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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ynn Nov 27. 2022

가파도를 걷다

가파도, 송악산, 전국노래자랑

11월 26일 토요일. 오늘은 오랜만에 배를 타고 섬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아침 일찍 가족들과 함께 운진항으로 향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가파도. 최남단 마라도와 제주도 사이에 위치한 섬으로, 섬의 모양이 가오리를 닮아서 가파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봄이 되면 청보리밭이 유명하며 조선시대에 하멜이 표류했던 섬이기도 했다.  

우리 가족은 그곳의 명물 해물짬뽕을 먹고, 올레길 '10-1' 코스를 천쩐히 걷기 위해서 가파도로 향했다.

1시간 30분을 달려서 운진항 여객터미널에 9시 30분쯤 도착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이른 아침부터 차량들로 주차장이 가득했다. 확인해보니 오늘 운진항 근처에서는 KBS 전국노래자랑 녹화를 비롯하여 모슬포 방어축제까지 열릴 예정이었다. 사람들이 더 붐비기 전에  우리는 예약해 두었던 10시 배를 타고 가파도로 들어갔다.

가파도 가는 배와 가파도 표시석

날씨도 맑고, 바람도 심하지 않았기에 13분 만에 가파도 선착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파도의 첫인상은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선착장 앞상동포구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 집 중간중간의 돌담 풍경이 여느 마을과 다르게 아기자기하게 아름다웠다. 우리 가족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반대편에 있는 해물짬뽕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상동포구 마을을 가로질러서  밭길을 지나니 섬의 중간쯤에 작은 초등학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가파 초등학교였다. 실제 몇몇 학생들이 니고 있었고 매회 졸업생도 낸다고 했다. 200여 명이 사는 작은 섬에 초등학교와 병설 유치원까지 있는 듯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젊은 섬처럼 느껴졌다. 초등학교를 지나면서 예쁜 백화와 가파도에 관한 글들이 이어진 길을 지났다.

무인가게나 카페도 곳곳에 보였다. 저녁이 되면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아서 섬에 남는 여행객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무인 카페가 다수 생겼다고 한다.

가파 초등학교로 가는 길과 예쁜 벽화 산책로

섬을 가로질러서 바다가 보이는 끝 부문에 도착하니 우리가 찾던 해물짬뽕집이 나왔다. 꼭 한 번 맛보고 싶었던 해물짬뽕과 해물짜장을 시켰다. 잠시 후 해물이 푸짐하게 들어간 주문 음식이 나왔다. 뿔소라를 비롯한 풍부한 해물과 청보리로 만든 푸른 면이 잘 어울렸다. 음식 맛은 실망스럽지 않았다. 든든하게 이른 점심을 먹은 후에 본격적으로 가파도의 올레길을 걷기 시작했다.

해물짬뽕과 짜장

가파도 올레길은 제주 올레 10-1 코스로, 남쪽 가파치안센터부터 북쪽 상동포구까지 4.1km의 거리였다. 스탬프가 있는 위치를 조금 지나니 올레길 안내판이 있었다. 남쪽 해안을 지나서 동쪽 해안길로 올라갔다가 다시 섬을 가로질러서 서쪽 아래로 와서 다시 해안선을 따라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코스였다. 섬이 평평하고 언덕이 없기에 길게 잡아서 1시간 반 정도면 충분히 완주할 수 있을 듯했다. 올레길에서 가장 먼저 만난 것은 돈물깍이었다. 가파도의 용천수였다. 이런 물이 있었기에 여기에 사람이 살 수 있었던 듯했다.

해안 돌담이 이어진 남쪽 해안을 지나서 동쪽 해안으로 들어섰다. 마을의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 나왔다. 매년 정월이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곳으로, 출입하지 말라는 표지가 보였다. 제단에서 잠시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 마라도가 눈에 들어왔다. 가파도에서 바라본 마라도는 먼 바다에서 가파도라는 친구를 등 뒤에서 든든하게  지켜주는 모습이었다. 동쪽 해안을 걸으니 바다 너머로 제주도의 모습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특별히  가파도에서는 제주도의 6개 산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제주도에는 오름이나 봉이 아닌 진짜 산이 모두 7개라고 한다. 가파도에서는 그 7개 산들 중에서 한라산, 산방산, 송악산, 군산, 고근산, 단산 등 6개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영주산은 가파도에서 볼 수 없다. 동쪽 올레길을 걸으면서 바다너머 제주도의 풍경과 가파도의 예쁜 해안, 수석처럼 득이한 돌들을 볼 수 있었다.

