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나카 호수를 거닐다
와나카 호수에서 퀸스타운으로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와나카 홀리데이 파크에서 체크 아웃을 하고 와나카 호수에 차를 주차했다.
와나카 호수는 테카포나 푸카키 호수와는 달랐다. 빙하 호수라기보다는 산속의 한적은 호수처럼 보였다.
우리 가족은 오솔길처럼 이어진 와카나 호수 주변을 걸었다. 개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부터 조깅을 하는 사람들, 사진 찍기에 정신이 없는 관광객들과 배낭을 둘러매고 어디론가로 향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우리 곁을 지나갔다. 자전거를 타고 호수 한 바퀴를 돌고 싶었지만, 아이를 태우고 다니기가 쉽지 않아서 그냥 산책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산책로를 따라서 도심 쪽으로 걸어가니 패들보트를 비롯하여 카약과 카누 등을 대여하는 곳이 있었다. 호수 안에서 중학생 정도의 아이들 6~7명이 패들보트를 빌려서 와나카 호수를 즐기고 있었다. 뉴질랜드 현지인들에게 인기 있는 관광지인만큼 길가에는 다양한 레포츠 샵이 있어서 수상 레포츠용품들을 대여하고 있었다. 우리가 느끼기에는 아직은 차가운 물 온도였지만, 이 동네에서는 물놀이하기에 충분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호수가를 벗어나서 와나카 마을의 중심부로 들어갔다. 그리 크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쇼핑몰을 비롯하여 수많은 음식점과 카페, 기념품점과 이발소까지 아기자기하게 마을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작은 마을이었기에 센터 한 바퀴를 돌아보는데 10여분이면 충분했다. 며칠간 무리한 일정 때문인지, 오전에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그리웠다. 마을 안쪽에 있는 테이크 아웃 전문점으로 가서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다. 일반 커피에 얼음을 같이 달라고 했는데, 우리나라처럼 얼음 잔에 커피를 담아서 주었다. 가격은 NZ 5불(우리 돈 4300원)였다. 커피를 들고 다시 호수가로 나와서 벤치에 앉아서 호수 풍경을 즐겼다. 저 멀리 만년설을 바라보면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이 너무나 달콤했다.
커피를 마신 후에 호수가 끝으로 가니 어린이 놀이터가 있었다. 아이가 물 만난 고기처럼 놀이터로 뛰어갔다. 이미 놀이터에는 어린아이부터 초등학생 정도 돼 보이는 아이들까지 10여 명이 열심히 놀이기구를 타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바닥이 모래가 아닌 편백나무 조각이 깔려있었다는 것.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마른 작은 나무 조각들이 놀이터 바닥에 깔려있었다. 역시 자연의 나라 뉴질랜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하나하나 놀이기구에 올라타서 자신만의 도전을 이어나갔다. 미끄럼틀부터 그네까지 놀이터의 있는 모든 놀이기구를 다 타본 후에야 다시 산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놀이터를 빠져나와서 조금 더 길을 걷다 보니 특이한 인공 둥지들이 호수 위에 보였다. 1번부터 12번까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새둥지처럼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뉴질랜드 토착종 물 병아리인 카마나(Kamana)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내용을 보니 뉴질랜드 토착종인 카마나는 호수 위에 습한 곳에 알을 낳아서 부화하는데, 호수에 대한 개발과 오리, 갈매기 등이 영역을 확장하면서 뉴질랜드에서 멸종 위기종으로 보호받고 있다고 했다. 북섬에서는 이미 멸종이 되었고, 남섬에는 와나카 호수에 일부가 남아 있었다. 이를 보호하기 위해 둥지를 만들어 보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카마나는 잠수 능력이 뛰어나서 수심 7m까지, 그리고 수십 초 동안 잠수가 가능했다. 호수를 바라보는 중간중간에 서너 마리가 잠수를 해서 고기를 잡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카마나 뿐만 아니라, 와나카 호수에서는 내 허벅지만 한 거대한 메기도 살고 있었다. 선착장 아래에서 검은 그림자의 거대한 고기 서너 마리를 목격하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와나카 호수의 카마나 보호 구역, 그리고 인공 둥지와 자연 둥지 호수가를 2시간 정도 걸으니 다시 배가 출출해졌다. 점심을 먹으로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4년 전에 들렸던 레드 스타 햄버거 집을 다시 한번 찾아가 보기로 했다. 15분 정도 걸어서 다시 도심으로 나갔다. 와나카 마을 입구에 레드 스타 버거집에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햄버거 가격은 nz 15불에서 25불까지 다양했다. 오늘의 스페셜 버거를 시켰다. 소고기와 베이커, 양파튀김과 스위스 치즈가 들어간 제대로 된 수제버거였다. 주문을 하고 10분이 지난 후에 버거가 나왔고, 입을 크게 벌려서 한 입을 무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너무 맛있었다. 패티의 육즙이 살아있고, 빵은 바삭하며, 치즈의 쫄깃함이 느껴졌다. 역시 이 동네 최고의 맛집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근사한 수제 버거로 점심을 마무리했다.
점심을 먹고 나오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기예보에서 비올 확률이 90%라고 했는데, 오후가 돼서야 제대로 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무도 우산을 쓰고 있지 않다는 것. 길을 걸을 때 모두가 비를 맞고 있었다. 동양의 관광객 일부가 우산을 가지고 다닐 정도였다. 우리도 당당히 비를 맞으며 자동차로 돌아갔다. 다행히 중간에 큰 빗줄기가 줄어들어서 다행이었다.
우리는 와나카를 떠나서 크롬웰을 지나, 퀸스타운 입구에 위치한 홀리데이 파크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 번지 점프로 유명한 카와라우 강이 나왔고, 강 중간에 계곡의 물을 통해 발전하는 로링 메그(Roaring Meg) 전망대에서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카와라우 강퀸스타운 시티를 둘러보고 최근에 새로 지은 홀리데이 파크인 드리프트어웨이 홀리데이 파트 (dritfaway holiday park)에 체크인을 했다. 퀸스타운 공항 옆에 있는 홀리데이 파크로 와카티푸 호수가 시작되는 시점이기도 했다. 오후 5시가 넘어서 체크인을 하니 호수 옆이 아닌 언덕 위의 가장 끝 자리를 우리에게 주었다. 살짝 차의 뒷 문을 열어서 경치를 둘러보니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여기저기 시설을 둘러보니 새로 지은 홀리데이 파크만큼 지금까지 들렸던 세 군데의 홀리데이 파크보다도 시설이 깔끔하고 풍경도 아름다웠다. 그래서 우리는 이곳에서 하루 더 머물기로 결정을 했다. 그냥 아무 곳도 가지 않고 하루 종일 호수를 지켜보며 내일 하루를 이곳에서 보낼 예정이다.