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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ynn Nov 13. 2022

성산일출봉 정상 찍기

성산일출봉, 토끼섬, 엉 불턱

이른 아침 창문을 두드리는 거센 비 소리가 들렸다.

졸린 눈을 비비며 창 밖을 바라봤다. 빗줄기 때문에 바다는 보이지 않았고, 바람도 거세게 불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는 예보. 조용히 숙소에서 하루를 보내야 할 듯했다.  뉴스를 보니 이번 내린  큰 비는 제주도에 40여 일 만에 내리는 단비였다. 제주도의 많은 농작물이 가뭄으로 타들어가고 있었는데 단비가 내리면서 어느 정도 해갈이 될 것이라고 했다. 여행자들에게는 조금 불편했지만,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소중한 빗줄기였다.

나는 조용히 거실에 앉아서 아내와 함께 따뜻한 차 한 잔을 하며 비를 즐겼다. 아이오랜만에 여유 있게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즐겼다. 10시쯤 되니까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고, 11시에는  호우경보와 주의보가 내려졌다는 재난 문자가 이어졌다.

오전에 내린 비

밖을 보니 이런 큰 비에도 바로 앞 도로에는 우비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나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악천후가 두럽지 않은 진정한 여행자들이었다. 정말 대단했다.

비 내리는 풍경 속에서 오전 시간이 지나갔다.


정오가 조금 지나면서 하늘의 빗줄기가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구름 속에서 파란 하늘이 시나브로 보이기도 했다. 인터넷으로 제주지역 오후의 일기예보를 확인해 보니 동쪽 성산포에는 3~4시쯤에 비가 그치는 것으로 나왔다. 비가 그친다는 일보 예보를 믿고 우리는 오후 1시가 넘어서 집을 나서 동쪽으로 향했다.

오늘 우리의 목적지는 성산일출봉!

가는 길에 아내가 추쳔한 맛집에 들려서 회국수와 성게국수, 그리고 전복죽을 먹고 동부 해안도로를 거쳐서 성산포로 향했다. 비가 그쳤다가 다시 내렸다가를 반복하는 제주도의 변덕스러운 날씨가 계속 이어졌다.

가는 길에 토끼섬이라는 무인도가 있었다. 구좌읍 하도리에 위치한 섬으로, 우리나라 유일의 문주란 자생지라고 한다. 꽃의 개화기인 여름에는 이 섬 전체가 하얗게 덮여서 멀리서 보면 마치 토끼처럼 보인다고 하여  '토끼섬'이라 이름이 붙여졌다. 물 때가 맞으면 들어가 볼 수도 있는데, 오늘은 그것이 불가능하여 멀리서 사진 몇 장 남기고 토끼섬과는 아쉬운 작별을 했다.

해녀상 뒤로 보이는 토끼섬

조금 더 달리니 엉 불턱이라는 표지판이 나왔다. 불턱은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곳으로, 이곳 엉불턱 옆에는 종달리 전망대가 있다. 여기에서는 성산 일출봉과 우도가 한눈에 들어왔다. 잠시 들려서 성산 앞바다 구경을 하는데, 갑자기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고 비도 다시 쏟아질 듯하여 다시 자동차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거친 날씨가 살짝 원망스러웠다.  

영 불턱과 멀리보이는 성산일출봉

영불턱을 10분여를 더 달려서 오후  .3시 40분쯤에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성산일출봉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잠시 차 안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5분 정도가 지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거센 비가 그치고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성산일출봉을 오르기 시작했다.

성산일출봉은 약 5천 년 전 해수면이 현재와 같아졌을 때 얕은 수심의 해저에서 화산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것으로, 높이는 180m, 분화구 직경은 600m 정도 된다고 한다. 분화구 주위에는 99개의 기암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성산일출봉 등산로

성산일출봉의 탐방로는 2개가 있었다. 정상에 오르는 유료 입장로와 무료로 운영되는 해안 탐방로였다.  나와 아내는 5천 원 입장료(미취학 어린이는 무료)를 내고 정상으로 올랐다.

180m 오르는 산행이었지만, 왕복 시간은 약 50분에서 1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가파른 탐방로와 계단을 하나하나 오르기 시작했다.

비가 내린 후였고, 기온도 23~4도가 되었기에 금방 땀이 흘렀다. 경사가 조금 있어서 힘들긴 했지만, 중간중간 전설이 담긴 기암괴석이 이어지면서 지루하지는 않았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아이와 손을 꼭 잡고 계단을 올랐다. 중간쯤 올라서 성산포와 섭지코지 방향을 바라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바다와 작은 어촌 마을이 한 폭의 그림처럼 눈앞에 그려졌다. 백록담 이후에 제주에서 본 가장 멋진 풍경이었다.

성산일출봉 기암들
등산로에서 바라본 북쪽과 남쪽 풍경

약 35분쯤 걸어서 드디어 성산일출봉 정상에 도착했다. 거대한 분화구가 내 눈앞에 드러났다.

자연스럽게 입에서 "우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놀라운 풍경이 가득했다. 바다와 분화구, 그리고 기암절벽과 아름다운 해안선 등 최고의 풍경이었다. 하지만 바람도 상상 위로 강하게 불었다. 모자가 날아갈 정도였다. 여기저기를 돌면서 사진 몇 장을 남기고 비가 오기 전에 다시 하산을 시작했다.

성산일출봉 정상

내려오는 길은 계단길이었다. 오르고 내려가는 사람들이 만나지 않도록 올라오는 길 반대방향으로 하산길이 이어졌다. 10여분 정도를 내려오니 금 황금색 잔디가 펼쳐진 중간 제대로 내려올 수 있었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그 대신 구름 속의 지는 해가 잔잔히 벌판 위노 펼쳐지고 있었다. 비 개인 오후에만 볼 수 있는 멋진 노을이었다.

하산길 풍경

내려오면서 북쪽 절벽과 함께 해안까지 절경이 이어졌다. 저 멀리는 우도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아이도 성산일출봉의 웅장함이 좋았는지 다시 한번 와보고 싶다고 했다. 일출봉에서 내려오며 뒤를 돌아서 일출봉 정상을 바라봤다.

북쪽 해안과 우도
성산일출봉 절벽

당당히 바다 위에서 우리를 내려보고 있었다. 아래에서 보면 남성의 강인함이, 정상에서는 여성의 부드러움이 함께 공존하는 세계문화유산 성산일출봉. 오늘 하루도 가족과 함께 특별한 경험을 하나 더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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