남쪽 바다에서 바라본 마라도
가파도 제단과 해안 암석
가파도에서 바라본 6개의 산

동쪽 해안이 끝나갈 무렵에 다시 섬 안쪽으로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밭 사이로 잘 정돈된 산책로를 걸었다. 주변은 청보리 밭이었으나, 현재는 수확을 하고 빈 밭으로 남아있었다. 그렇지만 수확이 끝난 밭도 하늘과 어우러지면서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었다. 잔잔한 가을바람이 불고, 언덕이 없는 작은 오솔길, 뒤를 바라보면 푸른 바다가 펼쳐지는 모습이 자연이 만든 소소한 테마파크 속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중간중간의 작은 벤치들은 그런 아기자기한 맛을 더 불어넣어 주었다.

수확이 끝난 청보리밭 길
소망 전망대

섬의 중앙을 지나니 소망 전망대가 나왔다. 섬에서 가장 높은 20.5m의 언덕이었는데, 전망대에 오르면 한라산과 산방산, 마라도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전망대 주위에는 다양한 표정을 짓는 돌하르방이 있어서 사진 찍기도 좋아 보였다.


소망 전망대를 지나서 조금 더 걸으니 남서쪽 바닷가로 길이 이어졌다. 이때부터는 서쪽 해안을 걷는 코스로 자전거를 탄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동포구에서 자전거를 빌려서 서쪽 해안으로 내려와서 하동포구를 지나서 동쪽 해안으로 올라가는 코스로 가파도를 즐겼다. 가는 길에는 고양이를 닮은 고양이 돌이 있었고, 조금 더 걸으니 둥근 큰 왕돌(보름 바위)도 있었다. 여기에 오르면 비바람이 강해진다고 해서 사람들이 오르지 못하게 신성시했던 했던 바위라고 적혀 있었다. 북쪽에서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다시 상동포구로 돌아왔다.

올레길 풍경
고양이 돌과 큰왕돌(보름바위)

점심시간을 포함해서 약 3시간 정도가 걸리는 코스였다. 우리는 다시 가파도에서 출발하는 13시 40분 배를 타고 운진항으로 향했다. 운진항에 도착하니 오후 2시가 조금 안된 시간이었다. 그 순간 멀리서 들리는 귀에 익은 실로폰 소리! 그리고 전국노래자랑 시그널 음악이 흘러나왔다. 운진항 근처의 특설 무대에서 펼쳐지는 전국노래자랑 서귀포 편이었다. 진행자인 김신영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잠시 후에 초대가수 영탁 씨가 나왔다. 무대 앞에 가서 보고 싶은 마음이 살짝 있었지만, 이미 입장은 마감된 상태였다.

멀리서 찍은 전국노래자랑 서귀포시편 (왼쪽 흰색 옷이 김신영, 오른쪽 연하늘색 옷이 영탁)

그냥 멀리 부두에서 지쳐보는 수밖에 없었다. 영탁이 부른 찐이야를 멀리서 듣고 사진 몇 장 남기고 운진항을 떠나야 했다. 오늘 녹화 방송은 1월 1일 방송이라고 하니 그때 확인해야 할 듯했다.


차를 타고 해안선을 따라오다가 잠시 송악산을 들렸다. 송악산은 제주도 남서쪽에 위치한 화산 지형의 산으로, 북쪽으로는 산방산과 바다에서는 형제섬과 가파도를 볼 수 있는 장소다. 오늘도 전국에서 몰려온 관광객과 외국에서 온 여행객들로 산책로가 분비고 있었다.  아이 손을 잡고 잘 정리된 산책로를 따라 오르면서 저 멀리 바다에 우뚝 서 있는 형제섬과 함께 일제가 파 놓은 진지동굴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송악산에서 바라본 형제섬과 일본군 진지동굴
정상에서 바라본 산방산과 송악산 분화구

그리고 나는 정상에 올라서 분화구 주변의 풍경도 즐길 수 있었다. 산방산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이중 분화구를 가져서 정상에 오르면 그 색다른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바람에 너무 센 나머지 내가 쓰고 있던 모자가 바람에 날리면서 분화구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슬쩍 아래를 보니 완벽한 절벽! 아쉽게도 모자는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나의 모자를 분화구에 재물로 바치고 송악산 정상에서 내려왔다.

오늘도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의 늦가을을 즐길 수 있었던 특별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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