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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딱꽁과 생일 선물

초등학교 마지막 겨울 방학의 추억

by Wynn

1989년 2월의 어느 날.
내게 있어서 특별한 날이었다.

처음으로 도시 사는 친구들 6명이 우리 집을 찾았다.

허름한 슬레이트로 만들어진 소박한 시골집. 나무로 불을 지피는 아궁이와 빈 헛간, 겨울이면 차가운 바람이 가득한 오래된 대청마루, 그리고 구멍만 문풍지 사이로 테이프가 붙어 있는 허름한 방문. 집에서 멀리 떨어진 푸세식(?) 화장실. 모든 것이 그 친구들이 사는 도심의 단독 주택이나 아파트와는 너무나 다른 환경이었다.


나는 부끄러웠다.

그 친구들에게 나의 이런 환경을 보여주기 싫었다. 그 녀석들에게 "오지 말라고 오지 말라고" 수십 번을 반복했지만 친구들은 막무가내로 내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다며 말우물에 있는 우리 집을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일요일 점심에 우리 집으로 초대를 했다. 그날 아침 나는 일찍 친구들을 대접(?)할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시내의 통닭집으로 향했다. 아버지가 추천해 주신 통닭집에 가서 잘게 쪼개진 치킨 두 봉지를 사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부터 서둘렀지만 12시가 훌쩍 넘긴 시각에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대문을 여는 순간, 마루 앞 쪽에 놓여있는 십여 개의 신발. 이미 친구들이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반가운 어머니의 모습. 회사 일이 바쁘셔서 일요일에도 공장에 출근을 하셨지만 오늘은 반차를 내고 일찍 나오셨다고 했다. 너무나 고마웠다. 방 안으로 들어가니 친구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이미 같은 반 남자 친구 3명과 여자 친구 3명이 어머니가 준비해 주신 음료수와 과자를 먹고 있었다.

"생일 축하해!"

한 친구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동시 모든 친구들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미리 준비한 케이크를 꺼내 불을 붙이고 내게 건네주었다. 너무나 행복한 순간이었다. 이렇게 많은 친구들이 내 생일 축하해 주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한 친구씩 돌아가면서 내게 선물을 건네주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이 남는 것은 작은 인형 하나. 얼굴이 까만 원주민 캐릭터였다. 그때 나의 별명은 '깜딱꽁'.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톡톡 튄다고 해서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나를 닮은 캐릭터였다. 그리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생일 축하 파티를 이어나갔다. 우리 모두는 웃음꽃이 끊이지 않았다. 그날 우리 집을 찾아준 재현이와 정수, 영기, 지혜, 지연, 선영이에게 너무나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없이 행복했다. 그렇게 많이 웃었던 기억은 없었던 듯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시내로 나가는 버스 시간 때문에 친구들은 오후 2시가 조금 넘어서 우리 집을 나섰다. 나는 친구들에게 "생일 축하해 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내일 다시 학교에서 만나자"라고 약속하며 친구들을 버스 정류장에서 배웅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여동생들이 나를 기다리며 "재미있었어? 오빠"라고 물었다. 동생들도 내 친구들이 와서 자리를 비켜주기 위해 다른 친구집에 있었다고 했다. 어머니와 동생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다음 날 학교에서 친구들을 다시 만났다. 우리 집이 어땠냐고 물었지만 친구들 모두는 좋았다고 답했다. 그 전과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날 오전 하늘에서는 어마어마한 눈이 내렸다. 나와 친구들은 점심시간에 운동장으로 향했다. 남자와 여자 편으로 나눠서 눈싸움을 즐겼다. 하얀 운동장을 달리면서 서로에게 눈덩이를 던지고 때론 맞으며 서로서로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1주일 후. 우리는 졸업식을 맞았다. 그 친구들 모두가 나와는 다른 학교로 배정되었다. 남자중학교와 여자중학교. 그리고 모두가 각자의 학교로 향했다. 졸업식장에서 다시 만날 것이라고 다들 약속을 했지만 그 후에 다시 만나는 기회는 없었다. 거의 3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궁금하다. 그때 그 친구들이 무엇을 하고 있을지. 그립다. 그 때 그 친구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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