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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의 지갑

휴가 중에 생긴 특별한 추억

by Wynn

1997년 12월 4일. 달콤한 2박 3일간의 휴가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는 날이었다. 천안에서 기차에 올라서 대전역으로 향했다. 자리에 앉아서 짐을 정리하려고 하는데 바닥에 떨어진 지갑 하나를 발견했다. 고급스러운 가죽 장지갑이었다. 호기심에 지갑을 들어서 안쪽을 슬쩍 바라보니 두툼하게 만 원짜리 현금이 가득했다. 혹시나 해서 지갑을 열어서 신분증을 찾았지만 현금과 기차표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가지고 간다고 해도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 사실 당시에는 카메라 같은 것이 전혀 없었고 대부분의 객차에 입석 인원도 상당했기에 분실물 찾기는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나는 갈등했다. 솔직히 어찌할지 고민이었다. 그냥 가지고 갈까? 아님 놔두고 갈까? 당시는 IMF 외환위기가 터진 지 얼마 안 된 상황이라서 모두가 힘든 시기였기에 정말로 어찌할지 고민이었다. 근데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특히 몇 년 전에 제주도에서 잃어버렸던 지갑이 다시 나에게 돌아온 적이 있었는데 그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지갑을 잃어버리고 걱정하는 주인의 표정이 떠올랐다. 고민 끝에 나는 지갑을 들고 대전역 앞의 파출소를 찾았다. 당시 당직 경찰관분께 "분실 신고가 있으면 돌려주라"라고 하고 나의 인적사항을 적은 후에 부대로 복귀를 했다.


그날 밤, 취침을 앞두고 내무반 청소를 하는데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는 것. 혹시 집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하여 급한 마음에 사무실로 내려가서 전화를 받으니 어색한 한국말이 들려왔다. "고맙습니다. 김일병 님. 덕분에 지갑을 찾았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지갑 주인의 전화였고 방금 전에 천안으로 올라오는 기차를 통해서 지갑을 돌려받았다는 것이었다. 행복한 목소리였다. 나는 당연한 일이라며 간단히 통화를 마쳤다. 행정 담당 선임들도 무슨 얘기냐며 상당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한 선임은 그걸 찾아주는 바보가 어디 있냐며 나를 구박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 일은 조용히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렇지만 정확히 2주일 후에 기적이 일어났다. 아침 청소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 한 통이 온 것이었다. 부산에 사는 아주머니인데 고향이 두계역 근처라고 하시며 아침 신문을 보고 TMO에 전화를 걸었다는 것이었다. 밑도 끝도 없이 "오늘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 잘 봤다며, 너무 훌륭한 군인인데 우리 딸이랑 펜팔을 하면 어떻겠냐"라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무슨 장난 전화인지 알았다. 그냥 무뚝뚝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 혹시나 해서 청소를 마치고 바로 역 앞으로 나가서 동아일보 한 부를 사가지고 들어왔다.

동아일보 지면(1997년 12월 18일 자)을 넘겨보는데 독자 투고란에 이런 기사가 실렸던 것이었다.


[독자편지]티모디 머서/잃어버린 지갑 고스란히 되돌아와

기사입력 | 1997-12-18

4일 서울 사무실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내려가던 길이었다. 영등포역에서 열차를 타기 전에 다음 주 열차표를 사서 지갑과 함께 재킷 주머니에 넣었다. 열차 안이 너무 더워서 재킷을 벗고 있었다. 천안에 도착하고서야 다시 입었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지갑을 기차에다 떨어뜨리고 내린 것을 알게 됐다. 지갑은 물론 다음 주 출근을 위한 열차예매표도 걱정됐다. 그런데 그날 저녁 대전 동부경찰서 역전파출소 박 00 순경으로부터 지갑이 파출소에 있으니 밤기차 편으로 보내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지갑을 주워서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파출소에 맡긴 사람은 충남 논산의 두계역 여행장병안내소에서 현역군인으로 복무 중인 김 00 공군일병이다. 지갑에 있던 현금과 열차표는 그날 밤 내게로 전달됐다. 지갑을 안전하게 돌려주신 김일병과 박순경, 그리고 대전역과 천안역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여러분의 존귀함과 정직함에 감사드린다. - 티모디 머서(마동진·대한기독교 나세렛성결회 선교사)


신문보도가 나간 그날 아침 나는 여기저기서 수많은 격려 전화를 받았다. 그중에 가장 충격적인 전화 한 통.

"나 공군군수사령관(★★)인데, 아주 훌륭한 일 했어. 김일병" 헉! 나는 직속상관이신 공군 군수사령관님께서 동아일보를 보고 직접 전화를 하신 것이었다. 정말 놀라웠다. 작은 기사 하나가 그렇게 큰 일을 만들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 이후의 일은 대충 상상이 갈 것이다. 포상 휴가는 물론이고, 사령관님 표창까지 받았으며, 공군의 월간지에 실리는 영광까지 안았다. 그때부터 내 군생활이 순탄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선교사님께 선물한 작은 선행이 내 군 생활을 바꾸어놓은 것이었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97년 12월의 기억. IMF가 시작되면서 모두가 힘든 시기였지만 내게는 또 다른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세상은 살만하다는 생각. 그 시작이 된 특별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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