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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아오라키 마운틴 쿡, 자연을 품다

뉴질랜드 첫눈. 그리고 마운틴 쿡 트레킹

by Wynn

밤새 눈이 내렸다.

창 밖의 배경색이 하룻밤 사이에 초록색에서 하얀색으로 바뀌어버린 것이었다. 갑자기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온 듯했다. 아침 일찍 짐을 챙겨서 어제 들리지 못한 테카포 호수 앞의 선한 목자 교회(The church of the good shepherd)로 향했다. 하루 전 지나온 같은 길이었지만 주변 모두가 하얀 눈으로 덮여있어서 또 다른 길을 지나는 기분이었다.


30분 정도를 달려서 선한 목자 교회에 도착했다. 이 교회는 1935년 맥킨지 분지 지역에 두 번째로 세워진 교회라고 한다. 아담한 교회와 데카포 호수, 그리고 마운틴 존까지 날씨가 맑은 날이면 최고의 인생 샷을 얻을 수 있는 사진 스폿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오늘은 눈과 흐린 날씨로 포기해야 할 듯했다. 그렇지만 눈 쌓인 성당의 모습도 뭔가 운치가 있었다. 교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양치기 개의 동상을 볼 수 있었다. 사람이 아니라, 동물까지 동상이라니 작은 것 하나까지 존중해주는 뉴질랜드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이곳은 밤하늘 별이 너무나 아름다운 장소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아무래도 무리일 듯 하니,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선한 목자 교회

아오라키 마운틴 쿡 트레킹


우리는 마운틴 쿡(Mt. Cook)으로 향했다.

마운틴 쿡은 뉴질랜드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1851년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의 이름을 따서 산 이름을 지었다. 현지 원주민들은 이곳을 구름을 꿰뚫는 산이라는 의미로 '아오라키(Aoraki)라고 부르고 있었다. 밤새 내린 눈 때문인지, 마운틴 쿡으로 향하는 길은 온통 하얗게 변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제설 차량이 여기저기를 오가며 도로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었다. 혹시 길이 통제돼서 들어가지 못하나 걱정도 했지만, 폭설이 아니었기에 다행히 산행 초입까지 차량은 이동할 수 있었다.

공원의 초입은 마치 신비의 세계로 들어가는 거대한 왕국 입구처럼 느껴졌다. 양쪽에는 거대한 설산이 있었고, 우리는 빙하가 만든 그 사이의 거대한 U자 계곡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보통의 여느 계곡과 달리 빙하 계곡의 웅장함이 느껴졌다. 호텔과 호스텔이 위치한 공원 주차 구역에 무사히 자동차를 주차하고 단단히 무장(?)하여 밖으로 나갔다. 예상치 못한 눈과 추위로 인해 우리는 1시간 정도의 트레킹 코스로 일정을 줄여야 했다. 처음 여기를 계획할 때는 3시간 정도의 트레킹을 준비했지만, 오늘 기상 상태로는 불가능해 보였다. 너무나 아쉬웠다. 눈이 오지 않았다면 멋진 설산과 넓게 펼쳐진 U자 협곡을 바라볼 수 있었지만 오늘은 오직 눈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중이라도 마운틴 쿡을 찾을 때는 12월에서 2월 따뜻한 여름에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근처 호텔 로비에서 따뜻한 모닥불로 몸을 좀 데우고, 우리는 눈 쌓인 트레킹 코스를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날씨 때문인지 관광객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몇몇 한두 명의 여행객들이 트레킹 하면서 만난 전부였다.

우리 숨소리와 발자국 소리, 그리고 바람 소리만 들릴 뿐. 주변은 정말 고요했다.

소복소복, 하얀 눈을 밟으며 우리는 1시간 여를 걸었다. 처음 구간은 대부분 오르막길이 거의 없는 평지였다. 약간의 오르막길이 있었지만 작은 언덕 수준이었다. 얼마 후 갈림길을 만났다. 정상으로 가는 길도 있었지만, 우리는 사정상 가까운 호수 전망대 길을 택했다. 그리고 10여분을 더 걸어서 호수 전망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빙하 호수 전망대
마운틴 쿡의 만년설과 빙하

멀리 빙하 호수가 보였고, 산에 빙하도 눈에 들어왔다. 생전 처음 보는 빙하의 모습에 대자연의 신비함을 느낄 수 있었다. 빙하 호수의 모습은 아름다움을 넘어서 신비스럽기까지 했다. 날씨가 좋으면 빙하 호수에도 배도 탈 수 있지만, 오늘은 불가능했다. 전망대에서 후배와 함께 열심히 인증 사진을 찍었다. 각자 여기저기를 돌면서 풍경을 담았다. 나는 잠시 전망대 벤치에 앉았다. 잠시 내가 즐겨듣는 이승환의 '승리'라는 음악 한 곡을

선택해 재생 버튼을 눌렀다.


