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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ynn Nov 28. 2022

삼별초의 마지막 항쟁지와 북촌마을 4.3길

제주 항파두리, 북촌리 선사 유적지, 북촌리 4.3길

고등학교 국사시간, 제주도 하면 처음 떠올랐던 것이 삼별초의 마지막 항전지였다는 것이었다. 오늘은 아이와 함께 역사 공부를 하기 위해 제주 항파두리 항몽 유적지를 찾았다. 제주 항파누리 항몽 유적은 제주시 중심에서 서쪽으로 10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제주에 내려온 삼별초군이 몽고와 고려의 연합군에 싸워 최후의 항전을 했던 장소다. 고려 조정이 몽고군에게 항복하면서 강화도를 버리고 개경으로 환도했지만 배중손 장군은 1270년 삼별초군을 모아서 강화도에서 항전을 한다. 하지만 몽고군의 공격이 거세지면서 다시 거점을 진도로 옮기게 된다. 하지만 1271년 몽고군과 싸우던 배중손 장군이 전사하면서 삼별초군은 병력을 다시 모아서 제주도로 들어오게 된다. 제주에 들어와서 항파두리에 토성을 쌓고 계속 항전을 위한 기세를 올렸으나 1273년 1만 2천 명의 고려와 몽고 연합군의 총공격을 받아서 항파두성이 함락되고 삼별초 군사 대부분이 전사하고 말았다. 약 70여 명의 군사들이 붉은오름으로 이동하여 끝까지 항거했으나 결국 모두가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다.

그 정신이 담겨 있는 유적지가 바로 항파두리였다.

순의문과 항몽순의비

항파두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항몽순의비였다. 몽고군에 대항해 최후를 맞이한 삼별초군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비석이었다. 잠시 아이와 함께 순의비에 들려서 묵념을 했다. 순의비 주위를 둘러보니 유적지 발굴 작업이 한창이었다. 항파두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만들어진 2중 구조의 토성으로, 토성 둘레가 약 750m에, 높이가  1~1.5m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건물터와 함께 갑옷과 철창, 화살촉 등이 다수 발굴이 되었다고 했다.

항파두리 발굴지

발굴터를 둘러보고 실내 전시장으로 향했다. 실내 전시관에는 발굴 유물들과 함께 삼별초군의 토성 건설과 항전, 그리고 최후의 항쟁 장면까지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장에서 알게 된 또 다른 사실은 삼별초가 전멸한 이후에는 제주가  약 100여 년 동안 원나라의 땅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원나라의 직할지로, 일본과 남송 공격을 위한 전략기지로 이용되면서 많은 제주도민들이 고초를 겪었다는 기록이었다. 약 100여 년 후인 1374년 최영 장군이 몽고군을 몰아낼 때까지 제주는 식민지 암흑의 시대로 지내야만 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되니 제주의 역사적 아픔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항파두리 전시관

삼별초의 마지막 흔적을 지켜본 후에 우리 가족은 집 근처의 선사 시대 유적지로 향했다. 제주 조천읍 북촌리에는 선사 시대의 사람들이 살았던 주거 유적지가 있었다.  북촌동굴 입구에 위치한 이 유적지는 1973년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토기를 비롯하여 석기와 골각 등이 발굴되었으며, 동굴 내부에는 취사와 취침 공간이 나눠져 있다고 안내문에 적혀 있었다. 아이와 함께 손을 잡고 가까이에서 원시 선사인들의 생활공간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아이도 원시인들을 상상하며 수천 년 전의 이야기를 머릿속에 그려보는 모습이었다. 숙소 근처에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할 따름이었다.


북촌리 선사 유적지

하지만 북촌리는 이런 선사 유적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예전에 이야기했듯이 제주 4.3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 제주 조천읍 북촌리였다. 그 비극의 시작은 1949년 1월 17일의 추운 겨울이었다. 그날 새벽 마을 어귀 고갯길에서 무장대의 기습으로 군인 2명이 숨지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군인들이 북촌리로 들이닥쳐 온 마을 불을 지르고 사람들을 북촌리 초등학교에 모두 집결시켰다. 경찰이나 군인 가족을 제외한 350여 명의 사람들을 초등학교 서쪽과 동쪽으로 이동시켜서 학살했다. 그 현장이 선사 유적지 인근에 고스라니 남아있었다.

북촌초등학교
비극의 현상인 너븐숭이(왼쪽) 와 당팟 (가운데와 오른쪽)

너무나 평화롭게만 보이는 북촌초등학교에서는 그 당시 사건을 기록한 추모비가 있었다. 그리고 서쪽 너븐숭이에는 4.3 기념관과 아기 무덤이, 동쪽의 학살 장소인 당파에도 그 흔적들이 비석의 총탄 자국으로 남아있었다. 이를 둘러볼 수 있는 것이 북촌 4.3길이었다. 그 길을 걸을 때마다 그날의 아픈 상처가 느껴졌다.

북촌마을 4.3길

북촌초등학교 근처에는 마을사람들이 10 여년전에 만든 큰 돌탑 하나가 있었다. '상생, 평화, 번영의 탑'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제주 4.3의 비운을 상생과 평화의 이름으로 말끔히 씻어주고 이 같은 액운이 다시는 이 땅 위에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하며, 마을의 안녕과 영원한 발전을 기원하며 이 방사탑을 세운다. 북촌리민 일동'  내용을 보면서 마음이 먹먹해졌다.

북촌마을 방사탑

지금의 제주도는 아름답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역사 속 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이 숨어있었다.

삼별초 항쟁지와 4.3길을 거닐면서 많은 생각이 든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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