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이다. 세상이 울긋불긋, 그리고 금빛으로 물들어가는 시간, 그 가을을 즐기기 위해 어디로 떠나야할까?
고민 끝에 다시 자연휴양림 예약사이트인 숲나들e를 접속해 보았다. 혹시라도 예약이 되면 그곳이 어디든 무조건 떠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가을 자연휴양림의 숙소를 예약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는 사실.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히 숙소 예약을 해보았지만 실패의 연속. 여행다니기 좋은 가을 주말에 예약 취소된 방을 구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한 번의 행운이 찾아왔다. 국립 운악산 자연휴양림의 연립동 대기 예약에 성공! 10월의 마지막을 그곳에서 즐길 수 있었다.
이윽고 주말 아침. 내가 상상했던 가을 날씨, 그 이상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선선한 바람까지. 여행 가기 딱 좋은 날씨였다. '룰루랄라~'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짐을 챙겨서 강원도 포천에 있는 운악산 자연휴양림으로 향했다. 집에서 출발하여 1시간 20분. 가을색으로 갈아입은 나무들이 가득한 운학산 자연휴양림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운악산의 산책로
입구에서 바라본 운악산 정상
운악산 자연휴양림 입구
포천 운악산은 서울 관악산, 원주 치악산, 춘천 화악산, 개성 송악산과 함께 중부 지방의 5대 악산 중 하나다. 해발 935.5미터로 아름다운 산세와 가을 단풍이 유명하여 경기도의 소금강으로 불릴 정도라고. 운악산이 품은 골짜기 아래에 아담하게 위치한 것이 바로 운악산자연휴양림이다. 2007년 3월에 개장한 이 휴양림은 가을을 담은 풍광과 함께 역사적인 스토리가 합쳐지면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 휴양림 안쪽에는 고려말에 있었던 가마터가 있다. 15세기 도자기를 생산했던 곳이 여기에 있었다고. 또한 휴양림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궁예의 성터도 있다. 궁예가 입산 후에 왕건군을 막으려고 운악산성을 축성해 반년 동안 왕건과 대항했는데 그때 신축한 성터라고 한다. 이런 특별함으로 운악산은 가을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명산 중의 하나다.
우선 짐을 풀기 위해 우리 숙소로 향했다. 휴양림은 그리 크지 않았다. 소박하다고 해야할까? 입구에 있는 숲 체험 교실을 돌아서 살짝 언덕을 넘으니 유럽 여행에서 보았을법한 근사한 숙소들이 줄지어 이어지고 있었다. 연립동은 A부터 E까지 옹기종기 줄지어 있었다. 연립동 하나에는 크기에 따라서 3~4개의 객실들이 함께 붙어 있었다. 대부분이 탁트인 테라스가 있었고, 사생활 보호를 위해서 방마다 철저하게 분리된 구조였다. 휴양림의 독채 숙소인 숲 속의 집과 큰 차이가 없어보였다. 천천히 차를 몰고 연립동 F동으로 향했다. 그곳은 가장 안쪽에 위치한 연립동으로 우리 가족은 오늘 2층 객실인 꽃창포 예약을 했다.
숙소 앞에 차량을 주차하고 구불구불 계단을 걸어서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그런데 기대 이상이었다. 국립 자연휴양림 단체 숙소인 연립동이지만 의외로 시설과 관리 상태가 좋았다. 문을 여니 긴 거실이 나왔다. 건너편에 확트인 창이 있었고 문쪽에는 싱크대가 있었다. 화장실도 깨끗했다. 거실 옆에는 또 하나의 큰 방이 있었다. 여기에는 통창은 아니었지만 양쪽으로 나눠진 중간 크기의 창이 있었다. 다시 복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면 작은 공간이 있었다. 1~2명 정도 잘 수 있는 크기였다. 우리 가족이 머물기에는 완벽했다. 그래서인지 내 마음 속의 행복 지수가 쭈욱 올라가고 있었다.
