다. 정확히 1시간 20분 만에 우리 가족은 축령산 자연휴양림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축령산 가는 길과 매표소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축령산은 금강산에서 시작하여 남서 방향으로 서울까지 이르는 광주 산맥 끝에 위치한다. 광주산맥이 가평에 이르러 소명지산과 운악산을 솟구쳐 오르다가 형성된 산으로, 조선 태조 이성계의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태조 이성계가 이 근처로 사냥을 나왔다가 운이 좋지 않았는지 한 마리도 사냥하지 못하게 된다. 그때 몰이꾼의 제안으로 산 정상에 올라 제를 지낸 후에 멧돼지를 잡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태조가 고사를 올린 산이라고 하여 축령산으로 불러졌다고.
축령산 입구의 갈림길과 안내도
입구의 주차장
휴양림 입구를 지나니 길이 양갈래로 갈라졌다. 왼쪽은 서리산, 오른쪽은 축령산으로 오른 길이었다. 숲 속의 집으로 향해야 했기에 나는 왼쪽으로 핸들을 돌렸다. 잠시 후, 차창 너머로 들려오는 웅장한 계곡물소리가 나를 유혹했다. 계곡을 보고 싶어서 잠시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밖으로 나왔다. 문을 여는 순간 가을을 담은 시원한 바람과 청량한 공기가 나를 반겨줬다.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단풍내음 가득한 가을의 공기가 온몸 가득히 느껴졌다. 계곡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축령산에는 이미 가을이 도착해 있었다. 맑은 물줄기 사이로 붉은색 단풍잎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고, 나무들은 이미 행행색색으로 가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답답한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만 하던 나에게 하늘이 선물해 준 올해 최초의 가을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축령산 계곡
축령산 계곡과 나무다리
아이 손을 잡고 계곡을 끼고 조금 더 올라갔다. 지금은 운영을 끝난 여름 물놀이장이 있었고, 계곡 건너편으로는 야영데크들이 보였다. 이미 몇몇 가족들은 근처에 의자를 펴고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축령산의 가을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니 나도 빨리 짐을 풀고 축령산 자연휴양림을 제대로 즐겨보고 싶었다.
물놀이장과 등산로, 관리사무소
차를 가지고 우리가 머물 숙소인 백합방으로 향했다. 집 앞에 주차를 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여느 휴양림처럼 깔끔하게 정리된 거실 겸 주방, 그리고 숲이 보이는 방이 있었다. 6명 정도 지나기에 적당한 크기였다. 거실에는 큰 통창이 있어서 숲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역시나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테라스. 앞에서 언제든지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고, 야외 식탁에 앉아서 가족들과 함께 밤새 이야기를 나누기에 충분한 공간이었다. 특히 지붕이 있어서 비가 오는 날에도 아무 불편 없이 밖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보였다. 살짝 고개를 들어보면 맑은 계곡물이 보일 정도로 계곡 가까이에 있었다. 밤새도록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을 수 낭만 가득한 가을밤을 보낼 수 있었다. 여름에는 맑은 물 가득한 축령산 계곡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100점 만점 숲 속의 집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숙소에서 나와서 뒤쪽의 다른 숙소들을 둘러봤다. 우리 백합방 뒤로 몇 채의 숲 속의 집이 옹기종기 자리 잡고 있었다. 안내서를 보니 축령산 자연휴양림에는 숲 속의 집과 산림 휴양관 등 모두 31실의 숙박시설과 야영데크 등 갖추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서울에서 가까이 있고 계곡과 숲이 여느 휴양림보다 근사하게 펼쳐져 있었다. 가족나들이와 주말 산행지로 인기가 높아서 숲 속의 집 예약은 정말로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울 것 같아 보였다. 운 좋게 취소된 방을 예약한 우리가 진정한 승자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환한 미소가 얼굴에 피어났다.
축령산 휴양림 숲 속의 집들
조금 더 걸어 올라가니 가장 꼭대기에 산림 휴양관이 나타났다. 3층으로 된 산림 휴양관은 모두 18개의 객실이 있었다. 숲 속의 집 예약이 쉽지 않기에 이곳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산 아래로 펼쳐지는 탁 트인 풍경은 어느 객실에서나 만끽할 수 있다. 저 멀리 그림처럼 펼쳐지는 풍경을 즐기며 시원하게 맥주 한 잔 마시면 주중의 스트레스가 한 방에 사라질 듯했다.
산림휴양림과 그곳에서 바라본 풍경
산림 휴양관 뒤쪽으로는 근사한 등산로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곳 축령산 자연휴양림은 수도권 제일의 가을산행지로 손꼽히고 곳이다. 서울에서 약 1시간 거리이기에 당일 등산코스로 적격일 뿐 아니라, 단풍색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축령산의 단풍은 청록의 잣나무림에 둘러싸여 형형색색의 빛깔이 잘 어우러져 있어서 가을을 즐기는 이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나도 잠시 그 가을 길을 걸어보았다. 아기자기한 등산로는 걷는 내내 재미를 주었고 반짝반짝 빛나는 계곡물은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아름드리 잣나무 숲을 걸으며 나무 향기와 취해보았고, 잠시 의자에 앉아서 새소리를 귀에 담았다. 오늘따라 높고 푸른 하늘은 또 하나의 별책부록이었다. 눈을 감고 행복한 시간을 즐겼다. 나는 오늘 자연이 주는 가을 쿠폰을 100% 활용했다.
축령산의 산책길
축령산 잣나무
산책을 마무리하고 다시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려가는 길의 발걸음은 너무나 가벼웠다. 진정으로 행복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을 품은 축령산.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번 가을, 여러분들을 축령산 자연휴양림으로 초대합니다. 숙소 예약이 아니라도 단순히 방문만으로도 충분히 가을을 즐길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