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커 밸리 트래킹을 마치니 오후 4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저녁 7~8시가 되면 캠핑장 문을 닫기 때문에 빨리 다시 남쪽에 있는 마을로 이동해서 숙소를 잡아야 했다. 이번 캠핑카 여행을 준비하면서 첫 날을 제외하고는 어떤 숙소도 예약하지 않았다. 그냥 가는 대로 숙소를 잡아서 묵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뉴질랜드 캠핑장은 곳곳에 위치해 있었다. 유료도 있고 무료도 있다. 유료 캠핑장은 화장실과 샤워장, 공동 부엌과 세탁실, 바비큐 존이 있고 wifi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캠핑카에 전기 공급도 가능하고, 물도 채울 수 있으며 오수 배출도 가능하다. 반면 무료 캠핑장은 그냥 경치 좋은 곳에 있는 주차장으로 보면 된다. 화장실이 대부분 없고, 다른 어떤 편의시설도 없다. 그냥 자동차 안에서 요리하고, 씻고, 화장실을 사용하면 된다. 하지만 캠핑 초보자들이 활용하기에는 불편한 것은 물론, 인적이 드물기에 위험할 수도 있다. 가족 여행을 준비하면서는 유료와 무료 캠핑장을 하루하루 번갈아 가면서 지내면 어떨까 생각했지만, 무료 캠핑장에서 하루는 보내는 것은 어린 아이가 있는 우리에게는 아직 무리였다. 그냥 나의 욕심일 뿐이었다. 가장 중요한 안전은 물론, 아이를 위한 편의를 고려하여 모두 유료 캠핑장에 머물기로 하고 여행을 시작했다.
트래킹을 마친 후 가장 가까운 Top 10 홀리데이 파크가 있는 오마라마(Omarama) 마을로 향했다. 5시 30분이 조금 넘은 시각에 캠핑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혹시 캠핑카 사이트 예약이 꽉 차지 않을까 걱정하며 리셉션 문을 열었다. 다행히 캠핑장은 많이 비어 있었고, 잔디 위에 좋은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주차를 하고 둘러본 오마라마 TOP 10 홀리데이 파크는 뉴질랜드 현지인들이 주로 방문하는 것처럼 보였다. 때문에 평일에는 굉장히 한적했다. 우리를 포함하여 3~4대의 캠핑카가 캠핑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캠핑장 중앙에 어린이 놀이터가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하기 굉장히 좋은 캠핑장이었다. 식당과 바비큐 존이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캠핑카 외부에 있는 바비큐판을 꺼내서 고기를 구워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후커 밸리 산행의 피곤함으로 일찍 잠에 들었다.
오마라마 탑10 홀리데이 파크
캠핑카에서의 저녁 식사
다음 날 아침, 상쾌한 새소리가 우리를 깨웠다.
12월 14일 오늘은 특별한 일정이 없이 오마라마에서 약 100Km 떨어진 와나카의 Top 10 홀리데이 파크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어제 남은 밥과 빵, 그리고 계란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천천히 캠핑장을 즐겼다. 캠핑 차량에 물도 채우고, 침구에 먼지도 털고, 차량 내부 청소도 했다. 그리고 오전 11시에 다음 캠핑장으로 이동을 했다. 와나카 호수로 향하는 길은 굽이굽이 계곡을 통과하는 코스였다. 30분 정도 달려서 린디스 패스(Lindis Pass) 전망대에 도착했다. 남섬의 평원 지대에서 다시 고지대로 올라가는 고갯길 같았다. 전망대에서 잠시 풍경을 감상하고 다시 와나카로 향했다.
린디스 패스
와카나 가는 길에 뉴질랜드 미로 파크인 퍼즐링 월드(Puzzling World)에 들렸다. 어린 아들이 뉴질랜드에 가면 꼭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외쳤던 그곳이었다. 곧장 티켓을 끊고 함께 미로 찾기에 도전했다. 사각형으로 된 미로 파크에서 꼭짓점에 있는 노랑, 파랑, 빨강, 초록의 포인트를 다 통과하고 다시 출구로 나오면 끝나는 것이었다.
보통은 30분에서 1시간 걸리는 코스. 처음에는 우습게 생각하고 미로를 달렸는데, 마지막에는 정말 '멘붕' 현상이 나타날 정도로, 미로 전체를 빙글빙글 몇 바퀴 돌아야만 출구를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놓았다. 다행히 현명한 아내의 도움으로 50분 정도 걸려서 출구까지 나올 수 있었다. 미로 찾기의 힌트를 준다면 '결코 가까이에는 답이 없고 먼 길을 돌아야만 가까운 길을 찾을 수 있다.' 바로 이것이었다.
퍼즐링 월드
퍼즐링 월드를 나와서 우리는 와나카(wanaka) Top 10 홀리데이 파크로 향했다. 여전히 예약을 하지 않았다. 방문해서 물어보니 평일이라서 넉넉히 자리가 있다고 했다. 우리는 25번 사이트를 배정받아서 캠핑카를 주차했다. 먼저 전원 케이블을 연결하고 근처의 잔디밭에 의자와 테이블을 폈다. 와이파이도 빵빵하게 잘 터져서 밀렸던 인터넷을 하고, 아이도 넷플리스로 만화 영화를 즐겼다. 나는 잠시 홀리데이 파크 주위를 둘러봤다. 호수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서 호수 뷰는 아니었지만, 정원이 깔끔하게 잘 정리된 홀리데이 파크였다. 여유 있는 차량 주차 공간과 함께 개인용 테이블이 잘 정돈되어 있었으며 관리하는 직원들 또한 친절했다. 식당과 TV 룸도 잘 준비되어 있고, 샤워실과 화장실도 최신식 시설이었다. 허브도 이용자들이 직접 따 먹을 수 있도록 식당 앞에 텃밭도 있었다. 홀리데이 파크에는 우리 말고도 한국에서 여행 온 가족들이 몇몇 보이는 듯했다. 오랜만에 한국말로 인사를 나누면서 뉴질랜드 여행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와나카 탑10 홀리데이 파크
그리고 저녁 6시쯤에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오는 길에 아시안 상점에서 구매한 잘 익은 김치와 함께 뉴질랜드산 소고기와 상추, 그리고 된장찌개까지 완벽한 한식 요리를 준비했다. 아내는 된장찌개와 밥을 하고, 나는 바비큐 존으로 이동해서 고기를 구웠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이번에는 육즙 가득한 고기를 구을 수 있었고, 아내 또한 한국에서의 그 맛 그대로의 된장찌개를 준비했다. 다만 그 냄새가 걱정돼서 된장찌개는 공용 식당이 아닌 차 안에서 끓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조금 안타까웠다. 우리 가족은 캠핑카 옆에 마련된 식탁에 둘러 앉아서 오랜만에 최고의 한식을 맛볼 수 있었다.
식당과 바비큐존, 그리고 오늘의 저녁식사
저녁을 먹고 아이와 샤워실로 향했다. 여기는 버튼을 누리고 6분 뜨거운 물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넉넉히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할 수 있었다. 이제는 아들과 함께 공용 샤워실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요즘 뉴질랜드는 여름이라서 저녁 9시 30분에 해가 진다. 그리고 방금 글쓰기 마친 시각은 자정이 다된 시간이다. 잠시 커튼을 걷고 차창 밖을 바라봤다. 밤하늘의 별 빛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별자리도 보였다. 이렇게 별빛 가득한 남반구의 밤하늘을 매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번 여행은 큰 가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