꽃창포 입구와 계단
꽃창포 거실
2층과 1층의 방
이제 베란다쪽으로 가서 살짝 문을 열어보았다. 창 밖으로 가을이 도착해 있었다. 형형색색으로 물든 운악의 가을 풍경이 그대로 문 앞에 다가와 있었다. 1년을 기다린 계절의 모습이었다. 바람이 살포시 불면서 낙엽들이 그 위로 떨어지니 낭만과 운치가 가득했다. 가을 숲을 그대로 즐길 수 있는, 내가 원하는 그런 장소였다. 이곳에 의자를 펴고 밤하늘을 즐기면서 맥주를 즐기면 완벽한 힐링의 시간이 아닐까 생각했다.
짐 정리를 하고 휴양림을 한 번 둘러보기로 했다. 다시 밖으로 나오니 우리 숙소 옆에서는 F동과 똑같이 생긴 E동이 있었다. 여기가 가장 안쪽에 있는 숙소. 조용한 힐링을 원한다면 옆의 E 숙소도 나쁘지 않아보였다.
테라스에서 바라본 풍경
아들 녀석의 손을 잡고 숲길을 돌아서 숲속 수련장과 연립동 D동쪽으로 걸었다. 24명이 머물 수 있는 단체 숙소인 수련장과 여러개의 숙소가 이어져 있는 연립동 D가 보였다. 유럽의 멋진 정원 주택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여기는 다른 숙소에 비해서 규모가 상당히 커보였기에 산악회나 단체 모임, 또는 여러 가족들이 함께 와서 머물기에 적당한 장소였다. 특히 그 앞으로 죽구장과 이끼 광장등이 이어져 있어서 운동을 하며 산책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어보였다.
연립동 D과 숲속 수련장
이제 방향을 바꿔서 언덕 위쪽으로 올라갔다. 입구에서 들어오면 가장 먼저 만나는 연립동 A부터 C까지가 이어져 있었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기에 인기가 가장 많은 숙소처럼 보였다. 앞쪽에도 멋진 테라스가 있었다. 잠시 객실에서 바라보는 뷰가 궁금해져서 숙소 앞쪽으로 올라가보았다. 우리 숙소와는 다르게 확트인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건너편 붉은 단풍으로 갈아입은 산들이 멋지게 펼쳐졌다. 가을이 선물에 주는 근사한 정원 같았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커피 한 잔 마시면 일상에서의 스트레스가 한 방에 사라질 것 같은 느낌. 나중에 다시 방문한다면 이 숙소를 찜해야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 옆으로는 연립동 C가 있었다. 오리나무와 산벚나무 2개동으로 구성된 연립동 C도 2가족 정도가 함께 머물기에 충분한 크기로 보였다.
연립동 A와 B
연립동 A에서 바라본 풍경
연립동 C
마지막 운악산 자연휴양림의 최고 숙소인 운현정으로 발길을 옮겼다. 가장 안쪽에 위치한, 유일한 숲 속의 집.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다. 운악산 정상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단풍의 물결을 즐기며, 하늘 위로 펼쳐진 금빛 햇살을 느끼면서 산책로를 걸었다. 그리고 저 멀리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운현정이었다.
그 앞으로 다가가니 근사한 한옥 한 채가 눈 앞에 들어왔다. 다행히 아직 아무도 입실하지 않아서 마당까지 올라가서 전체를 둘러볼 수 있었다. 규모가 상당했다. 휴양림 안내서를 보니 12인용 숲속의 집이었다. 아마도 최소 2가족, 또는 3가족이 함께 머물기에 적당한 규모로 보였다. 겉에서 보여지는 숲 속의 집 '운현정'의 자태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운현정은 경상도나 전라도에서 보았던 오래된 고택, 그 이상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어느 계절이든 꼭 한 번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당 앞에서는 야외 테이블이 있었고, 여기에서 가족들이 함께 식사를 하고 바비큐를 즐기면 그보다도 완벽한 힐링의 시간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누가 예약을 했을까? 그냥 부러울 따름이었다.
유일한 숲 속의 집 '운현정'
운현정 사진을 몇 장 찍고 다시 휴양림 안쪽길로 산책을 했다. 가을의 중심에서 상쾌하게 느껴지는 낙엽 내음이 향긋하게 느껴졌다. 산책로 바로 옆으로 이어지는 작은 개울에서는 맑은 물이 졸졸졸 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일상의 걱정이 모두 사라지고 마냥 행복했다. 이런 가을을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우리 가족은 울긋불긋 가을 물결 가득한 운악산의 명풍 정원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