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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테카포 호수로 가는 길

본격적인 뉴질랜드 여행

by Wynn
테카포 호수

한국에서 온 반가운 손님(?)


새벽 4시. 이른 시각 나는 공항으로 향했다.

오늘은 오전 5시 15분에 한국에서 후배가 도착할 예정이었다. 휴직을 하고 떠나온 여행. 갑작스러운 휴직에 동료와 후배 대부분이 놀랐던 것이 사실이었다. 혼자서 힐링 여행을 떠난다고 하니, 절친한 후배 하나가 1주일간의 휴가를 내고 나의 여행에 합류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농담처럼 웃어넘겼지만, 실제로 팀장에게 1주일간의 휴가를 낸 것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선배! 그 병이 심해져서 복직을 못하면 이게 마지막 여행이잖아. 혹시 몰라서 가는 거야 하하"
농담처럼 이런 말을 던지며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던 것이었다. 입사 때부터 같은 팀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고, 힘들 때 술친구도 되고 가끔씩은 여행 벗이 되어 젊은 사원 시절을 함께 보낸 후배였다. 갑자기 몸이 아프다고 해서 걱정이 되었고 혹시나 이번이 마지막 여행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그리고 해병대 예비역다운 의리 하나로 나를 찾는다는 후배 녀석.

암튼 처음 온 이국 땅에서 누군가를 맞이해야 한다니 그 느낌도 새로웠다. 그리고 이런 여행을 허락해준 제수씨(후배의 와이프)에게도 정말 고맙고 또 한편으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끼리 여행이 아닌 엉뚱한 선배와의 여행을 허락해 주다니. 결혼식 때 사진을 찍어준 보람이 있었다. 사실 혼자 하는 여행이 조금 부담스럽긴 했는데, 친한 후배가 온다고 아침 일찍 공항에서 후배를 맞을 준비를 했다. 한국에서 싱가포르를 거쳐 멜버른, 크리이스트처치까지 2번 경유를 하며 거의 20여 시간의 대장정 끝에 아침 6시가 되어서 후배는 공항 입구에 모습을 보였다.

"야! 반갑다! 뉴질랜드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하루 먼저 온 내가 공항 밖에서 환영 인사를 건넸다.

"어 선배 반가워요! 이런 데서 보니 더 반갑네요. 하하하" 그리고 서로 반가운 악수를 나눴다.

이렇게 우리 둘은 회사가 아닌 뉴질랜드에서 뜻깊은(?) 상봉을 했다. 크리이스트처치부터 퀸즈타운까지 5일간은 이제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이다.


한적한 시골 마을 페얼리(Fairlie)


다시 숙소에 들려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과 햇반, 식당의 토스트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겨서 남섬 끝으로 향했다. 오늘의 일정은 애쉬버턴(Ashburton)과 페얼리(Fairlie)를 거쳐 인근 숙소에 짐을 풀고, 테카포 호수와 마운틴 존 천문대를 둘러보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침부터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는 시기라서 그런지 흐린 날씨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크라이스트처치 밖으로 나가는 길은 기찻길과 함께 시작되었다. 크라이스트처치부터 애쉬 버턴까지는 우측의 기찻길과 나란히 달려갔다. 몇 분 후 우연히 열차 한 대가 우리 도로 옆을 지나갔고, 신기한 듯 후배는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어 기차 승객들과 아주 멀리서 인사를 나눴다. 달리는 그 길은 우리나라의 지방 국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약 1시간 정도를 달리니 애쉬버턴이라는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화장실도 들려야 하고 마을 입구에 큰 마트가 하나 있어서 차를 세웠다. 오늘 저녁에 숙소에서 먹을 음료수와 고기 등을 이곳에서 구입했다. 상당히 큰 규모의 가게였기에 없는 것 빼고는 모두 있었다. 간단히 장 보기를 마무리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이곳을 지나니 슬슬 창밖의 풍경이 목가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푸른 초원 지대와 평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기자기한 목장들이 길가에 펼쳐지고 있었다.

잠시 차를 멈춰서 주변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날씨가 그리 좋지 않았기에 사진은 예쁘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한적한 뉴질랜드 풍경에 흠뻑 취해있었다.

그리고 1시간 반 정도를 달려서 Fairlie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 도착했다. 조용한 마을에서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이상한 동상 하나.

'Jame MacKenzie & Dog'라고 쓰여 있었다. 내용을 확인해 보니 제임스 맥킨지는 1855년 이 지역에 처음 들어온 유럽인으로, 이 지역에서 양 목축과 양털 산업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한다.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동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양치기 개까지 동상으로 만든 것이 특벌 해 보였다. 역시 모든 일에는 조연이 있어서 주인공이 빛나는 법이다.

동상 주위를 둘러보니 시내는 한적 했다. 작은 식당 몇 개와 주유소, 그리고 작은 가게들. 인터넷에서 괜찮은 식당 하나를 찾아 들어갔다. 식당에서 토스트와 커피 한 잔으로 간단히 점심 식사를 하고 우선 근처의 숙소에 들려 짐을 풀었다.


아쉬운 만남, 테카포 호수(lake Tekapo)


숙소에 짐을 풀고 곧장 테카포 호수로 달렸다.

빗방울이 금방이라도 굵어질 듯한 분위기였고, 날도 흐린 날씨 때문인지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었다. 사진 속에서 보았던 에메랄드 빛 호수. 빙하가 만든 그 호수를 보고 싶었다. 그 호수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마운틴 존 천문대에 올라야 한다. 산 정상에는 천문대와 아스트로 카페가 있는데, 이곳에서 테카포 호수를 감상해야 멋진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속도를 올려서 천문대로 향했다. 호수 근처에 선한 목자 교회도 있었지만 내일 가는 길에 들리기로 하고 곧장 천문대로 향했다. 하지만 천문대 입구 매표소를 통과하는 순간 아쉽게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안돼! 비가 더 내리면 안 돼!'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서 마운틴 존 정상 주차장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헉' 바람이 상상을 초월했다. 비도 내리고 바람까지 부니 밖에 서 있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바람과 비 때문에 1~2분 버티기도 쉽지 않았다. 사진 몇 장과 동영상 살짝 찍고 다시 차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너무 아쉬웠다.

"어쩔 수 없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 날씨 좋아지기만은 기도하자고"

나는 후배에게 이렇게 말하고 마우틴 존 천문대에서 내려왔다. 사진에서 보던 맑고 멋진 풍경을 기대했지만 역시나 날씨가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우리는 차를 돌렸다. 그리고 다시 40분여를 더 달려서 숙소로 돌아왔다.

비 오는 날 마운틴 존 천문대
마운틴 존 정상에서 본 테카포 호수

숙소에서 우리는 스테이크 요리에 도전했다. 해병대 출신인 후배 녀석의 도전 정신을 바탕으로 오전에 마트에서 구매한 소고기와 양고기로 스테이크를 요리했다. 소고기 스테이크는 대성공했지만, 아쉽게도 양고기는 뭔가 부족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얘기를 안주 삼아서 먹으니 모두 꿀 맛이었다. 오랜만에 회사 생활이며 휴직 후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며칠 동안 혼잣말로 쌓였던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하나둘씩 풀어갔다. 그리고 나는 후배에게 연이어 "고맙다" "고맙다"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뉴질랜드까지 찾아와 준 후배. 나 같으면 선뜻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후배는 "빨리 건강해줘서 다시 회사에서 만나자"라고 내게 말했다. 그 한 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그렇게 후배와 나는 밤새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밤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족과 친구들, 소중한 사람들이 무척 많다는 것을'. 해볼 만한 인생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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