'작고 소중한 너만의 가치

We believe in you, always
털고 일어나 쓰러지긴 아직은 일러

본땔 보여줘 너잖아
어느 누구도 아닌 너에게 널 보여줘

세상의 중심은 너야 어떠니 할 수 있겠니'


멍하니 마운틴 쿡을 바라보면서 이승환의 노래에 빠졌다. 마지막 가사. '세상의 중심은 너'라는 이승환의 목소리가 오랜 여운으로 남았다.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나자. 이번 여행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야.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설산과 빙하도 기나긴 시간을 버티면서 이렇게 살아 숨 쉬고 있지 않은가.

자연 앞에서 나의 걱정이 너무나 작아 보였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에 왜 이리 고민하는지. 쓸데없는고민들을 그곳에 버려두고 자연의 풍경을 눈에 담아서 나는 다시 길을 되돌아내려 왔다.


마운틴 쿡에서 와나카 호수로.


마운틴 쿡 공원을 벗어나니 왼쪽으로 푸카키 호수 (Lake Pukaki)가 나타났다.

빙하수가 모여서 만든 거대하고 고요한 호수가 우리 차장 밖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어느덧 구름 사이로 환한 햇살이 조금씩 얼굴을 보이고 있었다. 오늘 길에는 흐린 날씨 때문에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가는 길의 푸카키 호수는 햇빛과 함께 우리에게 애매날드 빛 미소를 선물해줬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던 풍경 속에서 드라이브를 즐기고 있었다. 창문을 열어 산뜻한 공기를 마음껏 들어마셨다. 서로 감탄사를 연발해가면서 오롯이 뉴질랜드의 자연과 하나 된 모습이었다. 어느덧 푸카키 호수의 남쪽 끝에 도착하자 푸카키 호수의 물은 거친 수력 발전소를 지나서 남쪽 푸카키 강으로 빠져 흘러 나갔다.

푸카키 호수

푸카키 호수와의 아쉬운 작별과 함께 우리는 근처의 트위젤(Twizel)에 도착했다. 작은 시골 마을의 음식점에 들려서 간단히 샌드위치로 점심을 대신했다. 테라스에서 바라본 하얀 구름과 함께 병풍처럼 펼쳐진 저 멀리 아름다운 산들이 포근하게 우리를 감싸 안아주었다.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점심을 먹고 5분여를 달리니, 사람들과 차량들이 가득한 곳이 나타났다. 무엇일까 궁금해서 차량에서 내렸는데, 바로 연어 양식장이었다. 맛이나 보자는 생각에 5불짜리 연어 회를 사서 먹었다. 순간 두 눈이 동그레 졌다. 연어회가 입안에서 샤르르 녹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 일품이었다. 이 길을 지나간다면 꼭 한 번 들려서 사 먹기를 추천한다.

트위젤에서 바라본 서쪽 하늘

연어 양식장을 뒤로하고 우리는 달리고 또 달렸다. 굽이굽이 산을 넘어가는데, 날씨가 몇 번을 바뀌었다. 심지어는 우박이 떨어질 정도였다. 남쪽으로 더 가면 따뜻해질까 라는 생각했는데, 옆의 후배가 말했다.

"선배 여기는 남반구예요. 남쪽으로 갈수록 추워집니다."

그렇다. 나는 남쪽으로 가면 따뜻할지 알았건만 그건 북반구의 일이고, 여기서는 우리는 추운 지방으로 가고 있는 것이었다. 겨울이 되어가는 4월. 뉴질랜드의 날씨는 변화무쌍했다.

와나카 호수 가는 길

그렇게 우리는 산 넘고 물 건너 다음 목적지인 와나카 호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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