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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아들?!

두계역 TMO와 계룡대

by Wynn

1997년 5월 11일, 나는 홀로 진주행 열차에 올랐다.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공군 훈련소에 입소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터 30개월, 1999년 11월까지 군복무라는 긴 터널의 시작이었다. 훈련소에서의 첫날, 주변에는 수많은 훈련병들이 곁에 있었지만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머리를 자르면서 신체검사를 하고 훈련복을 받는 순간에도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군대라는 곳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사회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공군 사병의 경우 5일간의 기초 훈련 중에 다시 집으로 돌아갈 기회를 주었다. 훈련소를 퇴소하고 다시 육군으로 입대할 수 있다는 것. 결국 같이 입소했던 사람들 중에 서너 명은 다시 짐을 싸서 훈련소를 나갔다. 2주 차부터 4주 동안은 본격적인 기초 군사 훈련이 시작되었고 나는 서서히 군인이 되어갔다. 어찌 되었건 국방부의 시간은 시나브로 흘러가고 있었다.


기초 군사 훈련이 마무리되면서 후반기 특기 교육을 받게 되었다. 각자의 특기별로 4주에서 8주까지 다양한 전문 교육을 받는 것인데 나는 운이 좋게도 46210이라는 항공운수 특기를 받게 되었다. 공군의 수송을 담당하는 직무였다. 보통 비행단의 공수취급소나 철도반, 철도역의 TMO(여행장병안내소), 군수사령부의 수송전대에서 일을 하는 특기였다. 공군 특기 중에서 몇 안 되는 신의 보직 특기였다. 모두 12명이 뽑혔는데, 내가 그중에 한 명이 된 것이었다. 알고 보니 대부분이 신의 아들들이었다. 장군의 조카부터 정치인 지인, 또는 아버지들이 유명 고등학교 교장, 대기업 중역, 비행단 대대장과 주임원사 등등 대부분 잘 나가는 분들의 지인이나 군 관계자들 아들들이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연관이 없는 사람은 오직 3명뿐. 나는 그 신의 아들 사이에 끼어서 운이 좋게 발탁된 것이었다. 정말로 천운이 아닐 수 없었다.


후반기 교육과 군수사령부에서의 최종 교육을 마치고 나는 최종적으로 두계역(현재는 계룡역) TMO에 배치되게 되었다. 육해공군 3군 본부가 대전 계룡대로 이전하면서 만들어진 역으로 군수뇌부들과 가족들 의전을 담당하는 그런 곳이었다. 내가 1999년 11월까지 군복무를 해야 하는 최종 근무지였다. 더블백에 짐을 싸고 기차를 타고 두계역으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해 보니 육해공군이 함께 근무하는 곳으로, 사병은 육군 4명과 해군 2명, 공군 2명이 있었다. 낮에는 육군 장교와 공군 부사관, 해군 부사관이 함께 근무를 했다.


사람이 적어서 가족적인 분위기일 줄 알았지만, 첫날부터 나를 맞이했던 것은 '밥그릇의 투척 사건'이었다.

해군 선임 하나가 신병인 내 모습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식사 중에 밥그릇을 내게 던진 것. 다행히 내가 맞지 않았지만 벽에 부딪치면서 산산조각 났고 밥이 사방으로 퍼졌다. 한 방에 내부반 분위기를 싸늘하게 얼려버리는 순간이었다. 그 사람은 제대 1달을 남은 선임이었는데 삼촌이 국군 기무사령관이라고. 무서울 것이 없는 신분이었다. 덕분에 나는 첫날부터 옥상으로 끌려가서 육군과 해군 선임에게 정신교육과 얼차려를 받았다. 다행히도 구타는 없었다. 그렇게 두계 TMO에서의 첫날이 지나갔다.


이상한 선임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부대 밖에서 생활을 하기에 마음만은 편안했다. TMO 바로 옆에 역이 있어서 민간인(?)들을 매일 볼 수 있었고, 그 앞에는 편의점과 식당들이 즐비하게 있었다. 그것만으로 행복했다.


또한 계룡대 출퇴근도 마음에 들었다. 삼군본부가 있는 계룡대로 군무원처럼 매일 출퇴근을 했다는 것. 내무반에 두계역에 있었기에 계룡대 안에는 작은 사무실만을 운영했다. 매일 아침 2명의 사병이 계룡대 출근 버스를 타고 사무실에 가서 업무를 하고 오후 5시에 퇴근해서 다시 TMO로 돌아오는 것. 그것이 나의 하루 일과였다.

오고 가는 길에 엄사 아파트 단지를 지나는데, 그 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었고 자유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물론 주말에는 내무반이 있는 두계역에서 근무를 해야 했지만 하루 종일 기차를 본다는 것만으로도 여행마니아인 내게 만족스러운 일상이었다. 나는 참으로 운이 좋았다. 어린 시절 역장이 소박한 꿈이었는데 그 꿈을 군대에서 이룬 듯 했다.


이상한 해군 선임이 제대한 후에는 다시 평화가 왔다. 나는 TMO에 막내로서 열심히 일을 했고 선배들도 내 열정을 인정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두계 TMO 일원으로서 내 몫을 찾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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