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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ynn Nov 30. 2022

가을의 끝에서 비자림을 찾다

서부두 수산시장, 비자림, 해비치호텔

제주에는 밤새 거센 비바람이 불었다. 호우주의보가 내려질 정도로 많은 비가 아침까지 이어졌다. 오늘 아침은 갈치 경매장에 들리기 위해 일찍 집에서 나섰다. 힘차게 쏟아지는 거센 폭우를 뚫고 7시 30분경에 제주시 서부두 수산시장에 도착했다. 서부두 수산시장은 당일 새벽에 잡은 수산물들을 경매하는 곳인데, 오전 7시 정도에 맞춰가면 당일 경매한 질 좋은 수산물들을 근처의 좌판이나 상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11월 초 동문 시장에 가서 갈치 가격을 보고 조금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서 직접 아침 경매 시장을 찾은 것이었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갈치를 사고팔고 있었다. 

서부두 수산시장 풍경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크고 괜찮은 갈치 한 박스가 보여서 구매를 했다. 갈치 가격은 크기에 따라서 천차만별이었는데, 나는 1kg당 600g 정도 하는 굵은 갈치를 구매했다. 제주살이 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제주를 떠나기 전에 부모님들께 선물을 보내기 위함이었다. 갈치를 구매한 후에는 근처의 상점으로 와서 손질과 택배 포장을 진행했다. 손질 비는 2만 원, 택배비가 1만 원 추가로 들어갔다. 아침 갈치 구매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먹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릴 것 같았지만, 정오가 넘어가니 비가 그치길 시작했다. 제주에 와보니 하루 종일 비가 온다고 해서 오후 1~3시 정도는 잠시 비가 그치는 소강상태가 많았다. 오늘도 잠시 비가 그친 틈을 타서 그동안 찾지 못했던 비자림을 찾아서 마지막 가을 청취를 즐기기로 했다. 비자림은 500~800년생 비자나무들이 군락을 지어서 자생하고 있는 숲이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장소로, 걷기 편한 숲 속 오솔길을 가지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제주의 대표 산림욕 장소다. 산책로 전체 코스가 2~3km 정도 되기에 1시간 정도면 모두 둘러볼 수 있다. 천년의 숲 비자림에 도착해서 우리를 처음 맞아준 것은 역시 길가로 길게 뻗어 있는 비자나무들이었다.

비자나무는 척박하고 건조한 곳에서는 싫어하기 때문에, 제주처럼 질 좋은 화산재 토양과 풍부한 강수량이 있어서만 잘 자랄 수 있다. 특히  향기가 좋고, 습기에 잘 견디는 장점이 있어서 집을 만들거나  배를 건조하는데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우리 주위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바둑판이다. 질 좋은 바둑판의 재료가 비자나무다. 입구를 조금 더 걸어 올라가니 본격적인 숲길 입구가 나왔다. 아기자기한 숲길 주위에는 빗물로 지하수로 들어가는 숨골과 열대 우림과 같은 이끼들이 가득했다. 바닥 길은 송이(scoria)라는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붉은 알칼리성 천연 세라믹 길로 이루어져 있었다. 맨발로 걸으면 신진대사 촉진에 좋다고 해서 맨발로 걷는 몇몇 사람들을 보기도 했다. 

비자림 풍경

비자림에는 비자나무뿐만 아니라, 단풍나무와 후박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숲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살짝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산뜻한 나무의 향들이 숲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길게 그 내음을 맡으며 비자림을 한걸음 한걸음 나아갔다. 10여분 정도를 걸으니 단풍나무들의 모습도 보였다. 비 때문에 많은 단풍잎에 떨어졌지만, 알록달록 가을의 마지막을 여전히 장식하고 있었다. 중간중간에는 덩굴에 싸여 긴 세월에 버티고 있는 나무들도 있었으며, 이끼가 나무를 타고 올라가며 자연의 웅장함을 뽐내고 있는 수백 년 된 비자나무도 볼 수 있었다. 

비자림 단풍과 시간을 품은 나무들


숲 속의 신비로움에 빠져서 30여분 정도를 걸으니 비자림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두 주인공 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그 하나는 새천년 비자나무고 또 하나는 연리지 나무였다. 새천년 비자나무는 제주도에서 거의 초고령목으로 800년 이상이 된 비자나무로, 비자림의 중심에서 묵묵히 숲을 지키고 있는 신성스러운 나무였다. 사랑나무라고 불리는 연리지는 두 나무가 하나로 합쳐진 나무로, 사랑하는 연인이나 부부들의 사진 촬영 장소로 인기가 많았다. 

새천년 비자나무와 사랑나무

두 나무를 둘러보니 잠시 내려오니 샘터가 눈에 들어왔다. 제주 중산간 지역에서는 물을 구하기 힘든 곳이 대부분이었지만, 이곳에는 샘물이 나고 있었다. 과거 숲 지킴이가 이곳을 지켜면서 우물터로 이용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비자림이 있어서 이런 샘물이 만들어졌고, 또한 여기에 물을 가둘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기에 비자림이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우물터를 지나서 조금 걸어 내려오면 돌담길이 이어졌다. 여기에 오니 다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산을 쓰고 빗속을 달렸다. 그렇게 비자림 속에서의 마지막 가을 풍경 여행을 마무리했다.

우물터와 돌담길

비자림 여행을 마치고 회사의 지인분들이 해비치 호텔에 행사로 방문을 한다고 하여 저녁시간에는 표선의 해비치 호텔로 향했다. 표선에는 거센 바람이 불고 있었다. 제주에 와서 느껴본 가장 강한 바람이었다. 마치 태풍이 온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호텔 로비에 들어가니 그곳의 분위기는 이미 크리스마스였다. 큰 크리스마스트리가 장식되어 있었고, 사진 찍기 좋게 아기자기한 장식물이 곳곳에 꾸며져 있었다.

해비치 호텔의 크리스마스 장식

사진 몇 장을 찍고 회사의 지인분들을 만났다. 오랜만에 지인들과 술 한 잔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저녁 시간이 금방 흘러가버렸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눈다는 것은 언제나 행복한 일이었다. 

그렇게 제주에서의 29일째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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