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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ynn Nov 23. 2024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초등학교 시절 악몽 같았던 하나의 기억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초등학교 교실에서 일어나는 정치, 권력을 주제로 1987년 이문열이 펴낸 장편소설이다. 1992년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내용의 중심은 반장이던 엄석대. 그는 공부도 잘하고 모범적이고 담임 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선생님들에게서 무조건적인 신뢰를 받는다. 하지만 실상은 폭력과 강압, 반장이라는 권력으로 반 아이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의 폭력이 무섭고, 모두가 침묵한다는 이유로 그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한다. 그렇지만 새로운 담임 선생님을 만나면서 그가 했던 부조리(대리시험, 강압, 폭력)등이 발각되고 그는 어디론가 떠나 버린다.


나에게도 일그러진 영웅이 있었다. 다만 그 배경은 학교가 아닌 동네에서였다. 나보다 1살이 많은 ㅇㅇ형. 그 형은 운동도 잘했고, 주먹도 최고였다. 보통은 그 선배는 자신보다 나이 많은 형들과 지냈지만 대부분이 도시의 학교로 진학하면서 우리 후배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 형이 6학년이 되던 1987년부터 우리 동네의 짱이 되었다. 처음에는 산이나 들로 다니면서 곤충을 잡거나 열매를 따는 방법 등 숲을 즐기는 다양한 기술을 알려주었다. 가끔씩은 함께 동굴도 들어가주고, 뱀이 나오면 본인이 잡아서 멀리 던저주기도 했다. 무섭게 느껴지던 선배가 동네 후배들을 너무나 친절하고 자상하게 더해 주었기에 더 따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름 방학이 끝나면서 그 형은 돌변하기 시작했다. 매일 오후 4시. 학교가 마친 후에 집으로 돌아오면 특별 훈련을 해야 한다며 뒷산으로 우리들을 불러냈다. 동네에 아이들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나를 포함한 6명 정도의 남자 녀석들이 전부였던 듯하다. 5학년 1명, 4학년 2명, 3학년 3명 정도. 그 형은 우리에게 군사 훈련 같은 것을 시켰다. 서로 나무를 가지고 검술을 하게 하고, 무술을 가르쳐준다며 서로에게 발차기와 주먹질을 하게 했다. 못하면 선착순 달리기를 시키고 지칠 때까지 또 달리고 또 달리게 했다. 마치 자신이 훈련 조교인양 우리들을 다그쳤다. 처음에는 우리에게 체력이나 운동을 가르쳐줄 것이라고 믿고 1주 정도는 모두가 열심히 했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나자 그 형은 더욱더 폭력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강압이 이어졌다. 목표한 시간에 들어오지 못하면 몽둥이로 우리의 엉덩이를 때리기도 했고 가끔씩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굴욕적인 벌칙을 주기도 했다. 한 예로 두 사람이 서로의 얼굴이 계속 때리는 벌칙이었다. 험오스럽고 나 자신을 상당히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그 선배형의 폭력이 두려웠기에 우리 5명은 1달 정도 그 덫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아닌 것 같았다.

 

10월이 되었을 때. 나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그 모임을 참여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몇 번 그 형이 우리 집으로 와서 나를 불렀다. 동생들에게  사정을 얘기하니 그 형이 왔을 때 "오빠가 학교 근처의 웅변학원을 다니게 되었다"가 착한 거짓말을 해줬다. 그 후로 더 이상 우리 집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가끔씩 학교로 오가는 버스에서 그 형을 만났지만 주변에 동네 어르신들이 많았기에 내게는 어떤 말도 걸지 않았다. 몇 주가 지나서 동네 동생들에게 물어보니 내가 그 모임에 나가지 않으면서 다른 애들도 하나둘씩 나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특별 훈련 모임은 사라지게 되었다고.


몇 달 후에 그 형은 중학교에 입학을 했고, 서로 학교 마치는 시간이 너무나 달랐기에 만나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다행히도 내가 1년 후에 배정된 중학교와는 방향이 전혀 다른 중학교였기에  1987년 이후 그 형을 만나는 일은 전혀 없었다. 가끔씩은 부모님을 통해서 소식을 전해 들을 뿐.

(놀라운 것은 몇 년 후 중고등학교를 주름잡던 주먹왕(일진왕)이 또 우리 동네형이었다. 이글에 나온 그 형과 같은 학년이었고 서로 절친이었다. 아마도 우리에게  했던 사악한 행동그 일 형이나 그 계통 선배들에게 배운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아직까지 그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한 적이 없다. 부모님도 모르고, 동생들도 모르고. 친구들도 모른다. 오직 그때 있었던 7명의 아이들이 그 사실을 알 뿐이다. 너무 부끄럽고 수치스러웠으며, 모두가 걱정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작은 시골 마을이라는 특수성과 어르신들이 농번기로 아이들에게 관심을 줄 수 없었던 가을이라서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 같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폭력과 강압, 권력의 힘을 보았다. 작은 7명짜리 시골 마을의 아이들 사회였지만 그런 부조리함이 가능했다. 바로 인간이 만들어낸 사악함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는 그런 것이 너무나도 싫었고, 강하게 권위에 따른 강압을 거부하게 되는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내 삶의 기준을 만든 사건이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할까.

나는 지금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보는 듯하다.

초등학교 시절 내가 만났던 그 선배가 아닌,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들이 지금 우리 모두의 일그러진 영웅이 아닐까라는 그런 생각을.

또 다시 마음 한 켠이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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